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박해가 본격화되고 세도정치가 시작된 시기....
정조 승하 후에 즉위한 순조 때부터 조선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정조는 생전에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고 세자가 어리기 때문에 세자빈 가문인 안동 김씨가 세자의 든든한 배경이 되기 바랐다. 단종의 예를 생각했을 때 세자가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순조는 11세에 왕위에 올랐다.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 3년 동안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했다.
정순왕후가 3년 후 수렴청정을 거두었으나 이미 세력은 안동 김씨 가문에 쏠렸고, 순조는 제대로 정사를 펼칠 수가 없었다.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는 등 나라가 어지러웠고 이 와중에 탐관오리들은 극성을 부렸다.
아들인 효명세자가 영특했으므로 순조는 세자에 기대를 걸고 대리청정을 맡겼다.
안동 김씨에 몰린 세력을 분산시키려고 세자빈 친정인 풍양 조씨 가문에 힘을 실어 주었지만, 효명세자가 일찍 죽으면서 순조의 기대는 와르르 무너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깝게 생각되는 부분이다. 효명세자는 군주로서의 능력이 출중했지만 일찍 세상을 떠나 조선이 부흥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결국 순조가 승하한 후에 효명세자의 아들인 헌종이 즉위했다. 그때 왕의 나이 겨우 8세였다.
그다음 왕은 강화에서 나무꾼을 하던 철종이었다.
안동 김씨를 주축으로, 그 뒤는 풍양 조씨가 뒤를 잇다가 다시 안동 김씨가 세력을 잡는 등 어린 왕, 무지한 왕을 앞세우고 자기들이 정치를 했다. 그 기간은 자그마치 60년이나 되었다.
이렇듯 폭주하는 세도정치에 제동을 건 인물이 흥선대원군이었다.
안동 김씨 가문의 눈에 띌까 납작 엎드려 왕위에 아무 관심 없는 것처럼 지냈다.
결국 철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이 왕위에 올라 고종이 되었다.
이렇게 된 건 안동 김씨 세력에 눌려 있던 풍양 조씨 신정왕후의 비호와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흥선대원군은 사도세자의 후손이기는 하나 그것은 법적으로 그랬을 뿐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직계 후손이었다.
또한 흥선대원군의 큰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을 왕위에 세운 건 신정왕후나 흥선대원군의 섭정이 쉬웠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몰아내어 안정된 나라를 만들 줄 알았으나.....
결국 흥선대원군도 정치에 대한 자신의 야망을 드러냈다. 왕비도 세도정치를 꿈도 못 꿀, 세력 없는 가문에서 간택했는데 그 주인공이 명성황후였고 그 뒤의 역사야 말해 뭐 하겠는가.
명성황후는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후손이었으니 문벌은 있었으나 그 무렵 가세가 기울어 이렇다 할 뒷배경이 없었다.
아버지와 친형제가 없어 안심했는데 명성황후는 세력을 얻자 여흥 민씨 가문의 먼 친척까지 끌어모아 요직에 앉혔다. 흥선대원군 입장에서는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었다.
구한말은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세력다툼으로 엎치락뒤치락했고, 백성들은 여전히 힘들고 가난한 삶을 살았으니 참으로 지도자 복도 없었다.
정조 승하 이후 백성들에게 태평성대가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