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나는 이번에 돈가스 여행을 하면서 백종원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음식의 맛을 연구하기 위해 같은 요리를 하루에 두세 번 먹기도 하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기 위해 멀리 비행기를 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만의 제주도 최고의 돈가스집을 찾기 위해 쉬는 날에는 점심, 저녁 하루 두 끼를 돈가스로 채우기도 하고 돈가스를 위해 한라산을 넘는 장거리 운전을 하기도 했다. 약 3달간 수많은 돈가스집을 갔었고 맛집 투어가 끝난 후에는 몇 달간 돈가스는 물론 튀김 요리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비용도 많이 들었는데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돈가스가 결코 저렴한 음식이 아니었다. 옥수수 콘과 양상추샐러드 그리고 달짝지근한 갈색 돈가스 소스에 찍어 먹던 집 앞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그런 돈가스를 생각하면 안 된다. 메뉴당 보통 15,000원 정도를 생각해야 하고 비싼 곳은 한 접시에 20,000원 정도 하는 곳도 있었다. 사실 방문한 많은 가게 중에 이러한 가격이 이해되지 않거나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집도 있었다. 하지만 입맛은 정말 주관적이기에 '맛있다', '맛없다'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조심스러웠다. 이번 돈가스 여행은 내 인생 처음으로 음식을 맛보기 위해 잦은 장거리 이동을 했고 느낀 점도 많았다.
고사성어 중에 '삼고초려'라는 말이 있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제갈량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나도 돈가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한 적이 있었다. 지도검색만으로 첫 번째 찾아간 날은 휴무일, 휴무일을 꼼꼼히 확인하고 두 번째 찾아간 날은 재료 소진, 세 번째 찾아간 날 드디어 돈가스를 먹어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찾아갔을 때 '재료 소진'이라는 말이 내 기대를 더 자극했고 '얼마나 맛있으면 이렇게 마감이 빨리 될까? 다음엔 더 일찍 와서 꼭 먹어야지.'라는 오기를 생기게 했다. 하지만 세 번 만에 힘들게 찾아가 내가 얻은 것은 유능한 군사였던 제갈량이 아닌 몸이 성하지 않은 병사에 불과했었다. '이런 곳의 재료가 마감된다고?'라는 생각이 들었고 재료 마감이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대학생 시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었는데 가게 앞 입간판의 앞면은 'OPEN'이라는 글자와 영업시간, 뒷면은 'CLOSE'와 재료 소진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마감하고 퇴근을 할 때 입간판을 뒤로 돌려두고 퇴근을 하는데 그러면 정상적으로 영업을 끝내고 문을 닫을 때도 '재료 소진'이라는 글자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이게 되어 있었다. 사장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찍 퇴근할 때도 문을 닫으면 '재료 소진'이라는 글자가 보이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식당이 인기가 많아서 재료가 떨어져 일찍 문을 닫았구나.'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이런 나쁜 옛날 생각이 돈가스 여행을 하며 떠올랐다. '예약 마감, 대기 마감, 재료 소진' 이런 말들은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여기 그렇게 맛있나? 나도 가봐야겠다.' 혹은 첫 도전에 실패한다면 '다음엔 꼭 일찍 와서 먹어봐야지.' 같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제주도에는 유독 이러한 유혹이 많은 것 같다. 섬 특성으로 재료를 공수하기 힘들기도 하고 외진 곳에 있어 방문자 수가 들쭉날쭉해서 인원수를 정확히 예측해 재료를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멀리서 온 손님이 가게를 찾아갔다가 '재료 소진'이라는 푯말을 보면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1:30분에 오픈하는 가게가 오후 2시에 재료가 소진된다면 조금 더 재료를 준비해놨을 수 있지 않을까? 준비한 재료만큼 예약금을 받고 예약제로 운영을 하는 것과 같은 방법을 도입해서라도 멀리서 온 손님에 대한 조금의 배려가 있었으면 했다. '예약 마감, 재료 소진' 같은 말들을 사장님의 편의를 위해서나 가벼운 홍보 수단으로 쓰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제주도는 관광지도 띄엄띄엄 있고 작은 동네들이 많아서 '이런 곳에 식당이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진 곳에 음식점이 있는 경우가 있다. 보통 이런 곳들은 점심 영업만 하는 등 영업시간도 짧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곳을 보면 '맛에 얼마나 자신 있으면 이런 곳에 식당을 차렸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곳도 주의해서 잘 찾아가야 한다. 단지 땅값이 싸서 차렸거나 한 시즌 관광객만을 노리고 감성으로 포장해서 가게를 오픈한 경우도 있다. 영업시간이 짧거나 외진 곳에 있어서 맛집은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참고로 제주 시내에서 벗어난 지역에 있는 식당들은 불규칙한 휴무일이 많기 때문에 가기 전에 가게의 SNS나 전화로 문을 열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수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돈가스 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세 곳은 수돈가스, 데미안, 연월이다. 함께 갔던 친구들이 너무 좋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수돈가스는 위치가 협재해수욕장 바로 옆이라 여행 계획을 짜기 편해 다음에 온다면 다시 한번 들러 볼 것 같다. 깔끔한 내부가 가족, 연인 누구와 함께 와도 좋을 것 같았다.
데미안은 경양식도 아니고 두꺼운 퓨전식 돈가스도 아니지만, 그 중간에서 새로운 기본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메뉴가 1가지밖에 없어서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고 식전에 나오는 전복죽도 맛있었다. 무한리필로 배가 터지게 돈가스를 먹었는데도 며칠 뒤에 다시 생각이 날 정도로 물리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한 손님은 연돈보다 이곳의 돈가스가 본인의 입맛에 더 잘 맞았다고 하기도 했다. 돈가스 덕후인 친구와 제주도에 온다면 꼭 한번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다.
연월은 새소리가 들리는 산등선이 고요한 동네에 있다. 실내가 조용했고 좌석 간의 거리도 멀어서 혼자 갔음에도 어색하지 않았던 분위기가 기억에 남는다. 대기도 없었고 한 가지 메뉴에서 치즈와 일반 돈가스를 모두 맛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혼자 가기 가장 좋았던 식당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다음에 혹시라도 혼자 제주도를 왔을 때 이곳이 너무 유명해지지 않았다면 다시 들러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