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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Jun 25. 2020

볼튼의 역설은 현재 진행 중

존 볼튼은 그 방에서 무슨 일을 벌이려 했나 

<The room where it happened>는 브로드웨이 최고 인기 뮤지컬 <해밀턴>에 나오는 노래 제목이다. 뮤지컬에서 미국의 초대 재무부 장관 해밀턴에게 정적이었던 버는 '그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라고 다그친다. 


"아무도 몰라, 게임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그 거래의 기술을.

소시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19세기 재상 비스마르크가 말한 <소시지와 법률 만드는 과정은 절대 보여줘선 안된다>는 말은 지금 21세기 미국에서도 유효한 듯 보인다. 453일간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 안보보좌관을 한 존 볼튼이 백악관 '그 방'에서 벌어진 '더러운 거래'를 말해주겠다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걸 보면 말이다. 


"트럼프는 연임해선 안 되는 대통령"


미국 시간 6월 23일 화요일, 존 볼튼의 책이 시판됐다. 선인세로만 200만 불을 받았다는 이 책은 현재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정부의 1급 외교정보를 다루던 대통령 측근의 '회고록 Memoir'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메가톤급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과 각을 세우던 대표적 인물이기에 기밀 폭로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져 최고의 마케팅이 벌어진 것. 


예상대로 출간 전  ABC, NPR, CBS 등과의 인터뷰가 줄을 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미국 언론이 주목하는 부분은 크게 네 가지였다. 


1) 트럼트 정부의 빌런인 대 중국과의 관계 

2) 선거에 큰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푸틴의 영향력

3) 급격히 진전되던 북한과의 협상 과정

4) 최측근이 본 대통령 트럼프


'쿵플루'나 '차이니스 바이러스'라는 트럼프 정부 들어서 중국과의 관계는 험악해지고 주적이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볼튼의 생각은 달랐다. 트럼프는 시진핑에게 미국 농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중국 정부가 미국 농산물을 더 많이 사달라고 요청했다고 증언한다. 대신 중국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인권 문제에 침묵하고 정치.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 볼튼은 그 까닭을 스윙 스테이츠 유권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재선을 위한 수순이라고 얘기한다. 


ABC 방송 인터뷰에서 볼튼은 푸틴을 "똑똑하고 터프한 사람"이고 평한다. 그는 푸틴이 트럼프를 "바이올린처럼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냉전 이후 계속 그랬던 것처럼, 볼튼은 러시아가 미국 민주주의를 간섭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고 이를 위해 지금 푸틴은 악역을 잘 연기하고 있는 중이라고 평가한다. 


뉴스위크는 볼튼이 백악관 보좌관 재직 시 가장 골치 아파했던 문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꼽는다. 강경 매파인 그의 시각으로 김정은과 세 차례나 만나 비핵화와 제재 완화를 논의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을 '순진한 발상'으로 본 것. 볼튼은 북한과 대화하려는 트럼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트럼프에게 “하찮은 작은 나라 독재자가 쓴 편지이며, 그가 폼페이오를 만날 때까지 당신(트럼프)과 만날 자격이 없다”라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당신은 왜 그렇게 적대감이 많냐”며 폼페오에게 “11월 중간선거 이후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테니 전화를 걸어 요청하라”라고 지시했다."

북미 간의 대화의 의미를 전혀 이해 못한 볼튼은 그 동기를 트럼프의 사진 촬영용' '재선용'으로 폄하한다. "사진 촬영과 언론 반응만 강조되어 세 번에 걸친 북미 정상회담이 미국의 이익에 무슨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다."라고 ABC 인터뷰에서 말하고 있다. "재선에만 치중한 까닭에 장기적 고려가 없었다"라고. 그는 책에서 트럼프가 북한에 접근한 것을 소위 말하는 '데이트 전략'이라고 표현했다. NPR 인터뷰에서는 트럼프는 둘 사이의 관계가 파탄 나는 걸 원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간접적으로 말한다.


볼튼에게 언론이 던진 질문 중 빠지지 않는 것은 가까이 서 본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견해다. NPR 인터뷰에서 볼튼은 트럼프 대통령을 "절대 멈추지 않고 갈팡질팡하는"사고의 소유자라고 한다. 복잡한 국제 정세나 외교 이슈에 부적합한 인물이라는 것. 대통령이 내린 일련의 외교 정책들이 그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판단들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역사가 대통령 트럼프를 어떻게 기록할까를 묻는 ABC 인터뷰에서 볼튼은 그가 재선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단임 대통령이 되길 바라지만 볼튼 자신은 조 바이든을 찍을 생각은 없다 한다. 5년 전 선거 때와 달리 올해 대선 투표용지엔 자신이 지지하는 보수적인 인물의 이름을 '적겠다' 답한다. 


"볼튼 말대로 했다면 세계는 6차 대전중"


책 내용이 공개된 후 그에 대한 언론의 태도는 매우 달라진 느낌이다. 대통령의 치부를 낱낱이 밝혀 트럼프의 의 재선 가도에 최대 악재가 될 것이라는 '기대'보다 극우 매파의 전쟁광적인 자기 합리화가 사람들을 질리게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볼튼 기록 속의 트럼프는 보다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이기까지 하다는 평이다. "볼튼 말대로 했다면 우리는 지금 세계 제6차 대전을 맞이했을 것"이라고 한 트럼프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이다. 


"당신 얼굴이 얼마나 두꺼운 거야?" 

책이 출판된 날 밤, 토크쇼에 출연한 볼튼에게 사회자 스티븐 콜버트의 첫 질문이었다. 그가 책에 쓴 내용이라면 트럼프 대통령 탄핵 청문회에서 충분히 전세를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볼튼은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 정보위원장의 삼고초려를 거절했고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에선 출석하지 않도록 배려를 받았다. 청문회 증언 대신 그는 책을 쓰기 시작했고 책 값은 그만큼 높아졌다.  A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하원에서 벌어진 일련의 과정은 트럼프를 탄핵하려는 민주당의 '정치적 플레이'였다고 비난한다. 민주당은 정치적 이해도 능력도 변화할 수 있는 힘도 없는 정당이라면서.  더불어 지금 자신이 받는 비난은 워싱턴에서 일하며 무수히 들어와서 익숙하다고 한다.


작가 Fred Kaplan프레드 카플랜이 Slate슬레이트에 쓴 글은 더 예리하다. <존 볼튼의 책은 존 볼튼에 대한 통렬한 기소장이다. - 아무도 이 남자를 다시는 '그 일이 일어나는 방'에 들여보내지 말아야 한다> 그는 이 글에서 이란 딜이 깨지는 과정을 주목한다. 


"나는(존 볼튼) 이란의 현 정권이 유지되는 한 이란과의 '새로운' 거래나 '결정'은 있을 수 없다고 다시 한번 주장했다. 싫든 좋든, 이란의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던 '종말 상태'가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카플랜은 백악관에서 존 볼튼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한다. 

"백악관에서 볼튼 보좌관의 최우선 과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합의하거나 이란 핵협정 탈퇴에 대해 뒷걸음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볼튼 보좌관은 이란이 2015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5개국 정상들과 체결한 핵협정을 경멸한다. 그는 책에서 왜 그런지 설명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그것을 "지독한" 거래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카플랜은 볼튼을 이란의 현 정권이 교체되어야 하고 북한 정권은 무너뜨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오랜 기간 동안 경제 제재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동정심도 화해. 공존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트럼프가 이란과 협상을 하고 싶어 하자 자신의 직을 걸고 반대한 것에 대해 분개한다. 


타임 Times지의  데이비드 프렌치 David French는 <왜 볼튼의 책은 다른 폭로들과 차이가 없는가?>에서 현 정권의 1급 외교기밀을 폭로하는 내용임에도 지진을 일으키지 못할 분만 아니라 트럼프를 나쁜 방향으로 가지 않게 애쓰는 공화당원들에게 조차 트럼프의 문제에 대해 둔감해지게 만드는 책이라 비난한다. 


존 볼튼의 역설


존 볼튼의 회고록은 그동안 미국이 어떻게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평화를 방해해 왔는지 보여주는 교과서다. 전쟁광이 설계한 세계 질서보다 차라리 천박한 장사꾼이 더 인간적이란 생각마저 들게 하는 미국 외교의 자기 고백서다. 존 볼튼은 아베 정권과 함께 보조를 맞춘 기록도 부끄럼 없이 낱낱이 기록했다. 이런 이들의 무수한 훼방을 뚫고 '종전선언' 근처까지 달려갔던 한반도의 지난 4년이 그래서 더욱 경이롭다. 그의 책이 북한의 오해와 경색정국을 풀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존 볼튼의 역설이다. 

 

청문회를 보이 코드하고 집필에 들어간 것에 대해 존 볼튼은 변명한다. "때를 기다렸다"라고. 달려드는 언론과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자들, 트럼트 대통령 지지자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볼튼은 책 제목처럼 다시 한번 뮤지컬 해밀턴의 대사를 인용한다. "나는 한 방을 버리지 않았어.'I am not throwing away my shot."라고. 미국 독립 영웅 해밀턴이 극 중에서 좌우명으로 되내던 말을 인용해 자신의 비겁함을 변명한 것. 뮤지컬 해밀턴의 크리에이터 린-마누엘 미란다는 트윗에서 자신의 작품을 무단 도용한 볼튼을 비난한다. 


"의회에서 증언할 수 있었음에도 당신은 내 노래 제목을 빌려서 '현금 인출' 책을 썼지."라고  


사이먼&쉬스터 Simon & Schuster 출판사를 제외하고 그를 옹호하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국가 기밀에 관련된 내용 출판 시 허가를 받아야 하는 연방법에 따라 백악관은 415군데의 수정과 삭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출판 금지 소송에 대해 재판부는 "책의 기밀 여부에 따라 볼튼은 수익을 잃을 것이고 국가 안보를 훼손한 책임과 형사 책임도 져야 한다"라고 했다. 백악관은 볼튼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48년생, 올해 71세의 존 볼튼에 대해 누군가의 한마디가 인상 깊다. 


"볼튼은 권력에 취한 백악관 고위 관리의 전형적인 경우였다. 그는 자신이 선출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미국이 시작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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