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가스에 눈을 뜨다
사실 최고의 돈가스집을 찾으러 다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단연코 '서황'의 생선가스이다. 이 곳은 '효리네 민박'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이효리가 애월에 살 때 가던 단골 돈가스집으로 나왔던 곳이다.
돈가스를 먹으려고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돈가스가 아닌 생선가스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나는 학창 시절 급식 때 나온 생선가스 이후로 생선가스를 먹어본 기억이 없다. 특히나 돈을 주고 사 먹은 기억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 여기 생선가스는 나의 편견과 이전의 생선가스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었다.
제주도에 유명한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가게들을 몇 번 가봤지만 실망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여기는 조금 달랐다. 두툼한 생선살과 씹었을 때 나오는 고소한 기름, 바삭한 튀김과 부드러운 생선의 식감은 잊을 수가 없다. 이곳은 제주에 와서 가장 먼저 찾아갔던 돈가스집이고 돈가스 투어가 끝나갈 무렵 마지막으로 들렀던 돈가스집이다. 나의 제주 돈가스 여행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한 돈가스집이 바로 여기이다. 돈가스는 다른 곳에 비해 특출하지 않았지만, 생선가스의 맛은 내 제주도 기억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여기서 생선가스의 매력에 빠지게 돼서 다른 생선가스를 파는 곳을 찾다가 새로운 피시 앤 칩스 가게를 발견하게 되었다.
'카페 태희'는 곽지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는 아주 작은 가게이다. '서황'은 대기도 해야 하고 시간을 맞추기도 힘들지만 '카페 태희'는 영업시간이 길고 순환도 빨라서 대기 없이 편하게 생선가스를 먹을 수 있다. 거기다 바로 앞이 해변이기 때문에 테이크아웃을 해서 모래 해변에 앉아 맥주와 함께 바다를 보며 먹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내가 간 날에는 아쉽게 비가 내려서 실내에서 먹었지만 구름 낀 하늘과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예전 영국 여행을 갔을 때를 떠올리게 해 줬다.
내 기억에 영국은 하루에도 두세 번 날씨가 바뀌었는데 한 번은 꼭 흐린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도 이렇게 흐린 날에 피시 앤 칩스를 먹겠다고 혼자 골목골목 돌아다니다가 작은 식당에 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영국의 대표 음식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찾아가서 먹었었는데 기억이 잘 안 나는 걸 보니 맛있게 먹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생선가스를 사 먹다니! 나이가 들면 정말 입맛이 변하나 보다.
양념이 된 블랙 피시 앤 칩스와 양념이 되지 않은 일반 피시 앤 칩스가 있었는데 나는 시그니처라고 되어 있는 일반 피시 앤 칩스를 시켰다. 음식은 10분 정도 만에 금방 나왔다. 기름종이와 그 위에 감자와 튀김을 쌓아둔 투박한 플레이팅이 피시 앤 칩스라는 이름과 잘 어울렸다. 첫입이 정말 맛있었다. 바삭한 튀김과 부드러운 생선 살이 깨끗한 기름과 좋은 재료를 썼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밥을 먹은 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한 접시를 다 먹을 수 있었다.
대구를 사용해서 요리하신다는데 살이 되게 두껍고 부드러웠다. 조금 아쉬운 점은 대구는 학교나 직장에서 급식 메뉴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생선이라 대부분 사람들이 이 맛에 익숙할 것이다. 생선의 신선함과 튀긴 것의 부드러움과 고소한 맛은 따라갈 수 없겠지만 근본적인 맛은 대구탕 안에 든 대구와 비슷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에 먹다 보면 질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양한 생선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곽지해변 앞에서 입과 눈을 즐겁게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가볍게 생선튀김이 맛보고 싶을 때는 카페 태희를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