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서서 먹는 김밥
3. 참맛나 김밥
이 김밥집은 내가 자주 가던 카페 옆에 있는 곳이다. 관광지도 주거지도 아닌 대학교 앞의 애매한 위치에 있는데도 지나가면서 볼 때마다 항상 사람이 많아서 신기했다. 언제 한 번 가볼까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제주도에 놀러 오는 친구가 밥을 먹기에 애매한 시간에 도착해서 가볍게 배를 채울 겸 가보게 되었다. 공항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로 시내와 가까워서 제주도에 도착해서 간단히 먹을 첫 끼로 좋았다.
식사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잠깐의 대기를 하고 들어가게 됐는데 다행히 앉을 자리가 있었다. 참고로 제주에 김밥집은 오는정과 다가미 김밥처럼 포장만 받고 앉는 자리는 없을 수 있으니 미리 알아보고 가야 한다. 메뉴에 국수류가 있었는데 포장을 했으면 불어서 먹기 힘들었을 텐데 다행이었다. 우리는 고기 김밥과 멸추 김밥, 어묵 국수, 열무국수를 시켰다. 어묵 국수라는 메뉴는 이곳에서 처음 들어봤는데 이전엔 멸치국수였다가 어묵이 많이 들어가서 어묵 국수로 이름을 바꾸셨다고 한다.
고기 김밥은 김밥천국 같은 곳에서 먹던 불고기가 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제육 느낌의 고기가 들어간 김밥이었다. 고기가 김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정말 많이 들어있었다. 멸치 김밥은 고추장 멸치를 넣은 김밥이었는데 백반집에서 빨간 고추장 멸치 반찬을 보면 떠오르는 딱 그 맛이었다. 멸추 김밥은 멸치와 고추가 들어간 김밥으로 고추 때문인지 조금 매콤했다. 열무국수는 생각보다 평범했고 우리가 뽑은 최고의 메뉴는 어묵 국수였다. 국물이 포장마차에서 먹는 어묵 국물의 고급 버전이라고 할까? 조금 더 깊은 맛이면서 시원했다. 친구는 어묵 국수가 해장으로 딱일 것 같다고 했다.
김밥이 조금 짰는데 어묵 국수 국물이 균형을 잘 잡아주었다. 다음에 와도 어묵 국수를 꼭 시킬 거라면 친구와 서로 시키길 잘했다며 칭찬했다. 우리에게 여행 첫 시작 첫 끼를 좋은 기억으로 남겨준 고마운 김밥집이다.
다 먹고 돌아가는 차에서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이미 여행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입소문이 난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사 시간에 가면 대기를 해야 할 수 있으니 포장을 해서 먹는 거라면 미리 전화 예약을 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4. 오는정김밥
드디어 먹게 된 오는정김밥. 이 김밥집은 인터넷에 엄청난 후기들이 가득하다. 많은 글은 대부분 '김밥만 예약하다 제주 여행 끝났다.', '전화 200통 만에 간신히 예약했다.', '아침에 예약해서 저녁에 먹었다.'는 것과 같이 먹기 힘들다는 후기와 '처음 먹어보는 식감이었다.', '김밥 먹으러 제주도 매달 와요.', '여행 내내 김밥만 먹다가 갑니다.' 같이 맛있다는 후기들로 나뉘었다. 이러한 내용은 과장된 것 같았는데 얼마나 예약하기 힘들고 맛있으면 이런 표현을 썼을까 궁금해서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일단 먹기 힘들다는 후기는 정확했다. 오히려 과소평가된 느낌이었다. 친구와 전화를 500통 넘게 했는데 계속 통화 중이라 전화 예약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숙소가 서귀포여서 오전에 매장에 들러서 방문 예약을 했다. 오전 10시쯤 가서 대기를 썼고 김밥은 저녁때 받을 수 있었다. 후기 그대로 아침에 예약해서 저녁에 먹은 것이다. 제주도에서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연돈'이라는 돈가스집을 제외하면 가장 먹기 힘든 음식인 것 같다.
김밥집 안에 먹을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힘들게 얻은 김밥을 들고 두근두근 기대하며 근처에 먹을 장소를 찾아봤다. 다행히 김밥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바다가 보이는 해변 공원이 있었다.
드디어 대망의 김밥 시식! 우리의 첫마디는 "오호"였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생긴 건 다른 김밥과 다르지 않은데 김밥의 맛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거에 놀랐다. 김밥에 단맛, 짠맛, 고소한 맛이 강렬하면서 각각 다 느껴졌다. 거기에 감칠맛도 강하고 식감도 좋아서 배부를 때 먹어도 두 줄은 거뜬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밥 사이에 튀김 유부 같은 것이 식감과 고소한 맛의 비결인 것 같았다. 사실 가게가 엄청 바빠서 대충 만들 것 같은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햄도 구워서 넣어서 정성이 느껴졌고 터진 것도 없이 재료도 오밀조밀 잘 들어가 있어서 감동했다. 역시 잘되는 곳은 이유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오는정김밥, 치즈, 떡갈비, 참치, 깻잎, 멸치 모든 종류 김밥을 1줄씩 다 사서 둘이서 6줄을 다 먹었다.
김밥을 다 먹고 우리만의 미식 토론에서 여기 김밥만의 특별한 맛을 느끼기에는 기본 김밥(오는정김밥)이 가장 나은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김밥은 추가된 재료의 강한 맛 때문에 오히려 조금 평범해진 것 같았다. 가격도 기본 김밥이 3,000원, 가장 비싼 떡갈비 같은 김밥도 4,500원으로 적당했다. 대기가 없고 집 근처에 있었으면 왠지 자주 사 먹을 것 같았다. 김밥을 먹으러 제주까지 올 정도는 아니지만, 제주도 여행을 온다면 한 번은 먹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힘들게 예약했던 과정들도 이제는 재밌는 추억 남았다. 지금도 그 친구와 여행 이야기를 하다 보면 "김밥 한 줄 먹으려고 별 지*을 다 했네."라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5. 다정이네 김밥
설날에 친척들과 가족들이 제주도에 왔다. 여행 막바지에 서귀포를 여행을 끝내고 해가 질 무렵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다들 지친 상태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사서 숙소에 가자고 했다. 이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김밥이었다. 마침 서귀포 근처여서 유명한 오는정김밥이 떠올랐다. 그때는 오는정김밥의 예약 악명에 대해 몰랐을 때라 무작정 갔었다. 역시나 먹지 못했다. 근처에 다른 김밥집을 검색해보니 다정이네라는 김밥집이 나왔다. 비도 오고 늦은 저녁이라 그런지 기다림 없이 바로 살 수 있었다. 이후에 알았지만, 여기가 서귀포 2대 김밥집이라고 해서 평소에는 대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러 종류를 샀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기본 다정이 김밥과 소고기 김밥이다. 여기 김밥집은 계란을 많이 넣는 것이 시그니처인 것 같은데 사진만 봐도 김밥 안에 노란색 무언가가 꽉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저게 전부 계란으로 계란지단이 거의 김밥의 절반이다. 나는 초밥집에 가면 계란 초밥을 추가로 시켜 먹을 정도로 계란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기 김밥이 너무 좋았다. 김밥 전체적인 맛도 고소하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마치 집에서 소풍 갈 때 싸주는 엄마표 김밥 같았다.
소고기 김밥은 소고기가 거의 절반이었다. 무엇을 시킬지 고민하던 중 카운터 앞에 불고기를 데우는 철판을 보고 주문했던 것 같다. 고기는 많이 들어갈수록 맛있다는 것이 역시나 진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김밥에 재료들이 알차게 들어가 있어서 금방 배가 찼다.
이곳의 김밥은 특별한 맛을 가지진 않았지만 여러 김밥집 중에 집에서 엄마가 싸주신 김밥과 가장 가까웠던 것 같다. 학교가 끝나고 밥을 못 먹고 급하게 학원을 갈 때, 김밥 두 줄을 사서 공원 벤치에서 친구와 나눠 먹고 싶은, 그런 김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