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 구석구석 돈가스
수돈가스는 서쪽에서 가장 유명한 협재해변 근처에 있는 가게로 인테리어가 모던해서 연인과 데이트 코스로 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일반 돈가스뿐만 아니라 치즈돈가스도 먹어야 하기 때문에 혼자보단 함께하는 것이 좋은 곳이다. 튀김에 자신이 있는지 크로켓으로 사이드 메뉴가 있었고 메밀도 팔아서 같이 먹으면 돈가스의 기름진 느낌을 잡아주었다. 5분만 걸어가면 협재 바다를 만날 수 있어 돈가스로 배를 채우고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하나 들고 해변을 걸어보는 게 어떨까?
연돈의 형제인가? 연월 돈가스는 애월의 조용한 마을 안에 있는 돈가스집으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추천으로 우연히 알게 되었다. 돈가스로 바구니 모양을 만들어서 안에 치즈를 담아 뒀는데 돈가스를 찍으면 치즈가 입까지 늘어났다. 돈가스 위에 치즈를 뿌리거나 돈가스 사이에 치즈를 넣은 것이 아니어서 일반 돈가스와 치즈 돈가스를 한 가지 메뉴에서 모두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양도 많아서 '연월 돈가스-16,000원'이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았다.
데미안은 점심 영업밖에 하지 않아 영업시간이 무척 짧다. 서쪽에 작은 마을 어딘가에 있는데 돈가스를 먹으러 가지 않으면 지나갈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가게가 협소하기 때문에 대화하며 여유 있게 식사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테이블도 적어 손님이 많지 않아도 대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여기 돈가스는 정말 기본에 충실한 돈가스였다. 플레이팅부터 보면 사이드는 집 앞에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먹던 돈가스와 비슷하다. 하지만 돈가스를 한입 먹으면 간소한 사이드를 끄덕끄덕 이해하게 된다. 바삭한 튀김에 두툼한 고기를 품은 돈가스는 돈가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원초적인 맛이었다. 거기다 대식가들에게 희소식이 있는데 이 퀄리티 돈가스를 무한리필로 해준다는 것이다. 뷔페처럼 튀겨서 준비해놓은 것이 아니라서 리필 주문을 하면 시간이 걸리지만, 추가 비용 없이 더 먹을 수 있다. 꼭 얇은 경양식 돈가스가 아니어도 클래식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집이었다. 유튜브 먹방 BJ들에게 소문이 나지 않아 이 가게가 오랫동안 유지됐으면 한다.
돈가스 투어 중에 뷰가 멋진 돈가스집이 두 곳 있었다. '서촌제'와 '살찐 고등어'라는 집이다. 이곳들은 동쪽 해안도로 바로 옆에 있어 바다를 보며 돈가스를 먹을 수 있다.
서촌제는 돈가스에 두부 소스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처음엔 듣자마자 '두부와 돈가스가 과연 어울릴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예전 유명 TV 프로그램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하려고 했지만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소홀하게 될까 봐 방송을 거절한 뚝심 있는 집이라고 한다. 그 이후 2호 점도 생기고 시간이 많이 지나 '맛이 변했다.'라는 후기들도 보이지만 그래도 흔히 볼 수 없는 두부 소스의 색다른 맛을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내가 갔던 김녕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매장은 돈가스집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크고 쾌적해서 가족들과 함께 가기 좋을 것 같았다.
살찐고등어는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눈에 안 띌 수가 없는 가게이다. 바닷가 바로 옆에 샛노란 색의 외관을 가진 건물이 돈가스집인데 노란색이 왠지 모르게 동심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어린이 돈가스가 잘 어울릴 것 같은 외관과는 다르게 돈가스는 많이 성숙했다. 세련된 플레이팅에 알록달록 소금이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이 집은 소금과 소스에 정성을 들인 것 같았다. 돈가스에 곁들여 나오는 소금과 소스들이 정말 다양해서 돈가스의 여러 가지 맛을 느껴볼 수 있었다.
송당오두막은 여행객 사이에 핫한 구좌읍에 있는 식당이다. 가까운 거리에 '수요 미식회'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유명한 카페인 '풍림다방'이 있다. 이 지역은 아기자기한 매장이 특색인지 대부분의 카페나 식당들의 규모가 크지 않았다. 송당오두막도 마찬가지였는데 방문했던 돈가스 집중에 가장 좁았다. 누구든 들어가면 "이 공간에서 요리하고 식사가 된다고?"라고 생각이 바로 들 것이다. 웬만한 식당의 주방 정도의 크기에 요리하는 공간과 3개의 테이블이 놓여있다.
나는 혼자 가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3명 이상의 그룹은 먹고 가기 힘들 것 같았다. 여기는 돈가스에 잘 쓰지 않는 갈비로 돈가스를 만드는 '왕갈비 돈카츠'와 돈가스에 명란을 넣은 '명란 돈카츠'가 시그니처 메뉴라고 한다. 나는 왕갈비 돈카츠의 재료가 없어서 명란 돈카츠를 먹어보았다. 평소에 명란을 찾아 먹을 만큼 좋아하진 않아 나와는 잘 맞지 않은 것 같았지만 돈가스를 이렇게도 만들 수 있다는 신선한 생각에 놀랐다.
돈가스 투어 중에 유일하게 돈가스 전문점이 아닌 곳에 돈가스를 먹으러 간 적이 있다. 제주로 온 지 얼마 안 된 19년 추운 겨울, 육지 미련이 남아 거의 매주 비행기를 탔었다. 한 번은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 돼지고기에 와인을 파는 친구의 단골 고깃집을 갔다.
사장님은 정말 친절하게도 와인에 대해 설명도 해주시고 고기도 직접 구워주셨다. 자연스러운 대화 중에 내가 제주도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사장님께서 "제주도에 내 친구가 양식집을 하는데 거기 맛있는데 꼭 가보세요."라고 하셨다. 뭔가 친절하고 맛있는 가게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곳이라 그런지 믿음이 갔다. 바로 메모장에 꼭 가야 할 곳이라고 적어두었다. 제주에 와서 찾아가려고 보니 위치가 애매해서 언제 가지 언제 가지 생각만 하고 있다가 깜빡 잊고 있었다.
반년이 넘게 지나서야 우연히 메모장을 보고 시간을 내 찾아가 보게 되었다. 묘한식당은 에그인헬, 감바스, 각종 파스타와 돈가스를 파는 양식집이다. 식당은 작은 빌라 단지 상가에 있었고 외관과 내부는 정말 평범했지만, 맛은 평범하지 않았다. 혼자 가서 돈가스밖에 먹어보지 못했지만, 돈가스가 돈가스 전문점 못지않게 맛있었다. 특히 사이드 메뉴였던 감자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다른 메뉴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혼자 먹기엔 양이 많을 것 같아 주문하지 못했다. 유독 혼자라는 게 더 서글퍼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