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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Jun 07. 2023

간단 살림#4. 비누살림합니다.

불편함이 편리함을 이깁니다.

"편리함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이제는 불편함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가 옵니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톤 28의 회사소개에 보면 공동창립자 분이 남기신 한마디이다.

크게 동의하는 데 사용하다 보니 동의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 집은 현재 최대한 '비누살림'을 한다. 가장 먼저 바꾼 것은 핸드워시였다. 바디워시는 애초부터 사용하지 않고 비누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건 바꾼 품목에 해당하지 않는다. 핸드워시라는 품목이 언제부터 우리 삶에 들어왔을까?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는 어린 시절 핸드워시를 사용한 기억이 없다. 오이비누, 알뜨랑을 사용하던 세대를 거쳐 우리 시대에는 보통 아이보리나 도브를 메인비누로 사용한 세대이다. 딱딱한 비누를 플라스틱통에 달그락 올려두고 손을 씻을 때마다 비누 거품을 가득 내서 손을 씻었다. 

 

스물셋 여름방학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선배언니네 집에 놀러 갔다가 처음으로 '아이 깨끗해'를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세균을 제거하는 매개물을 욕실에 두었다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데 당시 나에게는 실로 충격이었다. 

손을 씻는 비누가 따로 있고 거품으로 나오고 그것을 개인 집에서 구비한 다는 것이 뭔가 몸에 착 붙지 않았다. 추후에 마트에 갔다가 금액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던 것 같다.

(아빠를 늦둥이로 낳아 다른 할머니들의 엄마벌인 그러니까 증조할머니 벌인 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나는 비누거품 한 번 더 내는 것도 돈 아깝다며 잔소리하는 할머니밑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마음에도 없는 약장수를 따라가 공연을 구경해 주고 뻣뻣하기 그지없는 휴지를 타오며 살림에 보탬이 돼 보고자 했던 그런 할머니였다. 그런 할머니 아래서 자랐으니 사실 더 어색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핸드워시는 십오 년에서 이십 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우리 생활에 필수품이 되어온 것 같다. 그런데 아이 둘을 낳고 오가면서 핸드워시에 대한 불편함을 처음으로 느낀 것은 '너무 헤프다는 것'이 컸다. 처음부터 플라스틱쓰레기가 불편하다거나 그런 이유였던 건 아니었다. 액체를 채우는 횟수가 잦았고 브랜드 한 번 바꿀 때마다 재활용하기 힘든 펌프와 함께 쓰레기도 배출되었다. 

나는 그것이 싫어 데톨 핸드워시바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세상에나... 너무 편하다. 보관할 때 부피도 차지하지 않고 비누 아래 플라스틱 병뚜껑 하나 꽂아두면 무르지도 않고 다 사용하면 배출할 쓰레기도 따로 나오지 않는다니!


이것을 시작으로 우리 집은 세안비누를 샴푸바를 사용하고, 설거지비누를 그리고 세탁세제도 시트세제로 교체했다.

제일 좋은 것은 가벼움인데 보관이 가볍고 사용이 가볍고 쓰레기가 가볍고 더해서 내 마음이 가볍다.



나는 이것을 계기로 불편함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사실은 마케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액체를 채우고 통을 씻어 버리는 수고보다 비누로 천천히 거품을 내고 머리를 감는 것이, 요구르트를 하나하나 담아둔 작은 병을 먹고 닦아 버리는 수고보다 집에서 우유를 넣고 발효하는 수고가 더 수월했다.

단지 바쁜 세상에서 더 바쁘게 살기 위해 만든 '편리함'이 삐뚤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느림'이라는 말이 꽤 오랜 기간 부정어로 들렸는데,

  천천히 꼭꼭  곱씹는다는 느낌의 긍정어로 바뀌기 시작했다.

더해서 아이들이 살 세상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기분이라 벅벅 더 깨끗하게 닦이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래서 나는 비누살림을 한다. 오늘을 잘 소화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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