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은아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오랜만에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기차 여행도 좋지만, 이런 고속버스도 매력 있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은아의 소꿉친구, 공미은은 부모님이 가장 신뢰하는 친구다. 어른들에게 예의 바르고 성실할 뿐 아니라, 은아가 유치원 다닐 때부터 친구였기에 부모님들도 서로를 잘 알고 계신다. 학교 기숙사에서 1년을 보낸 미은이는, 이번 해부터는 대학교 근처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은아는 친구의 첫 독립을 축하하며, 서울 나들이를 겸해서 1박 2일 일정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홀로 외박이라는 걸 처음 해보는 터라 은아는 마냥 설렜다. 오랜만에 미은이와 온종일 놀 생각에 신이 났다. 둘 다 두 달 전부터 아르바이트 일정을 조율하며 만든 귀한 날이다.
한 손에는 재스민 화분과 한 손에는 핑크색 토끼 인형을 들고, 은아가 버스에서 내렸다. 이건, 은아가 준비한 집들이 선물이다. 화분과 인형에는 파란색의 커다란 리본이 묶여있다. 미은이 성격상 집안엔 장식 하나 없을 것이다. 그런 미은이를 생각하며 은아가 고심해서 준비한 선물이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두 사람은 요란스럽게 펄쩍펄쩍 뛰며 만남을 기뻐했고, 짧은 집들이를 끝낸 후, 곧장 예쁜 가게들이 많다는 핫플레이스로 떠났다. 시원한 생맥주에 맛있는 요리, 오랜 벗... 무엇이 더 필요하랴, 둘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저녁 10시, 어서 원룸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전화드려야 한다. 은아와 미은이 서둘러 지하철로 향하는 순간, 갑자기 은아가 주저앉았다. 왜, 하고 은아를 본 미은이 비명을 질렀다. 은아의 가슴에서 피가 번져 나왔다.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는 남자를 지나가던 시민들이 힘을 모아 제압했다. 출혈이 심했던 탓에 은아의 옷은 온통 피로 범벅됐다. 은아는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춥고, 덜덜덜 몸이 떨릴 만큼 아프다. 너무 아프다. 그리고 그 아픔보다 더 큰 감정이 찾아온다. 무섭다. 그건 죽음이 느껴지는 원초적인 공포였다.
나, 죽는 건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하지? 무서워...
은아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죽음을 직감했다.
엄마, 아빠 너무 미안해...
미은아, 우리 부모님한테 제발 나 괜찮았다고 말해줘.
순식간이어서 고통스럽지 않게 갔다고 꼭 전해줘.
보고 싶어, 엄마,
무서워요, 아빠...
말은 한마디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은아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21세 이은아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