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범으로 그 자리에서 체포된 김이분 할머니는, 순순히 칼을 경찰에게 넘겨주고 빛나는 은빛 수갑을 찼다. 이어진 경찰 조사에도 성실히 답변했다.
지켜보는 이가 많았기에, 그날의 일은 여러 장의 사진으로 기록되었다. 이 기이한 사건은, 사람들의 입과 글을 타고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다.
천인공노할 살인자가,
재판 전,
피해자의 유족이 아닌,
고령의 할머니에게,
칼을 맞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빠른 응급조치 덕분에 살인자는 살아남았다. 그는 왜 자신이 낯선 할머니에게 칼을 맞아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어했다. 연고도 연령도 전혀 관계성이 없는 초면이었다.
할머니가 구속 수감되어 있는 사이, 무수히 많은 기자들이 김이분 할머니를 만나길 청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누구를 만나야 할지 몰랐다. 세상 일을 잘 모르고 살아왔다 해도 이쯤 살아보니, 말이 옮겨가는 과정에서 완전히 다른 말로 변질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말을 백신처럼 신선하게 옮길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식별해야 할까 할머니는, 망설였다.
그때 그녀들이 찾아왔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황은혜, 황지선이었다. 그녀들에겐, 지금 할머니가 처한 이 상황을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할머니의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은아가 소개해 준 은아의 지인들이었다.
"사진을 확인해볼 필요도 없었어요. 소식을 듣고 바로 알아차렸어요."
"죄송해요, 은아 소식 듣고 저희가 미리 할머니를 챙겼으면 좋았을 텐데..."
사과를 받지 않아도 될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자 할머니는 난감했다.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괜찮아요. 은아를 죽인 살인마에게 미약하게나마 비슷한 고통을 안겨주게 되었으니, 마음이 편합니다. 그 아이가, 죽을 아이가 아니었잖아요. 그 곱고 착한 아이, 저는 은아를 죽인 그가 인간적인 재판을 받고, 인간적인 처벌을 받는 걸 원치 않아요. 은아의 죽음은 너무나 비인간적인데 어째서 가해자는 인간적인 절차를 받나요? 이건 피해자를 생각하면 너무나, 가혹한 처사예요. 나는 더 이상 참지 않을 거예요. 이런 범죄가 끝없이 반복되는 건, 제대로 된 처벌이 없었기 때문에라고 생각해요. 함부라비 법전이 잔혹하다 해도 범죄자가 한 일에 비하면 전혀 잔혹하지 않아요. 그는 그가 한 걸 돌려받는 것뿐이고, 피해자는 '죄 없이' 당했다는 거예요. 그러니, 몇 배로 벌한다 해도 역시 억울한 건 피해자예요. '나 4대 맞을게, 너 나한테 1대 맞자!' 1대 맞은 사람이 이득을 본 걸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피해자는 1대를 맞고 싶지 않았어요. 함부라비 법전은 그걸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재판은 어떤가요? 여러 가지 이유로 가해자는 0.5대, 0.1대의 처벌을 받거나 때론 집행유예가 이루어지니 이 얼마나 황당한 세상이에요? 판사는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돼요. 그는 똑똑하다는 이유로 응당, 그 일을 당한 피해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처벌 권한을 대신 가진 것뿐이에요. 피해와 가해 유무가 정확한 사건에서 그는 지옥의 신처럼 벌하는 사람이어야 해요. 용서는 오직 피해자만 가능해요. 그런데 왜, 피해자를 대신해 엄벌해야 할 자가, 가해자의 상황을 일일이 헤아려 양형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나요? 대체..., 왜죠? 은아가 이제 세상에 없으니 나는 은아의 지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어요. 이것으로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숨을 쉴 수 있게 됐어요."
변호사인, 지선은 할머니의 변호를 맡기로 했고, 황은혜 박사는 그녀가 아는 가장 진실한 친구를 불렀다. 마침 그 친구의 직업이 기자였다. 할머니의 말은 그대로 냉동되어 세상 속으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