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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Jun 10. 2020

흑인 인권이 나랑 무슨 상관?  

내가 Black lives matter 시위에 참가한 이유

차에 시동을 걸 때까지만 해도 고민이 많았다. 과연 2m 거리가 지켜질까? 조심해도 비말은 튀겠지? 뉴스에서 보던 경찰 최루탄이나 곤봉이라도 등장하면 어쩌지?


멀찌감치 차를 주차하곤 신발끈을 단단히 묶었다. 한국서 받은 귀한 KF-94 마스크를 개봉해 꼼꼼히 눌러썼다. 미국 제품보다 날 더 잘 지켜줄 것 같아서. 코로나란 강력한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 시기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위 현장에, 어떤 과격한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발걸음이 무거웠다. 지난 주말, 우리 지역에서 있었던 흑인 인권 시위 현장으로 가는 내 머리는 복잡했다. 

코로나 속에 모인 사람들 


주말 이른 아침인데 사람들이 꽤 많다. 어린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고 걸음이 느린 노인들도 있었다. 갓 스물을 넘겼을까 싶은 청년의 목에선 쇳소리가 났다. 일주일 넘게 매일 시위에 참가하고 있단다.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각자 만든 팻말을 가지고 온다. 학교를 포함해 미용실, 식당 같은 업소들이 문을 닫은 지 석 달째. 주정부의 Stay at home 명령 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모습이 너무 낯설다. 


요 며칠 맨해튼, DC 등 전국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오늘 내가 참가한 곳은 학교 단위의 집회. 하루 전 공고에도 불구하고 100여 명의 학생과 교직원, 근처 주민들이 모였다. 흑인들 뿐 아니라 백인, 히스패닉도 꽤 됐다. 원체 아시아 사람들이 없는 동네라 인도 친구들과 내가 그 자리를 메꾼다.  


두 아이와 함께 가장 먼저 도착한 숀이 마이크를 잡는다. 그는 당신이 아는 흑인 친구의 이름을 말해달라 한다. 내 앞에 온 마이크에 나는 내 오래전 영어 선생 젤라니를 말했다. 숀은 내일 뉴스에 그 친구가 죽었다고 나오면 당신 마음은 어떻겠냐고 묻는다. 흑인인 자신은 벌써 여러 번 그런 경험을 했다면서. 


남편과 함께 참석한 조디는 플로이드의 죽음을 보며 흑인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을 각성했다고 했다. 학교에서 정책을 만드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더 적극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타미라는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조카를 걱정했다. 400년 동안 인종 차별 당해 온 흑인들의 역사를 배우며 조카가 절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거라 했다.  


다들 유창하진 않지만 솔직하고 감동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미국이란 나라에 사는 것을 고민하는 나의 이야기기도 했다. 다 함께 <어메이징 그레이스> 노래를 부르고 우린 8분 46초 동안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렸던 그 시간은 100년 된 학교의 메인 건물을 한 바퀴 돌 정도의 긴 시간이었다. 


집회는 큰 충돌 없이 끝났다. 시작 전부터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경찰은 거리 행진을 시작하자 경광등을 켜고 도로 한편을 내준다. 길가에서 마주친 이들이 같이 구호를 외쳐주고 지나던 차가 경적을 울려 주었다. 오늘 동네 집회는 TV에서 보던 약탈도 최루탄도 경찰봉도 없었다. 비장했지만 주말 아침처럼 매우 평화로웠다. 코로나와 목이 졸리는 영상과 약탈과 공권력에 상처 받은 나도, 그들도 영혼을 위로받은 집회 같았다. 

"한국 사람이 거길 왜 가?"


혼란은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시작됐다.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Black lives matter 시위에 다녀왔다고 하니 인터넷 너머의 이들이 수고했다는 말 대신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이 거기를 왜 가나? 너무 단순한 생각 아니냐. 경찰이 더 안됐다. 같은.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크게 세 가지였다. 


1) 플로이드는 전과자다. 영웅화하지 마라. 

2) 많은 미국 경찰이 총기를 소지한 범죄자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있다.

3) 흑인들의 아시안 차별은 더 심각한데 네가 왜 그들 권리를 말하나.


그 밖에도 조지 플로이드 가족들이 이미 수백억 원을 모금해 나눠 가졌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뉴스나 TV에 나온 약탈 장면을 거론하며 '본성'이 어떻다는 불편한 말까지 들어야 했다. 


그들은, 현충일 날 서울 한복판에서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한 행진도 매우 못마땅해했다. 자기들이 백인인 줄 안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신경 써라. 우리 현충일에 왜 미국 흑인을 추도하냐 등등. 불만의 방향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았다. 한국인이 왜?? 란다. 미국 뉴스에는 런던 파리 도쿄 시드니 같은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조지 플로이드 추모 집회 소식이 보인다. 미국인들은 전 세계에서 보내준 지지와 연대와 부끄러워하면서도 감사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런 경험이 없진 않다. 낯선 동네에서 길을 건너는데 모르는 흑인 여자가 밀쳐서 핸드폰이 박살난 적도 있고 거스름 돈을 속인 흑인 장사치에 속아 큰돈을 손해 본 적도 있다. 얼마 전엔 갑작스러운 좌회전 차에 사고가 날 뻔했는데 그 운전자가 흑인이었다. 하지만 더 많은 흑인들이 베풀어 준 친절들이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에게 상처를 준 건 유색인종보다 백인들이 더 많았다. 각자의 선입견으로 단단히 굳어진 흑인에 대한 비난을 듣다 보면 일베 게시판에서 보던 지역 비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 안타까웠다. 


나는 조지 플로이드의 삶이 영웅적이어서 추모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남부 휴스턴에서 춥고 삭막한 북부 미네소타까지 온 이유도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었던 범죄 전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삶의 여적과는 별개로 그의 죽음이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인구의 12%에 불과하지만 교도소 수감자의 33%가 흑인이라는 통계처럼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의 삶이 바로 미국이란 나라의 어두운 현실이었고 함께 그 불의를 깨자는 분노에 동참한 것이다. 60년대 인권운동 이후 다시 쌓이기만 하던 인종문제가 그의 죽음으로 분출되는 현장에 함께 할 뿐이다. 


세계 180여 개 다인종, 다민족의 미국 사회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경찰 조직도 그 중요성만큼이나 견제와 균형이 요구되어 왔다. 과도한 공권력과 상대적으로 방만한 운영은 과잉 방어와 비리의 온상으로 비난받아 왔고 이 기회에 견제되고 조정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그 여론이 지금 <경찰 개혁>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공론으로 올려놓았다. 경찰에 의한 정확한 사망자 통계는 없다. 지난 2015-16년 약 10개월 동안 1,348건이 경찰에 의해 사망했다. 한 달 135명, 하루 4명 꼴이다. 미 법무부 통계자료다. 경찰을 해할 때 처벌은 최고 수준인데 비해 경찰의 잘못은 그렇지 않다. 적어도 엇비슷한 균형이 되어야 한다. 미국 어느 곳곳에서 하루 4명씩 발생하는 조지 플로이드가 더 이상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야 더 신뢰받고 더 건강한 경찰이 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인 내가 흑인 인권 시위에 같이 나서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고 세금을 내고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이웃들과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 내가 속해 있는 이 땅의 시스템이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만을 위해 복무되는 걸 원치 않는다. 나도 흑인인 그들도 억울하지 않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촛불시위로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참여 없이 변화 없다는 사실을. 침묵과 냉소는 기득권자들이 원하는 구도일 뿐이라는 것을.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돕는 이들이 있기를 바라면서 그들의 어려움에 함께 행진하는 것이다. 


슬픔도 분노도 없이 살는 건 어쩌면 쉬울 수 있다. 목이 조여 거품을 입에 물고 죽어간 이의 죽음을 외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월호에서 죽어간 아이들을 추모하는 집회에 같이 분노해주고 격려하고 경적을 울려준 맨해튼과 에디슨과 플러싱의 평범한 미국 시민들처럼 나도 지금 같이 분노하는 거다. 함께 추모하고 같이 행진하는 이유이다.  


식구 중 기저질환자가 있어 큰 결심 끝에 집회에 참가했다는 친구가 그랬다. 


"요즘 특이나 미국이란 나라에 절망만 하고 있었는데, 오늘 집회에 나가서 많이 위안을 얻었어. 끔찍한 대통령과 유례없는 전염병까지 지금 우린 최악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같은 고민을 안고 싸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희망을."


4년 전 그 추운 겨울, 주말마다 촛불을 들던 한국인들의 심정을 지금 미국인들이 뒤늦게 경험하고 있다. 


스타들의 생각이 궁금한 팬들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주의의 불씨를 지피더니

폭력적 위협까지 가하면서 당신이 감히 도덕적으로 우월한 척을 해?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고???'

우리는 11월에 너를 투표로 쫓아낼 거야"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올린 트윗이다. 60년대 흑인 운동을 탄압할 당시 경찰청장의 멘트를 대통령이 인용하자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미국에서 몹시 낯설었던 것 중 하나가 유명인들의 거칠 것 없는 정치적 의사 표현이다. 연예인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으레 여론의 융단폭격 속에 사죄와 함께 조용히 꼬리를 내리던 우리 현실과는 너무나 달라서였다.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유명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개인)들은 모두 지금 팬들의 집요한 요구를 받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Black lives matter에 공감하느냐고. BTS나 블랙핑크나 갓세븐의 팬들이 좋아하는 스타에게 흑인 인권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는 것은 때문일 것이다. 곤란하게 하기 위해서나 골탕을 먹이자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순수한 사랑과 파워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스타들이 앞장서 주기 바라는 신뢰와 연대감표시다. 

 

그래서 6월 8일 CNN 보도가 더 의미 있다. BTS와 팬클럽 아미가 도합 200만 불을 흑인 인권 단체에 기부했다는 보도다. 방탄소년단의 100만 불 기부 소식에 팬클럽 아미가 순식같이 같은 금액을 매칭해 기부한 것. 더불어 방탄 공식 트윗 계정에 올라온 입장문도 CNN은 보도한다.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합니다. 

나, 당신, 우리 모두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BlackLivesMatter"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도 BTS 팬을 비롯한 K-pop팬들이 흑인 인권 운동의 '예상치 못한' 지원군이 됐다는 보도를 한다. 모금뿐 아니라 넷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캠페인 등에 팬들이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에 의하면 싸이, 보아, 시엘, 현아, 에릭남, 제시, 마마무, 갓세븐, NCT, 레드벨벳이 SNS를 통해 지금 미국에서 시작된 흑인 인권 운동의 지지를 선언했다. 더 적극적으로 박재범과 갓세븐 멤버는 직접 BLM에 큰 금액을 기부했다고. 


한국에선 보기 힘든 이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의사 표시는 세계인의 정서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우리 K 팝의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변화다 싶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흑인 인권 운동의 열기와 역사적 의미는 방탄소년단 RM이 했던 UN 연설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싶다.  


"당신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피부색과 성 정체성이 무엇이건... 당신의 이야기를 하세요. 당신의 이름을 찾고 당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찾으세요."


의도했건 안 했건 우리 케이팝 가수들은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지금의 BLM 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나도 내가 살고 있는 이 미국 땅에서 코리언의 목소리로 변화를 요구하는데 힘을 보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인으로서 내가 지금 흑인 인권을 지키자는 시위에 참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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