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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평화지킴이 Jan 21. 2019

나의 살던 고향은 비행기 날던 전쟁터

나지막한 언덕으로 둘러싸인 마을 어귀에 일흔 다섯 살 노인이 사는 집 한 채가 있다. 꽃 같던 23살에 시집을 와 내내 살았으니, 이제 몸의 일부처럼 되어 버린 낡은 집이다. 그 집 앞에는 누릇누릇 벼들이 익어가는 논이 있다. 슬쩍 고개만 돌리면 마을 끝 자락에 바다가 시작된다. 잔잔한 바다에는 몇 발만 걸어가면 금세 닿을 듯한 작은 섬 ‘농섬’이 떠 있고, 그 앞으로는 질척질척한 갯벌이 펼쳐진다. 그 갯벌과, 그 바다와, 그 논밭 위로 폭격기들이 54년 동안 날아 다녔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던 마을’ 이라던 노랫말은 54년동안 거짓이었다. 나의 살던 매향리 마을은 비행기 날던 전쟁터였다. 


"마을로 낮게 나니까 조종사 얼굴이 보여요. 얼굴이 보이면 다들 이렇게 (인사를) 해줬어. 그때 생각하면 괜히 해줬다 생각이 들어요. 뭣도 모르고 천방지축이라 얼굴이 비니께(보이니까) 또 빠이빠이를 해주고 그랬네. 그쪽에서도 내려다보고 또 (인사를) 이래 해줘… 사람 얼굴이 뵈니까 신기해 가지고. 마당에 나가가지고 괜히 그랬지 뭐야. 생각해 보니까. 그게 미련했지 뭐야. 그게. "


1. 끝나지 않는 전쟁 연습 

비행기가 뜨고 나면 포탄이 쿵쿵, 탄피가 우수수 떨어졌다. 전쟁이 끝나도 도무지 끝나지가 않는 전쟁 연습이 이어지는 마을에 산다는 것은 잔인한 전쟁의 도구들이 일상의 일부가 된다는 말이었다. 미군의 폭격기가 떨구고 간 물건들은 폭격장 바로 옆에 사는 매향리 마을 사람들의 생활용품이 되었다. 미군이 쓰다가 버린 군모의 안쪽 헬멧을 잘라다가 우물의 두레박을 만들고, 폭격연습 후에 떨어진 포탄을 주워다가 호롱불 받침으로 썼다. 조명탄을 쏘아 올리고 나면 떨어지는 알루미늄 탄피는 반듯하게 펴고 잘라서 다리미를 만들었다. 물자가 귀한 시절에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다. 대신 밤새 쏟아지는 포탄 소리를 오롯이 견뎌야만 했다.

 

“밤에 사격을 하면 저기 바닷가에다가 쭉 불을 켜놓고 해요. 따다다다 쿵쿵! 비행기가 5대도 넘게 다니면서 계속 불어대는 거여, 불어대. 밤에 잠도 못 자요. 말도 못하게, 에휴.” 


“육이오 전쟁은 댈 것도(비교할 것도) 아니여. 밤낮으로 뒤집어 엎었다니께. (전쟁 때 보다 더 심했어요?) 그건 댈 것도 아녀유”. 


2. 마을이 변했다. 사람들이 변했다

마을 사람들은 내내 싸웠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 닥치는 폭격기 소리를 듣다 보면,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울화가 치밀었고 짜증이 났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곱게 보이지 않으니 가는 말이 험했고 오는 말은 더 거칠었다. 바람이 불면 아름다운 꽃 향기 대신 마을 어딘가에서 일어난 싸움 소리가 실려 왔다. 


“이 마을이 얼룩진 걸 생각하면..,(한숨) 옛날에 술도 많이 먹은 동네여, 여기가. 저쪽에서 바람이 불면 싸우는 소리가 들려 (….) 악악악악 하는 소리가 들려요. 그럼 또 누가 싸워. 지금은 그런 싸움이 없어졌어요. 옛날에는 싸우고 술 먹고 그런 역사가 많았어요.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웠지, 그때.”

내장을 찢는 듯한 폭격기 소리와 땅을 뒤흔드는 진동 소리를 견디며 제대로 공부가 될 리도 없었다. 날카로워진 부모들은 서로서로 삿대질을 하면서 싸웠고, 그 아래에서 자라던 아이들의 성적도 뚝뚝 떨어졌다. 인근 학교에서 제일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줄 세우면 대부분 이 마을 출신이었다는 자조적인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학교에서 꼴찌하는 애들은 다 고은리(매향리의 옛 이름)애들이랴. 어이구. 말도 말아요. 어유,” 


3. 너무나 당연하지만, 당연하게 누릴 수 없던 것들

이 마을에 살지 않았다면 상상도 못할 일도 있다. 한번 사면 지겨워질 때까지 걸어 놓는 벽시계가 이 마을에서는 툭하면 고장이 났다. 끝없는 진동, 진동, 진동. 그 흔들림을 하루 종일 견디다 보면 시계조차 온전치가 못했다. 읍내 나갔다 오는 사람들 손에 어김없이 들려 있는 물건이 바로 벽시계. 이제야 웃으며 말하는 농담거리가 되었지만, 참 웃질 못할 일상이었다.  


“벽시계를 사다 걸면 맨날 고장이 나요. 맨날 흔들어 재껴서. 보자기에 뭘 싸가지고 버스를 타면 시계가 또 고장이 난 거지. 이 집이 저 집이 고장 나는 게 일이여. 보자기에 싸서 안고 오면 그게 시계여.” 


자식들 출가시키며 찍은 예쁜 결혼사진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자들 사진도 벽에 걸어놓을 수가 없었다. 액자를 걸어놓았다가는 금세 떨어져 방 안이 난장판이 되었다. 자손들 이야기라면 날밤을 새도 모자랄 어르신들이 평생 못 해봤던 일이 바로 사진 자랑이었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일상이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용납되지 않았다.  

“어유, 진저리나. 유리창 깨지고. 기왓장 날라가고. 찬장에 그릇도 쌓아 놓아 봐요. 우르르 쏟아지지. 아무것도 못 걸어요. 죄다 떨어져. 벽들도 많이 무너지고.”


4. 인고의 54년, 그 이후는

어느 누구도 이 고통이 54년동안 계속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면 곧 사라지겠지,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사라지겠지,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면 사라지겠지, 라는 희망은 긴 절망이 되었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던 이 마을에 살아가며 그 마음을 달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이들은 더 큰 존재에 기대어 간곡히 소원을 빌어보았고, 또 어떤 이들은 탈출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또 어떤 이들은 자포자기로 술을 마시며 하루를 보냈고, 퇴로가 다 막힌 어떤 이들은 쓸쓸하고 처참한 죽음을 택하기도 했다. 폭격기가 날아다니던 하늘 아래에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에는 금이 가고 무너져 가는 낡은 집이 있다. 그 집에는 54년의 긴 세월을 도 닦듯 보내고, 이제야 맞은 조용한 평화를 누리는 늙은 한 여인이 있다. 


“며칠 전에 비행기가 (에어쇼) 연습하느라고 왔었는데. 못 살겠더라고. 이게 막 (속에서) 끓더라고. 저 위에서 공중에 떠가지고 팔팔팔팔하면서 반짝반짝하고 왱왱되는데. 이게 돌 거 같더라고. 그 때 기억이 나서, 그 때 하도 질려서… 지금은 천국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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