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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아직 SUV입니다

정해진 길보다,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아이들

by 허군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함께 가끔씩 등굣길을 걸어간다. 매일은 아니지만, 아침 일찍 눈을 맞추고 신발 끈을 같이 묶고, 문을 나서 걷는 이 짧은 시간이 요즘 나에게는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교문까지 걸어가는 동안 아이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누군가는 장난을 치며 도망가고, 누군가는 뒤쫓으며 깔깔거린다. 어제 새로 산 키링을 가방에 달고 자랑하는 아이도 있고, 신나게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고양이를 구경하는 아이도 있다.

그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온 동네의 새들이 아침 인사를 주고받는 것 같다. 아이들의 목소리, 움직임, 표정 하나하나에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 길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들한테서 에너지를 충전받는 기분이랄까.


가끔 아들의 뒤를 따라 걷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들은 마치 오프로드를 달리는 SUV 같은 느낌? 멀쩡한 인도를 놔두고 경계석을 밟고 지나가야 하고, 낙엽 쌓인 길이나 움푹 파인 잔디밭은 꼭 밟아봐야 직성이 풀린다. 심지어 아무것도 없는 길에서도 굳이 멀리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길 좋아한다. 그게 더 힘들고, 더 복잡하고, 때로는 신발이 젖기도 하지만 거기서 즐거움과 성취감을 찾는 것 같다.

아마도 아이들한테는 정해진 길보다,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 게 훨씬 재미있는 거겠지? 그런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참 부럽다. 나도 한때는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너무 정해진 길만 걷고 있진 않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SUV 같은 아들도 언젠가는 편안한 세단처럼 변해갈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정해진 속도를 맞추고, 도로의 규칙을 살펴보고,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길을 가는 세단과 같은 모습으로. 그게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이기도 하고, 나 역시 어른으로서 그 길을 권하게 되는 순간이 올 테니까.

마음 같아선, 지금처럼 모험을 즐기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SUV 같은 아이로 쭉 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현실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안다. 점점 더 많은 규칙과 경쟁, 사회적인 틀 안에서 아이는 조금씩 방향을 바꾸게 될 테니까.

그래도 나는 바란다. 적어도 마음만큼은, 아이 안에 있는 SUV의 엔진이 꺼지지 않기를. 삶의 길 위에서 잠시 멈추고, 돌아가고, 낙엽 더미에 일부러 발을 들이는 여유와 용기를 잃지 않기를. 정해진 길을 걷더라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늘 ‘다른 길’을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아이로 자라나기를.

그리고 어쩌면, 아이가 그런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바로 우리 부모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가 SUV에서 세단으로 바뀌는 속도를 늦춰주는 일, 혹은 세단이 된 후에도 다시 진흙길을 달릴 수 있게 용기를 주는 일. 그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응원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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