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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귤 Apr 10. 2021

인터넷 평점에 흔들리지 않기

후기 중독

  핸드폰으로 간편하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요즘 시대에는 무엇을 먹거나 어떤 곳에 가기 전에 다른 사람이 남긴 의견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SNS부터 인터넷 블로그, TV 프로그램들까지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 조금만 시간을 내면 식당과 명소에 대한 많은 후기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너무 습관이 되어버렸는지 심지어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한 뒤에 핸드폰으로 평점이나 후기들을 찾아보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후기들을 보다 보면 어떻게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올지, 음식을 더 맛있게 먹는 법 같은 좋은 팁을 얻을 때도 있다. 하지만 너무 좋은 평은 기대치를 잔뜩 올려놓기도 하고 나쁜 평은 편견을 만들기도 한다. 나도 지금까지 이러한 평점에 의존하며 여행을 다녔었는데 제주에서 이러한 편견을 깨준 고마운 친구가 있다.


  10년도 넘게 알아 온 고등학교 친구가 제주도에 온다고 했다. 정말 좋은 친구이지만 이 친구와 나는 조금 다르다. 요즘 말로 하면 아재 감성이라 할까? 깔끔한 레스토랑보다 허름하지만, 옛 감성과 구수함이 있는 식당을 좋아하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카페보다는 경치 좋은 곳에서 노상으로 맥주 한잔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다. 친구의 방문 소식에 허겁지겁 인터넷 검색으로 친구를 데려갈 곳들을 찾기 시작했다. 경치 좋은 카페, 평점이 높은 식당 등 평소와 같이 인터넷 후기를 참고해서 찾았다. 


  친구가 오자마자 나는 자신 있게 계획해 놓은 장소들로 안내했다. 유명한 맛집과 디저트 가게, 카페들을 방문하면서 친구는 "좋다."를 연발했다. 하지만 10년을 넘게 알다 보니 진짜 '좋다'와 영혼이 없는 가짜 '좋다' 정도는 구별할 수 있었다. 친구의 마음속엔 뭔가 아쉬움이 남아있는 듯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저녁을 먹기 전, 해가 질 무렵 우리는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렀다. 카페에 앉아 잠시 쉬는 중에 문뜩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내 취향의 장소들만 너무 친구에게 강요하는 게 아닐까? 제주에서 어떤 곳을 가면 친구가 정말 좋아할까?". 비록 짧은 생각의 시간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내 욕심을 조금 내려놓자.'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고뇌의 공간 카페록록

  오늘 하루 동안 내가 정한 스케줄을 완주하기 위해 정말 빠듯하게 돌아다녔었다. 시간에 맞춰 식당에 가기 위해 멋진 해안도로를 달리면서도 주변을 보거나 잠깐 멈춰볼 여유조차 없었다. 문뜩 해안도로 중간중간 친구가 '와! 여기 좋다.'라고 했던 말을 흘려들었던 게 미안했다.


  카페를 떠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바닷가의 허름한 횟집을 발견했다. 손님도 없고 위생도 썩 좋은 것 같지 않았지만, 친구는 괜찮아 보인다고 했다. 나는 짧은 순간에 핸드폰 검색을 해보았고 역시나 평이 그다지 좋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친구의 취향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반성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께름칙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습관이 참 무서운 것 같다. 


  우리는 전복죽과 회 그리고 친구를 위한 소주 한 병을 시켰다. 막상 앉아 보니 생각보다 좋았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바닷바람과 함께 먹는 회는 새로웠다. 뭔가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다 사람도 없고 좌석도 넓어 친구와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묵혀놨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하늘이 어느새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며 소주를 한잔하는 데 오늘 처음으로 친구의 입에서 진심이 담긴 '좋다'라는 말이 나왔다. 


아재감성 아니죠 누아르 감성

  다음날부터는 오름이나 바다 같은 큰 목적지만 정하고 가다가 '여기 좋다.'라는 말이 나오면 무조건 차를 멈췄다. 편의점에서 맥주와 음료를 사서 바다를 보며 하염없이 앉아있어 보기도 하고 지나가다 보이는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기도 했다. 길가에 정자가 보이면 그곳은 곧 우리의 카페이자 휴게소였다. 이번 여행은 처음으로 평점에 의존하지 않는 여행이었고 이것은 고맙게도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을 만들어 주었다. 혼자였으면 가지 못했을 곳을 가보고 해보지 못했을 것을 하면서 색다른 여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카페이자 휴게소

  이번 여행이 끝나고 나는 방문자 후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기 전에 인터넷을 검색하면 메뉴나 내부 인테리어 같은 것을 미리 볼 수 있다는 점은 참 좋은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남긴 리뷰을 맹신해 방문할지 말지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한 번은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했을 때 블로그의 한 페이지 전체가 칭찬으로 도배된 유명한 디저트 집에서 줄을 서서 빵을 먹은 적이 있다. 첫입을 먹고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기다릴만했다." 하지만 남은 빵을 집에 가서 먹을 때는 이게 오전에 먹었던 빵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달랐다. 나는 이때 막 나온 따뜻한 빵은 어느 빵집에서 사 먹어도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어떤 가게를 방문한 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맛있다고 올리면 그곳이 바로 맛집이 돼버리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사람들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광고 플랫폼에 계정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한 명 한 명의 리뷰의 파급력이 정말 큰 것 같다. 사람들은 특정 리뷰나 글을 보고 장소를 찾아가고 만족스러우면 본인의 계정에도 올리게 되고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보는 급속히 퍼지게 된다. 


  내가 우연히 지나가다 들른 식당을 SNS에 맛있다고 올렸는데 운이 좋게 크게 홍보가 되어버린다면 거기는 맛집이 된다. 나도 맛집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길을 따라가는 것만이 아닌 자신만의 맛집, 핫플레이스 지도를 그리며 여행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남들이 가는 곳을 나도 가야지.', '더 맛있는 곳 더 멋진 곳을 봐야지.' 같은 욕심을 조금 내려놓는다면 더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에겐 5점 만점이었던 식당과 카페


으음...이었던 장소들

((요즘에는 돈을 내면 평점을 높게 만드는 작업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거기다 경쟁업체의 악성 후기도 있다고 하니 낮은 평가가 지속해서 올라온다면 의심해 볼 수 있겠지만 몇 개의 나쁜 후기만 보고 색안경을 끼는것은 섣부른 것 같다.))


  제주에는 구석구석 식당과 카페가 정말 많다. 평점과 인기순으로 제주에서 방문할 식당과 카페를 주르륵 뽑아오는 것보다 그날그날 유동적으로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해서 나만의 맛집을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음식점이나 카페를 찾아갈 때는 메뉴나 테마만 조금 세부적으로 정한다면 실패할 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다가 보이는 야외 횟집을 가고 싶다고 정한다면 지도에서 가까이에 있는 이러한 가게를 찾아본다. 검색으로 위치와 메뉴, 내부 사진 정도만 간단히 보고 마음에 든다면 찾아가본다. 우연히 갔다가 숨겨진 맛있는 집을 찾게 될 수도 있고 맛이 부족하더라도 바다가 보인다면 내가 원하는 부분에선 어느 정도 맞기 때문에 아쉬움이 조금 덜하다. 나도 앞으로 인터넷 평점을 보지 않고 가는 장소들을 하나씩 늘려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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