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과 해안 산책로
표선해수욕장은 백사장 넓이가 비현실적으로 넓다. 썰물 때면 백사장이 하도 넓어서 백사장 시작에서 10분은 족히 걸어 나가야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바다를 향해 걷다 보면 백사장 곳곳에 바닷물이 물웅덩이처럼 고여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모습이 정말 예뻤다. 샤워 시설 등 편의시설도 잘되어있었는데 외진 곳에 있어서 그런지 한여름에도 크게 북적대지 않았다. 근처에 유명한 해비치 리조트가 있는데 나중에 꼭 리조트에 머물면서 모래사장을 원 없이 걸어보고 싶다.
하도 해수욕장은 해안도로를 지나가다 지도를 보고 우연히 들른 곳이다. 숨겨진 해변이라고 생각하고 들뜬 마음에 찾아갔지만, 실망이 컸다. 주변에 편의시설도 거의 없고 해변 자체도 관리가 잘 안 된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날씨가 좋은 날임에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해변에서 멀리 우도를 볼 수 있어서 정비가 잘된다면 김녕-월정리-세화에 이어 동쪽의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광치기 해변은 제주도에서 사진 찍기 가장 아름다운 해변인 것 같다. 사진 한 컷에 성산 일출봉과 투명한 바다를 모두 담을 수 있다. 게다가 동쪽 끝에 있어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나는 광치기 해변을 처음 보고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올랐다. 영화에서 나왔던 처음 발견한 행성의 표면처럼, 바닷물 사이 곳곳에 돌들이 융기해있고 그 위에 초록색 이끼가 앉아있는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신비로웠다. 곳곳에 고여있는 물은 깊은 산 계곡물처럼 맑아서 사진을 찍으면 하늘이 비칠 정도였다. 초록색과 파란색만으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세화해수욕장과 평대 해변이 있는 구좌읍은 요즘 제주에서 가장 핫한 동네이다. 대형식당이나 특별한 관광지는 없지만 구석구석 작은 책방과 식당, 아기자기한 카페가 많이 생겼다. 바다색이 투명한 에메랄드빛을 띠고 극성수기만 아니면 사람도 많이 없어서 조용히 산책하거나 바다를 보기 좋다.
세화해수욕장 바로 옆에는 매월 5, 10, 15, 20, 25, 30일에 열리는 세화민속오일장이 있다. 제주의 향토적 감성을 느껴보고 싶다면 날짜를 맞춰 시장에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한 시간 정도면 구경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시장으로 각종 공산품과 과일부터 해산물까지 없는 게 없다. 가을 겨울철에 가면 신선한 귤을 싸게 살 수 있으니 시장에 들러 귤로 차를 가득 채워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바다만 보러 갈 때에는 장날에 해수욕장 근처가 붐비기 때문에 이날을 피하는 것이 좋다.
또 세화해수욕장에는 해변을 따라 낮은 방파제가 있는데 이 길을 따라 세화 항구 등대까지 걷다 보면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먼 푸른 바다를 보며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으면 슬픈 노래는 나를 금세 비련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신나는 노래는 뮤지컬 주인공이라도 된 듯 발이 절로 굴러지게 한다.
월정리는 제주도에서 해변 바로 앞에 카페가 가장 많은 곳으로 카페 천국이다. 카페들이 바닷바람을 맞고 오래돼서 조금 낡아 보이는 곳도 있지만, 어딜 가도 바다를 볼 수 있는 오션 뷰이다. 해변 곳곳에 SNS 감성의 의자를 둬서 의자에 앉으면 해변을 배경으로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여러 물놀이 관련 렌털 샵들도 있어서 투명카약을 타거나 서핑체험도 할 수 있다. 월정리는 관광에 최적화된 장소이다.
김녕은 동쪽에서 가장 자연에 가까운 해변이다. 주변에 상점이나 카페는 볼 수 없고 넓은 백사장과 맑은 바다만 보인다. 그래서인지 물이 유독 깨끗한 것 같았고 옛 모습이 잘 간직된 느낌이었다. 특히 김녕 해변 근처에 풍차들이 돌아가고 있는데 이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컴퓨터 부팅 화면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김녕은 제주에서 바람, 돌, 바다를 함께 느끼기에 가장 좋은 해변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제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해변은 함덕이다. 함덕은 시내에서 차로 30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깝고 해변에 카페 등 편의시설이 가지런히 갖춰져 있다. 특히 해변 바로 옆에 나지막한 서우봉이라는 오름이 있는데 해변에서부터 이어진 길을 따라 산책하면 한걸음 오를 때마다 달라지는 함덕 바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시내와 가까워서 오염이 되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제주스러운 에메랄드색 바다와 작지만 오름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이곳이 나는 정말 좋다. 저녁 늦게 가도 가로등과 고깃배의 불빛으로 편안한 어둠 속에서 바다를 느낄 수 있다. 구름이 적당히 있는 맑은 날, 썰물 때 가면 투명하고 얕은 물에 하늘이 비추어져서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을 잘 찍으면 제주도에서 저 먼 남미의 우유니 사막 느낌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제주의 바다 이야기하면서 해변 산책로를 떼어 놓을 수 없다. 제주에는 바닷가 옆에 산책로가 잘 조성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차도 옆 좁게 난 길을 걷거나 해수욕장의 모래나 자갈 위를 걷는 것과 같이 어쭙잖은 곳이 아니다. 바다 바로 옆 불쑥 올라있는 오름의 둘레길을 걸을 수도 있고 얕은 바다 위, 거대한 풍차들 사이에 만들어진 데크를 걸어 볼 수도 있다.
다섯 가지 해안 산책로는 사람들이 많이 다녀 길도 잘 정비되어 있고 차가 없는, 오로지 인도 전용이라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들고 걸어도 좋고 이른 저녁을 먹고 지는 해를 보며 산책해도 좋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한번 가보면 그 매력에 빠져 버릴 수 있으니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가도록 하자. 다만 대부분 가로등이 없기 때문에 저녁 늦게는 어둡고 위험할 수 있어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이곳이 아니더라도 섭지코지 같은 유명한 관광지도 있으니 제주에 오면 취향에 맞는 해안 산책로를 찾아 꼭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