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억새밭

포천 명성산 억새 군락지에서

by 휴찬



초록을 좋아한다.
온통 파란 빛깔의 하늘과 온통 초록 빛깔의 대지가 맞닿은 풍경을 좋아한다.


억새는 물론 가을이 제격이다. 들판을 누렇게 물들이고 실바람에 하늘하늘거리는 보드라운 춤사위.
하지만 한여름의 진초록 억새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성숙하지 못한 풀들이지만 강렬한 초록은 생명을 느끼게 한다.




색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 것일까?

산을 자주 찾는 편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가을 단풍은 그리 끌리지 않는다.
다들 예쁘다고 감탄하는데, 울긋불긋한 단풍잎을 보면 마음이 정화되지 않는다.
가까이서 봐도 그렇고 멀리서 봐도 그렇다.
초록과 연노랑 사이를 헤집어놓은 붉은 색들은 마뜩지 않다. 너무 자극적이어서 다른 색들을 잡아먹는다.
무슨 연유에서 불타는 색깔을 뒤집어쓰는 것일까?



긴 장마 틈에 비가 내리지 않았던 7월초 어느 날.
여하튼 이날은 초록 사이를 걸었다. 뜨겁게 땅을 달구는 태양도 이 풍경과 어울린다.
이 곳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건, 썬크림을 잔뜩 바른 나 자신이다.
도시 냄새가 빠지지 않는 나는, 저 풀들과 오랫동안 같이 서 있기 힘들다.



무더위에 꽤 오래 걸어야 하는 등산 코스 탓인지 이방인은 거의 없었다.
나와 닮은, 이 풀들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은 다행히 고작 네다섯 명에 불과했다.





곧 이 곳을 오가는 케이블카 공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올 가을이면 힘든 산행 없이도 많은 사람들이 누렇게 물든 억새밭을 볼 수 있다.

대신, 이날과 같은 한적함은 이제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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