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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구일 Oct 10. 2020

군대라는 마지막 방파제, 사고 참 많이 쳤더랬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군인 (출처 : pixabay.com)

군복무 시절 우리부대 장병들은 사소한 말썽들을 번번히 치르곤 했다.


우리나라 군대는 엄격한 규율을 갖고 있다. 

그러나, 되는대로 살아왔던 나를 비롯한 20대의 청년들이 군대문화에 익숙해지고 또 적응하는데는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도를 넘게되면 또다시 사회에서 쌓아온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장병들도 종종 크고작은 사고를 치곤 했다.


소대장 시절 두 용사가 싸움을 벌였던 적이 있다. 한 명은 안경을 낀데다 교정기를 착용한 상병, 한 명은 전역일이 얼마 남지 않은 병장. 싸움의 원인은 상병이 생활관 내 분대원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병장의 면전에 심한 욕설과 모욕을 했기 때문이나 병장은 그 화를 참지 못하고 상병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 결과 상병의 입술이 교정기에 찢겨 나가게 되었다.


이후 폭행죄로 고소를 하네 마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만 당시 소대장이었던 나는 엄밀히 말해서 고소를 한다면 처리해야할 업무가 늘어날 뿐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앞으로 그 생활관에 남아 군생활을 계속해야하는 장병들에게 결코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병장은 서글서글하며 어딘가 어리숙한면이 있는 친구였고, 상병은 평소에도 불만이 많고 툴툴대는 성격이니, 이번일을 바로잡지 않거나 너무 피해자 입장에 치우쳐 생각한다면(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앞으로 계급 체계가 문란해질 것이며 군기강이 바로 서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었다. 부대 분위기가 삭막해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군 (출처 : pixabay.com)

 나는 둘을 따로 불러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줬다. 욕설로도, 주먹으로도 해소되지 않을 갈증들을 풀어주기로.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나니 역시나, 그 시발점은 사소했고 서로의 오해를 풀 수 있는 더 좋은 방법도 많이 있었다. 서로가 마음을 닫고 오래간 묵혀온 갈등들, 흔한 싸움의 원인. 군생활 선배를 무시하고 매번 깐족거리는 후임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들이 쌓여 폭발했던 것.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

 나는 상병에게 '고소하는 것은 네가 결정할 일이다. 하지만 심사숙고하길 바란다. 사실상 폭력을 행한 것은 병장이 맞다만 너도 일방적인 태도로 그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는지 잘 생각해봐'라고 훈계를 가미해 타일러 보냈고, 

병장에게는 '우리 사회는 어떠한 이유라도 폭력은 허용치 않는다. 특히 군에서 이러면 네가 사회에서 이런 시비가 붙었을 때 또 못참지 않겠냐. 그런일이 있을 때는 일단 자리를 피하고 소대장이나 다른 간부들에게 알렸어야했다. 이 두가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한다.'라고 말해주었다. 병장은 울며 답답함을 토로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는 이런일이 없을거라, 실수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행정반을 나갔다.


둘 다 심성이 모질거나 악인은 아니다. 아직 여물지 않았기에,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었을 것이다.


상병은 병장을 고소하지 않았으며 청춘 드라마와 같이 둘은 자연스레 화해했다. 병장이 전역하던 날, 둘은 멋적게 포옹하며 서로 미안하다고 했으니.


 이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에는 같은 상병 동기끼리 주먹다짐을 하다 한 명이 창고에서 야구배트를 꺼내와 팔을 가격한 것이다. 당시 당직사관이었던 나는 웅성거리는 소리, 고성을 듣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둘 다 소위 말하는 에이스, 훈련이나 작업 시 부대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으며 사교성도 좋아 생활관 분위기를 늘 밝게 유지하는 분위기 메이커. 

 이번 훈련 때 누가 더 고생했는지 자존심 대결을 하다 주먹다짐으로 번졌다고 한다. 훈련이 끝났으면 푹 쉬어야하는 것을, 그것도 소대장이 당직사관인 날에.

 나는 곧바로 둘을 행정반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중대장에게 연락해 생활관 내 폭행이 발생했음을 알렸다. 둘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취침 시간이 가까웠던지라 중대장은 1차로 내게 상담을 맡기고 다음날 부대로 돌아온다 했다.


가뜩이나 훈련과 당직근무로 피곤해져 있던 나는 둘에게 호통쳤다. 소대장이 당직근무인데 싸움판을 벌이냐며, 평소에 잘하던 놈들이 왜 갑자기 이러느냐고.

당시 장병들과 어느정도 교감을 했던지라 아이들은 불평 가득한 표정대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지시한 얼차려도 진지한 표정으로 성심을 다해 실시했다. 그래, 사람 좋은 녀석들이었지.

하루가 지나자 둘은 뭐가 좋다고 취사반에 나란히 앉아 조식을 먹었다. 나도 그냥 '으이그 자식들'하며 같이 아침을 먹곤 곧이어 출근한 중대장에게 사건을 인계하고 퇴근했다.

군인, 행진 (출처 : pixabay.com)


 부대를 옮기고 세월이 지나 중대장이 되었다.

 나는 이 부대에서 또 한 명의 에이스를 만났다. 간부들도 칭찬이 자자했으며 녀석은 부사관 지원을 희망한다고 했다. 짧은 시간 동안 내게 신임을 많이 얻었던 그런 녀석이었다. 실제로도 서글서글한 품성에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분대장으로서 자기 분대원들을 잘 지휘하고 또 잘 챙겨줬었다.

그러나 중대장 교체 후 실시한 두 번 째 마음의 편지에서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군 복무를 시작하며 선진병영 문화에 발맞추어 부조리를 뿌리 뽑겠다 다짐했던 나는 중대장 취임사에서부터 부조리는 없어야하며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성과 대처를 제시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었다. 내 공표 덕이었을까, 그 마음의 편지에는 나에게 신임을 크게 얻었던 그 용사의 이름이 5건이나 언급되며 그의 잔악한 부조리 행태가 낱낱히 쓰여 있었다.

 나는 편지들을 접수하자마자 그 용사를 피해자들로부터 분리했다. 그리고 피의자와 피해자 양측 면담을 진행했다.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수많은 증거 속에서도 피의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몇몇 용사들이 공공연하게 알고 있었던 터라 결국 녀석은 자신의 죄를 시인할 수 밖에 없었다.

 상습적인 폭언과 욕설, 빌린다는 명목으로 50만원이 넘는 금품 갈취. 녀석은 곧바로 영창에 들어갔다. 사회였다면 더 큰 처벌을 받지 않았을까.

 영창을 다녀와서 죽고싶다며 울던 녀석, 피해자 입장에서는 이가 갈릴지도 모르는 얘기지만 그 녀석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기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정말 열심히 군생활 했고 배운대로 했으며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인 줄 알았다고. 크게 잘못한 일인줄 몰랐다고.


 모두가 나의 중대원이었기에 그랬을지, 녀석의 진심이 보였기에 그랬을지 나는 정말 '잘 했던' 녀석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군 내에서만큼은 적법한 처리까지 끝마쳤으니, 녀석이 전역하는 날까지 끝까지 보듬어주는 것이 마땅했기에.


방파제 (출처 : pixabay.com)
사회로 나가기 전 더 큰 파도 맞기 전에, 예행 연습 했다 생각해

 덧붙여 당분간 속죄하고 우울해할 틈 없이 더 분발해서 유종의 미를 찍고 갈 수 있도록.

 그리고 곧장 중대원을 모아 얘기했다.


"■■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는 잘 알 것이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고 서로를 챙겨줄 줄 알았던 친구다. 너희들 모두 이번 일을 제외하고 보면, 걔가 나쁜놈이라는 생각은 안들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 대부분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 예상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부조리를 색출할 수 있게 중대장과 소통해 준 점 무척 고맙다."


국군, 중대장 (출처 :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
죄는 누구에게나 깃들 수 있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고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우리는 그 죄를 경계하되 사람 자체를 미워하지 말아야한다. 그 죄인이 우리가 될 수도 있으니까.


 녀석은 끝내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했지만 전액 변제를 마쳤고 피의자와 피해자 모두 부대원들과 원만하게 지내며 별 탈 없이 군생활을 마쳤다. 아직도 서운함과 착잡함이 남은채로 위병소로 마지막 발걸음을 옮기던 그 친구의 얼굴이 눈에 훤하다.


 내 경험담 속 사례들이 비교적 가벼운 축에 속하는 일이었을지 모르나 새파란 청춘들이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겪은 일들이었으니 충분히 우리 사회에 빗대어봄직 하다.

 혹여나 자신이나 주변인이 현재 죄를 저질렀거나 나중에라도 그 죄가 깃든다면, 그를 미워하지만 말고 주저없이 도움을 청해라. 미움은 또다른 죄를 낳고 시기와 질투, 편협함으로 우리를 병들게 한다. 더욱이 상처가 곯아 터지듯 더 큰 화를 부르게 된다.


남을 사랑하지 않는 것 또한 죄다. 죄 자체를 미워하라, 그리고 나에게 그 죄가 깃들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자.

작가의 이전글 타임머신은 이미 발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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