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을 사유하기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어느 제삿날의 풍경이 어린 내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다. 남자 어른들은 탁상에 앉아 잡담을 나누는 반면, 여자 어른들은 음식을 준비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던 나는 어머니에게 "왜 남자들은 가만히 있어?"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나름의 대답을 해주셨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재차 큰 소리로 되물었을 때, 주변의 어른들은 웃음으로 답했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세상에는 '원래 그런 거니까 묻지 말라'는 답변으로 넘어가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나는 페미니즘적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아직 사회화가 덜 되고 규범과 전통이 스며들지 않은 어린아이의 눈에 기존의 '성역할'은 살짝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왜 요리는 여자 몫인 걸까? 언제부터 이렇게 나뉜 거지? 놀랍게도 요리만이 아니라 일상사의 수많은 활동이 남자/여자 이분법에 따라 선이 그어지고 구분된다는 사실도 차츰 깨달아 갔다.
초등학생 때에는 여자아이로 곧잘 오해받았고 놀림받았다. 그럼에도 어떤 문제의식도 느끼지 않고 살았다. 굳이 '남자'라는 타이틀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었으니까.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남자다움'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험한 환경 속에서는 더 남자답게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자연스레 남자들끼리의 농담, 놀이, 언어에 익숙해졌다. 고등학교-대학교-군대의 코스를 거치며 나는 더욱 '남자'스러워졌다.
스스로를 어엿한 남성으로 정체화한 이후, 군대라는 통과의례를 맞이했다. 내가 입대했을 즈음, 세상은 강남역 살인사건과 미투 운동으로 인해 혼란과 논란 속에 있었다. 거리로 나온 페미니즘 열풍은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나 역시 무차별적 살인사건과 가부장제, 여성 차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왜 익명의 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답을 찾고자 주말 외출을 이용해 도서관으로 향했고, 마음에 끌리는 제목의 페미니즘 책을 골라 빌려 보았다.
처음 읽은 책은 《빨래하는 페미니즘》이었다. 이 책 덕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페미니즘 사상가들의 계보를 톺아보고, 페미니즘의 주요 테제가 무엇인지 감을 잡아갔다. 그다음에는 벨 훅스의 책을 읽고, 연이어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읽어 나갔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의 책부터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글까지. 정신 나간 범죄자부터 (ex. 발레리 솔라나스) 안티페미니스트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온건한 사람도 있었다. 새롭게 접한 '교차성' 개념과 다채로운 스펙트럼에 머리가 아찔했다. 주디스 버틀러나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접하게 되고서는 더욱 머리가 아파졌다. 아무튼 나의 페미니즘 입문은 이런 식으로 우당탕 막을 올렸다.
사실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는 것을 망설인다. 많은 페미니스트가 가부장제 비판에 지나치게 몰두해 모든 문제를 가부장제로 환원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남자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 자체가 성립 가능한지에 대한 답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내 부족한 식견 탓일까? 모르겠다). 남성의 몸에, 남성의 경험 속에 갇혀 있는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자임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책을 읽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양한 관점, 세계관과 대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생리통의 고통이나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걷는 공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며, 출산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오래갈 수 없다는 평가를 받거나 직업적 성공을 거뒀을 때 가정 소홀의 의심과 비난을 받는 부당함을 경험해 본 적도 없다. 호칭 앞에 '여' 혹은 '여류'라는 수식어가 붙은 경험도 없다. 그탓에 더욱 페미니즘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여성과 비남성적 존재가 마주하는, 세계의 견고한 벽에 어설프게라도 가닿고픈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프란츠 카프카가 자신의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에 등장하는 말이다. 카프카는 반문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어야 할까?" 카프카는 일갈한다. '책은 도끼다' 페미니스트들의 이론과 주장이 실제 세계의 현실에 부합하든 아니든, 그들의 책과 글을 읽을 때 나의 굳은 사고에 금이 가고 확장이 이루어진다. 많은 남자분들이 페미니즘 책을 읽었으면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들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남자가 바라보는 세계 이외의 풍경을 바라볼 기회이니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현인 중 '테이레시아스(Τειρεσίας)'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운명을 경고하고 오디세우스에게 저승에서 귀환하는 법을 알려주는 등 지혜로운 자의 으뜸으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가 가장 지혜로운 자로 거듭난 이유 중 하나가 굉장히 흥미롭다.
그는 남성과 여성의 삶을 모두 겪어본 인물이다. 두 마리의 교미 중인 뱀을 방해했다가 신의 징벌을 받아 여성으로 성전환이 되어 7년을 살았다. 양성의 사뭇 다른 삶의 궤적을 경험한 탓인지 그는 가장 지혜로운 자가 되었다. 다른 성별로 살아가며 얻은 이해와 성찰이 그의 눈을 트게 해 주었던 것이다. 페미니즘 책을 읽는 재미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여성과 비남성의 삶과 어려움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새로운 시각과 지평을 열어주는 것!
우리 모두는 수많은 당위, 규범, 제한 속에서 살아가고, 이 안에서 결코 편안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편안함을 성취했어도 이는 자신 안의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하고 깎아내는 과정을 겪고 나서야 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나 자신을 남성이거나 여성이라기보다는 그저 인간으로 느낀다. 또 나는 인간이기에 인간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도 남의 일로 보지 않는다(테렌티우스). 젠더 이분법을 벗어나 다름을 포괄하는 인간의 일원으로서 사유하는 힘을 기를 수 있기를 조심스레 소망해 본다. 그 출발점으로서 당신에게 페미니즘 책을 한 번 펼쳐보는 것을 권유해 본다. 감동을 느끼든, 반감을 느끼든 일단 드셔보시라. 재미는 확실히 보장드리니.
*첨언하자면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를 사유하는 것이 아닌 게이와 레즈비언, 인터섹스, 트랜스젠더 등의 퀴어도 함께 포괄하는 시각도 필요하다고 한다. 참으로 지난한 길이지만 걸어볼 가치는 있다. 길동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