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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Aug 28. 2020

교회는 필수 업종, 문 열라는 대통령

미 대선판을 좌우하는 극우 개신교의 힘

"제3의 후보에 투표하거나 기권하는 것은 힐러리에게 투표하는 것과 같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블루칼라 출신의 억만장자입니다. 가장 성공한 정치인은 결코 직업 정치인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가지 방법, 그것은 도널드 트럼프를 미 합중국의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2016년 오하이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제리 팔웰 주니어의 지지연설은 행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리더라는 타이틀답게 그의 말은 트럼프에 대해 회의적이던 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을 굳건하게 잡아주었다. 그러나 4년 후인 2020년, 제리 팔웰 주니어란 이름은 대회 개최 막판에 제외됐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는 지금, 그의 이름은 추잡한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전당대회 뉴스를 뒤덮고 있다. 


복음주의 기독교 리더의 몰락


화요일(8/25)까지 제리 팔웰 주니어는 리버티 대학교의 총장이었다. '그리스도를 위한 챔피언 양성'을 모토로 하는 이 학교는 등록 학부생만 4만 6천 명, 온라인 학생까지 포함하면 10만 넘는 학생수를 자랑하는 미국 최대 사립대학교다. 성경적으로 정한 결혼을 벗어난 여성과 남성의 성관계는 허용되지 않는다. 짧은 치마와 흡연. 음주도 금지다. R등급 영화도 볼 수 없는 엄격한 행동 규범을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복음주의 기독교 대학이다. 텔레비전 전도사였던 제리 팔웰 시니어 목사가 설립했고 그의 사후 2007년부터 큰 아들 제리 팔웰 주니어가 총장직을 수행해오고 있는 중이었다.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총장은 학생들에게 더 많은 사람들이 총기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이슬람교도들이 우리를 죽이기 전에 먼저 끝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올 들어 총장의 이름이 중앙 언론에 자주 노출됐다. 확진자가 늘기 시작해 미국 내 모든 시설의 셧다운이 시행되던 시기, 리버티 대학교는 주 정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봄방학이 끝난 3월 말 학교 문을 다시 연다. 기숙사 방은 철저히 청소됐다고 장담한 팔웰 총장은 리버티 대학교가 가을에 문을 열 모든 대학이 따라야 할 모델이 될 거라며 면대면 개강을 강행한다. 학교의 방침에 따라 기숙사로 돌아온 1,900여 명의 학생들 사이에서 확진자가 속출했고 학생들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미국 내 코로나 사망자가 10만이 넘어가던 6월엔 주지사의 마스크 의무 착용을 조롱해 다시 한번 논란에 불을 붙인다.  


"난 시민들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강요하는 버지니아 주지사 명령에 완강히 반대해. 나한테 마스크를 쓰라고 강요한다면, 주지사 얼굴을 "블랙페이스"로 디자인해서 쓸 거야!"


KKK단과 어깨동무를 한 "블랙페이스"가 인쇄된 마스크를 링크해 주지사의 명령을 조롱한 것. 미국에선 용납될 수 없는 이 사진에 동문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총장은 사진을 내리고 사과해야 했다. 다음 논란은 8월 초에 벌어진다. 휴가를 즐기던 총장이 올린 사진 한 장이 문제가 된 것. 바지 지퍼를 푼 상태로 한 손엔 와인잔을, 다른 한 손은 같은 상태의 젊은 여성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자신의 보트에서 직접 찍어 올린 이 사진에 대해 임신한 비서를 위한 배려였다는 등의 변명을 했지만 파장은 커질 수밖에 없었고 그는 자숙의 의미로 잠시 총장직을 '휴직'한다. 


그리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지난 24일, 로이터 통신은 앞의 사건들은 장난으로 보일만한 보도를 한다. 파웰의 아내가 스무 살 남자와 만나 오랫동안 불륜을 저질렀고 총장은 아내의 불륜을 지켜보는 등의 변태 행위를 했다는 것. 아내의 젊은 불륜남을 학교와 가족 휴가지에 초대하며 사업까지 함께 했다는 내용이었다. 로이터는 호텔 수영장에서 일했던 남성이 털어놓은 지난 7년간의 행적을 자세히 보도한다. 


'리버티 대학교의 영부인'으로 불렸던 아내 베키 팔웰은 남편만큼이나 적극적인 트럼프 지지자로 유명한 이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 캠페인을 돕는 <트럼프를 위한 여성 그룹> 대표로 방송에 출연하는가 하면 남편과 트럼프의 아들과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패널로 연설도 했다. 트럼프 자녀들과 영부인과도 막역한 관계라고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가장 경건하다고 자부하던 복음주의 기독교 대학의 총장을 둘러싼 스캔들에 리버티 대학을 아는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아버지가 물려주고 자신이 키운 학교의 총장직을 놓지 않기 위해 이사진들의 종용을 거부하던 총장은 결국 화요일 오후 자신의 사임을 받아들이고 만다.


교회 문을 열고 싶어 하는 대통령 


경찰에 의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시위가 확산되기 시작하던 지난 6월 1일, 백악관 주변 라파예트 공원의 시위자들이 경찰의 최루탄에 해산되었다. 잠시 후, 시위 진압에 '군대 투입'을 거론한 백악관 기자회견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이 바로 그 길을 지나 '대통령의 교회'라 불리는 세인트 존스 교회 앞에 선다. 그리고 가지고 온 검은색 성경책을 들어 보이며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특별한 말 없이 사진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한 것. 


17분 동안의 이 '성경 쑈'에 비난이 이어졌다. 세인트 존스 교회 담임 신부는 어떠한 방문 통보나 교회 사용 요청을 받지 못했다며 "대통령은 최루가스로 지역을 청소하고 우리 교회를 이용했다"라고 분노했다. 워싱턴 포스트에 "트럼프는 정치 목적으로 교회 건물과 성경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이 말한 건 사랑인데 그는 폭력에 기름을 끼얹고 있습니다."라며 교회를 이용한 대통령에 불쾌감을 표했다. 


당시 대통령의 깜짝 방문엔 선임 보좌관인 맏딸과 사위, 국가안보보좌관, 법무 장관, 군복을 입은 합참의장 등 내각들이 함께 했지만 대통령의 교회 방문을 인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언론은 대선을 앞두고 팬데믹과 경기 침체에 흑인 인권 시위까지 가열되자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대통령의 '깜짝 아이디어'였다고 추측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성경 쑈"는 그의 든든한 지지 그룹인 복음주의 기독교도들을 향한 제스처라는 분석이었다.  


"해피 선데이! 우리는 신을 갈구해!" 


공화당 전당대회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23일 일요일 아침, 대통령은 종교를 주제로 한 여러 개의 트윗을 올린다.
 한 주 전에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하나님 아래'라는 말이 '충성서약서'에서 삭제됐다는 거짓 주장을 되풀이하며 민주당이 올 행사에 종교와 종교인들을 배제했다고도 비난한다. '하느님 아래'라는 문구는 동서 냉전이 시작되던 1954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추가된 문구다. 


뉴욕타임스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각 주의 주지사들이 모든 공개 집회를 제한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교회를 '필수 업종'으로 선언해 제외시키려 했던 점을 환기시킨다. 더불어 일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싫어하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노동자 보호에 관한 판결" 이후 대통령이 대법원을 공격한 사실도 지적한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지지로 대통령이 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재선 도전에도 그들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일련의 행동들은 그의 충직한 지지자로 분류되는 복음주의 기독교들을 향한 구애라는 분석이다. 


지난 6월 실시한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72%, 백인 가톨릭 신자들은 54%였다. 올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할 의사가 있다는 응답에 백인 복음주의자의 82, 백인 가톨릭 신자의 57%가 Yes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종교 박해에 관한 유엔 총회를 주재한 대통령입니다." 


백악관 고문 켈리앤 콘웨이가 소개한 대통령 트럼프의 업적이다. 지난 금요일 자신의 보수적인 기부자들 앞에서 연설한 대통령은 최근 성사된 이스라엘과 UAE와의 협정에 대해 자평했다. 


"나는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의 화합을 이뤄냈다. 이것은 매우 역사적인 일이다. 이 일을 가장 높이 평가하는 이들은 복음주의 기독교 인들이다. 내가 가장 고마워하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 임기 동안 최고 5개까지 대법원 공석이 있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다면 사법부가 진보성향의 판사들로 채워져 신의 뜻과는 다른 판결들이 줄을 이을 것이라는 위협이다. 지난 24일 샬롯에서 그는 직접적으로 바이든 대통령경고했다. "그들은 총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석유와 가스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신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트럼프 대통령은 복음주의자 유권자에게 호소하고 있지만 Fox 뉴스의 여론조사는 아직 회의적이다. 8월 초부터 시작된 조사에서  75%의 백인 복음주의자가 아직 지지할 후보를 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를 전폭 지지했던 4년 전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왜곡된 복음주의와 대선


젊은 층 구독자를 자랑하는 Vox는 화요일자 기사에서 트럼프와 제리 파웰 주니어 총장의 공생 관계를 주목한다. 16억 달러의 기부금과 수업료 등으로 연간 약 12 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자산 28 억불의 이 공룡 대학의 총장 사임은 설립자의 맏아들이라는 타이틀까지 갖고 있는 이에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불륜과 변태, 더러운 거래가 얽히고설킨 이 정도 메가톤급의 사건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Vox는 2015년도를 주목한다. 젊은 불륜남의 첫 폭로가 시도됐던 때다. 곤란해하던 총장 부부에게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 겸 해결사 마이클 코헨이 그 뒤처리를 해줬다는 추정이다. 그로 인해 트럼프와 총장의 관계가 돈독해졌다는 것. 최근 회고록을 출판한 코헨도 CNN에 자신이 팔웰을 위해 문제의 사진들이 공개되지 않게 개입했다고 말한다. 


2016년 대선 당시 사람들이 갖었던 큰 의문하나가 수긍되는 이유다. 당시 미국 사회 보수주의자들이 선호하던 공화당 대선 후보는 테드 쿠르즈 상원의원과 목사 출신의 마이크 허커비였다. 특히 쿠르즈 의원은 자신의 대선 캠페인을 리버티 대학에서 시작하면서 복음주의 기독교들은 절대 성적으로 조잡하고 두 번 이혼 한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제리 팔웰 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고 그는 트럼프를 지지한 최초의 저명한 복음주의자가 된다. 

다른 복음주의 지도자들로부터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에 출마한 가장 부도덕하고 불경건 한 사람”이라며 "아버지가 무덤에서 굴러 나올 것"이라고 비난받았지만 그는 꿋꿋했고 그의 파워는 다른 종교 지도자들을 능가했다. 


2017년 NPR과의 인터뷰에서 팔웰 총장은 트럼프의 도덕성에 대해 "복음주의 기독교 신학은 모든 사람이 용서를 필요로 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라며 "누가 죄를 지었고 누가 죄를 짓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고 그들은 모두 똑같이 나쁘다" 고 말한다. 

자신의 정치 참여에 대한 질문엔 "당대의 기성 정치인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에 있었다"라고 덧붙인다. 


공화당 대통령 지명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는 지금 시점에, 사람들은 4년 전 보수 기독교계의 표심이 어떻게 왜곡됐는지 생생히 지켜보고 있다.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그리스도 같은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순수한 신앙이 어떻게 투표에 작동됐는지도 말이다. 거기에 가장 크고 부유한 복음주의 기독교 대학의 리더의 추문과 그가 했던 역할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총장의 추문이 폭로된 지난 월요일은 리버티 대학교의 가을학기 수업의 첫날이었다. 기도로 수업시간을 여는 많은 캠퍼스에서 몇몇 교수들은 학원의 미래와 팔웰 가문을 위해 기도할 것을 학생들에게 격려했다고 한다. 


수요일 뉴욕타임스는 리버티 대학교를 졸업한 한 학생의 오피니언을 지면에 실었다. 제리 파웰 총장이 리버티 대학교에 가르쳐 것은 바로 기독교 교육이 어떻게 잘못될 있지 그 전형을 보여줬다는 내용이다. 


이번 리버티 대학교 총장 추문은 미국 사회에 팽배했던 종교 지도자에 대한 맹종에 주는 경고이다. 종교가 엄청난 돈과 권력이 되고 그 힘이 사회를 어떻게 잘못 이끌어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 선택이 구성원들을 죽음과 가난과 공포의 지옥도를 만들 수 있다는 실례이다. 종교에 대한 맹신이 불러온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손실을 미국 사회가 지난 4년간 차곡차곡 갚아왔다. 종교에 대한 맹신이 악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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