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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귤 Apr 10. 2021

김밥이야기-1

제주 김밥 체인점

  제주도는 김밥이 유명하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제주도 맛집으로 검색하면 항상 상위권에 김밥집이 나올 정도이다. 처음엔 김밥에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 김밥이 아무리 맛있어 봤자 '기본 재료가 똑같을 텐데 얼마나 맛있겠나?'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가 놀러 올 때 찾아온 김밥집을 하나둘씩 방문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제주도와 김밥은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맛과 모양에서 특별함은 가진 곳도 있지만, 김밥 그 자체가 산과 바다가 많은 제주도에서 피크닉을 하며 먹기에 제격이었다.


  인터넷에 '제주도 3대 김밥'이라고 검색을 하면 여러 김밥집이 나오는데 다른 2대는 바뀌어도 항상 꼭 끼어있는 김밥집이 있다. 바로 '오는정김밥'이다. 이 김밥을 최근에서야 먹어보게 되어 김밥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는정김밥'을 포함해 제주도에서 먹은 다섯 가지 김밥에 대한 내 소감(?)을 써보려 한다. 나는 미식가도 아니고 많은 요리를 먹어 본 전문가도 아니다. 그 때문에 이것은 정말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1. 제주 김만복 김밥

  제주도에 유명한 체인 김밥집이 있다. 이 작은 섬에 약 10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맛과 비주얼이 어느 정도 보장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고급(?) 김밥 정식

  김만복 김밥은 곳곳에 매장이 있어서 접근성이 좋고 예약이나 대기가 없기 때문에 가볍게 들르기 좋다. 이 집에서 가장 유명한 메뉴는 전복 김밥인데 음식의 모습이 마치 "여기 제주도야."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특별한 음식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제주 여행 기념으로 한번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김밥의 맛은 간장 계란밥(?)과 조금 비슷했고 라면은 성게가 많이 들어간 해산물 라면이었다. 비주얼을 보고 기대가 너무 컸나? 맛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조금 아쉬운 점은 가격인데 김밥만 해서 6,500원이고 라면까지 시키면 만 오천 원 정도 하는 고급 정식이다.


2. 다가미 김밥(한림점)

  '다가미 김밥'은 제주도에 4개 지점이 있는 체인 김밥집이다. 김만복처럼 제주도에만 체인으로 김밥집이 이렇게 많이 있는 것을 보면 제주도가 김밥으로 유명하긴 정말 유명한 것 같다. 여기 김밥집은 일단 메뉴가 정말 단순하다. 메뉴는 기본 김밥과 참치, 소고기, 매운 멸치, 장조림 버섯, 화우(스테이크) 이렇게 6가지이다.


  여기 김밥의 특징은 푸짐한 재료이다. 기본 김밥은 그렇게 크지 않은데 소고기와 멸치는 재료가 꽉꽉 차서 정말 컸다. 젓가락으로 집어서 먹기 힘들 정도여서 사장님이 비닐장갑을 주신다. 이렇게 큰 김밥은 처음이었다. 손으로 집어 질질 흘리며 먹다 보면 유튜버 '밥굽남'이 된듯했다. 음식을 먹으며 야생적이고 원시적인 경험을 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김밥에 재료가 많이 들어가서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멸치 김밥은 매콤해서 조금 기름질 수 있는 소고기 김밥이 질리지 않게 해 주었다. 가격도 일반 김밥 2,500원, 멸치 김밥 4,500원, 소고기 김밥 5,500원으로 양과 비교해 저렴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먹을 때 추한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커플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나는 친구와 한라산에 올라가기 전 이 김밥을 싸갔었다. 평소에 김밥은 보통 두 줄씩 먹는데 여기 김밥은 한 줄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힘들게 오른 산에서 손으로 뜯어먹는 김밥은 원시적이고 재미난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등산하거나 물놀이 같은 액티브한 활동과 찰떡인 김밥이다.



 

 서울에서 오랜 연인과 이별을 한 친구가 왔다. 이전에 이별 소식을 전해 듣고 전화 통화를 하는 중 제주도에 와서 힐링하고 가라고 했던 말이 현실이 됐다. 처음에는 사실 조금 걱정이 됐다. 너무 우울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나는 오래 사귀다 헤어진 친구들을 위로해주는데 서툴다. 내가 그렇게 긴 연애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별한 사람의 아픔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이별한 친구에게 항상 "힘내.", "더 괜찮은 사람이 나타날 거야." 같은 피상적인 위로의 말만 건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책에서 보았던 '깊은 상처가 있을 법한 사람에게 "힘 좀 내!" 같은 섣부른 말은 위로가 아닌 강요가 될 수 있다.'라는 문구가 떠올랐고 이번 여행에서 나는 "힘내!"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나만 믿고 멀리 비행기를 타고 제주까지 온 이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고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의 감정을 찬찬히 느껴보기로 했다. 


  친구의 첫 모습은 생각과 다르게 너무 활발했다. '오랜 연인과의 이별은 개운함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까지 친구는 이별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즐겁게 돌아다녔다. 저녁으로 맛있는 회에 소주도 한잔 마시고 나니 친구는 기분이 더 좋아진 것 같았다. 


  그날 밤 숙소는 친구에게 새로운 인연을 만나보라는 의미에서 조용한 파티가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잡았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은 숙소에 발을 딛자마자 우리를 두근대게 했다. 마치 대학교 MT를 가기 전 장을 보듯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편의점에서 사람들과 함께 먹을 소소한 다과 거리와 맥주를 샀다. 그리고 체크인을 한 뒤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거실에서 모이는 작은 파티에 참석했다. 나는 구석 자리로 가려고 하는 친구를 잡아 사람들 속 자리로 들이밀었다.


  하지만 막상 자리가 마련되니 "제주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 거야!"라고 호언장담하던 친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친구는 말이 많이 없었고 잔잔히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친구는 맥주를 한 잔 채 다 마시기도 전에 먼저 잔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오던 노을의 '늦은 밤 너의 집 앞 골목길에서'라는 노래를 잊을 수가 없다. 오늘 처음 친구의 가장 슬픈 얼굴을 봤고 그 얼굴에서 이별에 대한 아픔의 깊이를 봤다. 


  다음 날 친구는 한라산을 오르고 싶어 했다. 신체적 힘듦으로 정신을 분산시키고 싶은 걸까? 하지만 나는 친구의 체력을 알기에 백록담을 갔다 오는 것보다는 조금 짧은 영실코스를 제안했다. 우리는 그렇게 같이 김밥을 사 들고 영실코스를 올라갔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이 추억의 김밥이 다가미 김밥이다. 산 정상에서 비닐장갑을 끼고 손으로 왕김밥을 먹었다.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 따스한 햇볕과 함께 질질 흘려가며 먹은 김밥은 우리를 원시인으로 되돌려 주었다.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내 머릿속은 초록빛이 되었다. 기분 좋게 흘린 땀과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완벽했다. 친구도 어젯밤보다 한결 개운해진 표정으로 산에서 내려와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꺼냈던 "이제 좀 괜찮아?"라는 말이 아직 조금은 이르지 않았나 뒤늦게 후회가 된다. 친구는 이후에 하루 더 여행하고 돌아갔다. 


   "좋은 감정 느끼게 해 줘서 고맙다. 친구야 이제는 너무 이르지 않겠지? 힘내!!!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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