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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이와 함께 캠핑을 가는 이유

불편해서 더 가까워지고, 느려서 더 깊어진다.

by 허군

아이가 태어나고 돌이 되기 전부터 우리는 캠핑을 다니기 시작했다. 계절이 바뀌면 짐을 싸고, 지도에 표시해 둔 캠핑장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와이프와 나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캠핑을 즐겨했고, 자연 속에서의 느린 하루들이 우리에게 소중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도 그런 삶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느새, 이유 없이 떠나는 게 오히려 익숙한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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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선 모든 것이 빠르다. 아이들조차도 마찬가지다. 종이가 아닌 태블릿으로 푸는 학습지, 텔레비전 화면 속 자연 다큐멘터리, 스피커로 듣는 새소리. 분명 배움이지만, 그 속에는 감각이 빠져 있다. 눈으로는 보지만, 손으로는 느끼지 못한다. 귀로는 듣지만, 그 소리가 몸에 닿지는 않는다. 그래서 캠핑은 우리에게, 아니 아이에게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직접 겪는 배움, 감각이 깨어나는 하루.


장난감도 없고, 와이파이도 없지만 아이는 결코 심심해하지 않는다. 텐트 옆 나무 아래서 무릎을 꿇고 개미를 따라가다가, 나뭇가지로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돌멩이를 모아 작은 탑을 쌓는다. 운이 좋으면 다람쥐가 눈앞을 가로지르고, 여름밤엔 귀가 따가울 만큼 매미 소리가 울린다. 그런 순간마다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문 채 그 소리를 듣는다. 화면이 줄 수 없는 울림이 자연 속엔 있다. 해 질 무렵이면 셋이서 산 너머로 천천히 내려가는 해를 바라본다. 아무 말도 없지만, 그 고요한 순간이 아이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쌓여가고 있을 거라 믿는다.


캠핑은 사실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의 연속이다. 무거운 텐트를 펴고, 의자와 테이블을 조립하고, 버너를 꺼내 밥을 짓는다. 접시와 젓가락, 수저까지 하나하나 손이 많이 간다. 집이라면 다 엄마 아빠 몫이겠지만 캠핑장에선 다르다. 아이는 “이건 어디에 둘까요?” 하고 물으며 스스로 그릇을 챙기고, 작은 망치를 들고 팩을 땅에 박으려 애쓴다. 텐트 안 이불을 정리하고, 의자에 앉아 물을 데우는 동안 조용히 그 불빛을 바라본다. 아이에게는 작은 일이지만, 그 안에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자각이 담겨 있다. 아주 작은 자립이 그 하루 속에 숨어 있다.


그렇게 하루가 흐른다. 아침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오후 햇살이 젖은 텐트 위에 만들어낸 반짝임, 밤이면 조용히 켜진 랜턴 불빛 아래 이야기들이 흐른다. 불편해서 더 가까워지고, 느려서 더 깊어진다. 말없이도 웃게 되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캠핑을 하며 우리는 다시 가족이 된다.


결국 우리가 캠핑을 계속하는 진짜 이유는 이것이다. 느리지만 직접 해보는 경험, 바람의 냄새와 흙의 온도, 불의 색과 나무의 소리 같은 것들을 오롯이 몸으로 겪는 하루.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 이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아이가 세상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작은 수업 같다.


마치 번거롭지만 그래서 오래 남는 시간 같은 느낌.


아직 글씨도 서툰 아이가 텐트 앞에서 망치를 들고 웃을 때, 우리는 이 느림 속에 정답이 있음을 느낀다. 세상은 점점 더 빨라지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천천히 지나가길 바라게 된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고, 더 많은 세상을 알게 되어도, 언젠가 자연 속에서 보냈던 이 따뜻하고도 느린 하루들이 그 마음속에 단단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디지털 속도에 익숙한 세상에서, 직접 손으로 만지고 느끼는 이 감각들이야말로 우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오래 남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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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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