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큰 힘이 되는 '넛지'
요새 코로나 확진자의 증가로 집에서 밥을 먹는 때가 많아졌다. 아침에는 어린이집 가기 전에 주로 빵과 과일, 계란 등으로 가볍게 밥을 먹는 편이고, 어린이집에 다녀와서는 한식으로 밥을 챙겨주는 편이다. 이렇게 밥을 자려주면 대부분 밥을 잘 먹기는 하지만, 가끔은 정말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밥을 안 먹을 때도 있다.
홍시는 밥을 먹는 나름의 '식사 패턴'이 있다. 아침에는 다행히 이런 패턴과는 상관없이 밥을 잘 먹는 편이라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가는 시간에 애를 먹인 적은 없는 것 같다. 문제는 가끔 홍시의 저녁식사 시간인데, 이때 가끔 홍시만의 '식사 패턴'이 나타나고는 한다.
온 가족이 같이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습관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유식을 시작할 때부터 항상 같이 밥을 먹어 왔다. 그리고 홍시도 이제 식탁에 앉아서 혼자 밥을 먹는 게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대체로 밥을 혼자서 잘 먹는 편이다. 그런데 가끔은 같이 밥을 먹다 보면 위에서 말한 나름의 홍시만의 '식사 패턴'을 보여준다. 홍시의 '식사패턴'은 쉽게 생각하면 밥을 지을 때와 같이 '뜸'을 들여야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식사를 시작하고 나면 처음에는 반찬이 뭐가 있는지, 어떤 음식이 눈앞에 있는지 천천히 살펴본다. 그리고는 정말 천천히 깨작깨작 밥을 먹기 시작한다. 밥 지을 때 '뜸'을 들이듯이 천천히 먹다가, 어느 순간 '뜸'이 마무리되면 정말 열심히 맛있게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렇게 '뜸'을 들이면서 밥을 먹는 홍시가 가끔은 이 '뜸' 조차도 거부할 때가 있다. 분명 평소와 같은 시간에 좋아하는 반찬으로 밥을 차려줘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는 홍시가 '뜸'을 마치고 나면 밥을 잘 먹는 걸 알고 있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홍시가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시도한다. 처음에는 직접 먹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밥을 안 먹으면 간식을 안 준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홍시한테도 나한테도 에너지 소모가 컸다. 밥을 억지로 먹이려는 부모와 먹지 않으려는 아이와의 기싸움은 직접 경험해 봐야만 알 수 있다. 가끔은 나도 홍시에게 밥을 먹여야 하는 목적이 아닌,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밥 먹는 대결'에서 내가 이겨야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휩싸이기도 했다.
오랜 기간 홍시의 밥 먹기 전 '뜸'들이는 시간을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해결 방법을 찾았다. 홍시에게 밥 먹는 시간을 재미있는 시간으로 바꿔주는 거였다. 밥을 먹는 게 아닌 '놀이'로 인식할 수 있게 홍시의 식사시간을 바꿔 주면서 부터 같이 밥 먹는 시간이 훨씬 수월해졌다.
우리가 지금 홍시와 함께 하고 있는 '놀이'는 두 가지다.
1. 아이의 숟가락으로 순서를 정해서 돌아가면서 아이에게 밥 먹여주기.
2. 아이의 숟가락으로 밥을 뜬다음 돌아가며 숫자를 세면서 5번 후후 불어준 다음 먹기.
간단한 방법인데 글로 쓰려니 생각보다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첫 번째 방법은 아이의 숟가락을 이용해서 아이가 먼저 밥을 한 숟가락 먹으면, 그다음으로 엄마가 아이의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먹여준다. 그리고 그다음 순서는 누구인지 물어보고 아빠라고 대답하면 아빠가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먹여준다. 이렇게 셋이서 돌아가면서 아이에게 밥을 먹여주면 아이는 다음 차례에 밥을 먹여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는 '놀이'를 하며 즐겁게 밥을 먹고는 한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밥이나 국, 반찬 중에 뜨거운 음식이 있다면 돌아가면서 후후 불어주는 행동을 하는 거다. 예를 들면 아이가 밥 숟가락을 뜨면 처음엔 아빠가 5번을 세면서 후후 불어준다. 후후 불어줄 때 아이에게 같이 숫자를 세어 달라고 하면 같이 세면서 재미있어한다. 이런 식으로 아이가 밥을 숟가락에 뜨면 돌아가면서 후후 불어주는 행동을 해주면서 밥을 먹으면 아이는 역시나 재미있는 놀이라 생각하고 밥을 잘 먹는다.
예전에 읽었던 책중에 '넛지'라는 책이 있었다. 책 내용은 간단히 말하면, 누군가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 강요하는 게 아니라, 옆구리를 쿡하고 찔러서 정말 자연스럽게 그 행동이 나올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거다.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의 발달에 맞춰서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필요로 하는 행동들을 가르쳐줘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그때마다 이 '넛지'라는 책이 생각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고는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 방법은 최대한 아이가 자연스럽게 재미를 느끼면서 밥을 먹게 해주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생각한 방법이다. 물론 이런 방법이 우리 집 홍시한테만 잘 적용되는걸 수도 있지만, 이런 사소한 방법을 공유하다 보면, 또 다른 누군가는 우리보다 훨씬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육아 관련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가 어렵고 생소하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과 생소함도 하나씩 정양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 나가다 보니 점점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어려움이 찾아와도 분명히 잘 해결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렇게 하나둘씩 해결해 나가다 보면 분명 정양과 나도 제대로 된 부모가 되어 있을 거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