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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책상으로 유인(?)하는 방법

내가 먼저 시작하면 된다.

by 허군

7살 아들이 지금 다니는 학원들은 전부 예체능에 관련된 것들이다. 바둑, 미술, 축구 이렇게 세 가지를 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이것과는 별개로 집에서는 구몬학습지를 통해서 국어와 수학을 하고 있다. 7살 치고는 꽤나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항상 홍시한테 이야기한다.

"홍시야 지금 배우고 있는 것들 중에서 조금이라도 하기 싫은 게 생기면 말해줘. 아빤 네가 너무 바쁘게 사는 것 같아. 힘들면 언제든 배우는 걸 쉬어도 돼."

이렇게 말하면 일단 홍시는 바둑, 미술, 축구 다 재미있어서 계속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구몬 수학과 국어도 조금 힘들긴 하지만 계속할 거라고 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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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30분 정도 책상에 앉아서 구몬 학습지를 해야 하는데, 7살 아이한테는 매일 책상에 앉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다. 하지만 이게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숙제가 늘어나다 보니 매일매일 조금씩 책상에 앉는 연습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예전에는 구몬 학습지가 밀리지 않도록 저녁에 씻고 나오면 아이한테 "아들~! 구몬 할 시간이다! 구몬 하자~!"라고 이야기해서 같이 책상에 앉았다.

그런데 이렇게 엄마, 아빠가 학습지를 매일 하라고 해서 책상에 앉는 모습을 보니 괜히 오기가 발동했다. 아이가 스스로 책상에 앉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오랜 시간을 고민하다가 어느 육아 관련 서적에서 봤던 내용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 부모가 먼저 특정 행동을 꾸준히 해주는 거였다. 책에서는 '파블로프의 개'를 비유해서 이야기해 줬는데, 책 내용을 내 스타일대로 해석해 보니 부모가 먼저 솔선수범하는 행동을 먼저 루틴 하게 해 주면 된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요새는 특정 시간이 되면 홍시에게 이야기한다. "홍시야 아빠 너 책상에 가서 책 좀 읽고 있을게" 홍시가 듣든 말든 나는 이야기하고 홍시방으로 들어가서 책상 옆의 작은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일부러 소리 내서 읽을 때도 있고, 그냥 조용히 10분이고 20분이고 책을 읽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잠시 후 홍시가 쓱 하고 방에 들어와서 "나도 구몬이나 좀 해야겠다" 하고 책상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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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가 와서 책상에 앉아서 책꽂이에 있는 구몬학습지를 꺼낸다. 그리고 깎아놓은 연필을 꺼내서 학습지를 시작한다. 나는 옆에 앉아서 홍시가 온 걸 신경 쓰지 않는 듯이 계속 책을 읽는다. 그러면 잠시 후 홍시가 모르는 한글이 나오면 물어보기도 하고, 덧셈을 다 풀고 나면 맞는지 봐달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읽던 책을 잠시 덮어두고 홍시 옆에 가까이 앉아서 함께 학습지를 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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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분량은 구몬 국어 3장, 구몬수학 3장. 대략 하루치를 다하는데 30분 정도가 걸린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에게 30분 동안 가만히 앉아있기란 쉽지 않다. 문제를 풀다가 집중이 안 된다며 바닥에 내려가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노래를 들어야겠다며 벽에 걸려있는 CD플레이어를 틀기도 한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뭐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유치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일단 책상에 앉으면 홍시가 하고 싶은 건 다하게 해주는 편이다. 그래야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 재미있다고 느껴질 것 같았다. 나도 옆에서 주로 책을 읽기는 하지만, 가끔은 색종이에 편지를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책상이라는 곳에 앉으면 즐거운 일이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책상에서의 짧은 30분이지만, 분명 나중에 홍시에게 도움이 될 거라 믿고 있다. 누군가 시켜서 앉아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방에 들어와서 책상에 앉아있는 거기 때문에 30분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덕분에 나도 요새 책도 많이 읽기도 하고, 가끔 오랜만에 연필을 손에 쥐고 글씨를 쓰기도 하는데 기분이 참 좋다.

우리 잘하고 있는 거 같지? 앞으로도 같이 잘해보자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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