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자연스러운 영어 교육법
저녁을 먹던 중, 아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빠… 나 영어 가르쳐 주세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이가 먼저 영어를 배우고 싶다니. 잠시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우리 부부는 영어 교육에 조급한 편이 아니다. 한글을 다 뗀 뒤 천천히 시작해도 괜찮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아이가 스스로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데, 우리가 굳이 말릴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기특하고, 대견했다.
아이가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레고 닌자고’ 영어 책이었다. 요즘 아들이 레고 닌자고 시리즈에 푹 빠져 있어서, 얼마 전 아마존에서 영어로 된 닌자고 백과사전을 직구로 사줬다. 책을 받아 들고서는 뜻은 몰라도 그림만 봐도 신이 났는지, 혼자 앉아 책장을 넘기며 스토리를 만들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내가 무심코 말했다. “제목에 나오는 영어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면, 새로운 닌자고 책 한 권 더 사줄게.”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그게 아이에겐 꽤 큰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두 번째 계기는 유치원 방과 후 영어 수업이었다. 며칠 전, 저녁을 먹다가 아들이 울먹이며 말했다. “아빠, 유치원에서 친구들은 다 영어 수업 잘 따라 하는데, 나만 영어 몰라서 아무것도 못 했어…” 그 순간 마음이 짠해졌다. 영어라는 벽을 실감한 듯한 아들의 얼굴. 이제는 그 벽 앞에서 주저앉지 않도록, 즐겁게 넘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즘 우리는 영어를 함께 배우고 있다. 단어를 외우거나 알파벳을 줄줄 쓰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닌자고 책을 한 줄씩 소리 내어 읽고, “Green Ninja”, “Master Wu!” 같은 캐릭터 이름을 파닉스 방식을 이용해서 소리 내어 따라 하며 하나하나 익혀간다. 단순한 발음 연습처럼 보이지만, 아이는 스스로 좋아하는 닌자고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는 뿌듯함 속에서 더 즐겁게 배워간다.
우리는 ‘우연한 학습’을 자주 활용한다.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이거 영어로 뭐게? 아이스크림~” 하고 자연스럽게 말해주거나, 닌자고 장난감을 조립하며 “이건 sword, 이건 helmet” 하고 하나씩 알려주는 식이다. 굳이 책상에 앉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영어가 스며들게 하는 것. 아이도 그런 방식이 부담 없이 좋은 듯하다.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싶을 때, 이제는 알게 됐다. 아이가 먼저 배우고 싶어지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지금부터 외워야 해”보다, “궁금해지는 순간”을 기다려주는 일.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매개로 시작된 배움은, 억지로 하는 공부보다 훨씬 더 오래 남고 깊게 스며든다.
아들이 먼저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 날, 우리 가족의 일상도 조금 달라졌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아이가 웃으며 “이건 영어로 뭐야?”라고 물어올 때마다,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자라는 걸 느낀다. 앞으로도 그 마음이 꺼지지 않도록, 조급하지 않게, 즐겁게 함께 걸어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