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군 Feb 23. 2021

갑자기 말문이 트인다고 하더니 진짜였구나

말이 느렸던 34개월 아이

 이번  연휴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이번  연휴에 일이  있어서 부모님 댁에 홍시를 5 정도 봐달라고 부탁드렸었는데, 5일간 홍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갑자기 수다쟁이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홍시는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행동발달에 있어서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속도를 갖고 있었다. 신생아 시절부터 뒤집기, 기어 다니기, 걷기, 사회성  항상 일반적인 발달 기준보다 조금씩 천천히 시작하는 편이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이런 홍시의 속도가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게 홍시가 세상을 사는 방식이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불안감과 초조함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홍시의 속도를 이해하고 믿어주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2 영유아 검진이었다. 당시 영유아 검진을 받았는데 문진표에 있는 문항들에 대부분이 '아니오'라는 표기를 했어야 했다. 아직 장난감을 서로 주고받지도 못하고, 사회적 반응도 없었기에 그대로 문진표에 표기했다. 그런데  결과 의사 선생님께서 사회성이 조금 늦으니  지켜보고 추적검사를 해보는 것도 좋다고 말씀해주셔서 당시에 제법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것저것 인터넷에 사회성 발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홍시가 문진표 문항대로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불안함과 초조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영유아 검진이 있고 나서 일주일 정도였나, 갑자기 홍시는 문진표에 있는 문항들을 하나씩  스스로 해내고 있었다. 당시에 정말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홍시는 자신만의 속도가 있는 거였구나. 우리는 그저 옆에서 홍시를 믿어주고 옆에서 힘이 되어 주기만 하면 되는구나.

 이렇게 홍시의 속도는 언어 발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예상대로 홍시는 말을 하는 게 비슷한 개월 수의 또래들과는 달랐다. 다른 친구들이 엄마, 아빠를 말하고 여러 가지 단어를 이야기할 때 홍시는 몸으로 대화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급함이나 불안함은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홍시는 분명 자신만의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일 테니 우리는 기다려 주며, 홍시가 올바른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조금씩만 도와주기만 했다.

 물론 우리도 최소한의 의학적인 정보를 공부했고 홍시의 속도가 신체 발달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요새는 유튜브나 대학병원 사이트 등에서 양질의 정보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기에 이런 정보를 참고하여 우리가 언어발달에 있어서 홍시의 속도를 믿고 기다려 주는 기준을 세웠다.

-   이후 눈을  마주치고 상호 간에 행동으로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   시점에 한 단어 이상 말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   시점에 두 단어를 이용하여 문장을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하기

 홍시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알겠지만  내용은 표준 발달 속도가 아니다.  내용들은 예전에 서울대병원 소아전문의 의사 선생님의 영상을 참고하여, 우리가 홍시의 언어발달 속도를 믿고 존중하기 위해 만든 최소한의 기준이다. 대략 표준 발달보다 1년 정도를 후행으로 기준을 삼았고, 우리 역시 위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해당 시점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의학적인 도움을 받으려 했었다.

 이렇게 우리만의 기준을 가지고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리며 하루하루 즐겁게 보냈고, 역시나 이번에도 홍시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특히 글의 처음에 말했듯이 이번 설 연휴를 기점으로 정말 상식적으로 생각이 안될 정도로 어휘 표현이나 문장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사실 주변에서 많은 육아 선배들이 아이들 말문은 갑자기 트인다고 해주긴 했는데 반신반의했었다. 갑자기 아이의 능력치가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됐다. 그런데 요새 홍시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잠재력은  기준으로 이해하려 하고 계산하려 하면 안 되는 거였구나"

 주말 내내 집에서 같이 있으면 하루 종일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홍시를 보고 있으면 정말 너무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하는 거지. 제법 긴 문장들도 구사할 때는 깜짝깜짝 놀란다. 그리고 가끔은 생각보다 어려운 어휘를 이야기해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전부터 홍시의 속도를 믿고 따라주고 있었지만, 이번에 좀 더 확신이 생겼다. 내가 재촉하지 않아도 홍시는 알아서 잘하고 있구나. 그저 나는 옆에서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약간의 방향만 제시해 주면 충분한 거구나 라고 생각이 든다.

 오늘도 퇴근하면 홍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놀 생각에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다.

홍시야 오늘 저녁에도 우리 신나게 놀자!

작가의 이전글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관에 대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