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영신 Jun 27. 2023

일상에세이#5. 딸아! 네가 있어 고맙다.

아이에게 배우는 오늘

아이를 유심히 지켜보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큰 아이는 십 대에 들어섰다.

아직 나의 눈에는 유치원때와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아이가 벌써 십 대란다.


여전히 나는 아이에게 이건 안돼 저건 된다 하며 훈수를 두지만 사실은 나도 모르겠는 문제가 수두룩하다.

커피를 마시고 집중을 해서 최선을 다해 문제를 직면하고 답을 주려하지만 사실은 엄마도 모르겠는 것투성이다.

가끔은 엄마가 어렵고 전업주부의 삶에 대한 허무감이 몰려와 자는 아이의 허리춤쯤에 고개를 묻고 우는 날도 있다.


신생아처럼 쌕쌕이는 소리가 여전히 들리고 아이의 말캉함은 아직 남아 있지만 덩치가 꽤나 커져서 아이의 품속에 내 머리가 쏙 들어가는 날이면 위로도 되고 커가는 아이가 감동이다.


요즘 우리 가족은 내년에 이사 갈 집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한다.

번화가로 외출하는 날이면 아이들과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을 구경하기도 하고 주말이면 필요 없는 물건을 비워내기도 한다.


지난주에는 내내 아이의 방을 한 곳씩 비우고 치워냈다.


아이 책상은 아이가 직접 고른 것인데 부피감이 있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여기저기 수납공간이 많고 기능이 좋은 '국민책상'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여기저기 숨겨진 물건은 파도파도 나온다. 아이에게 허락을 받고 하루는 아이가 학교에 갔을 때 책상 속 물건을 모조리 꺼냈다. 아이눈에 모든 것이 보물인 책상은 종종 엄마에게는 생활쓰레기 가득한 책상으로 보이지만 최대한 나의 기준으로 아이책상을 보지 않겠노라 굳게 다짐하고 시작했다. 명확한 쓰레기들만 골라냈고 구석구석 바구니 바구니 들어있는 여러 보물을 큰 하나의 바구니에 모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선별하게 할 생각이었다. 


나름대로 정리를 마친 코너는 라벨기를 통해 라벨링도 했다.


하교한 딸은 분류해 둔 모습을 보고 "엄마 뭐 이렇게 까지 다 나눠뒀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깨끗해졌다고 좋아했다. 필요 없는 건 필요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든지 버리는 작업을 하자고 이야기했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가지고 놀던 콩콩이 인형까지 잘 챙겨둔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보여 웃음이 났다.


책상에서 이런저런 놀이를 하던 아이는 갑자기 한 상자를 열더니 이 안의 물품들이 사라 졌다며 크게 울기 시작했다. 몇몇 개의 스티커와 잡동사니가 있던지라 스티커는 스티커 함에 넣었고 나머지도 적당히 분류해 넣었다고 했는데 아이가 자신이 친구들과 나눈 추억들만 모아둔 것이라며 더 크게 울었다.


진심으로 미안했다. 내가 잠시 어린 시절의 그런 감정들을 잊었다. 제대로 된 분류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나 스스로가 삭막하게 느껴졌다. 기계화된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내 딸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내 딸은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사 주신 목걸이를 매일 소중하게 끼고 다니고 샤워 전에 매일 같은 자리에 벗어두고 잘 닦아 내일 다시 착용했다. 친구가 사 준 립글로스를 소중하게 한 곳에 두고 바르고 다시 그 자리에 넣었다. 자신이 만든 작은 손가방을 가족과 쇼핑센터에 갈 때 꼭 챙겨나갔다.


나도 어릴 때 그랬던 것 같다. 학교에서 받은 프린트물 하나도 파일에 잘 끼워가며 보관했고 친구와 나눈 물건을 잘 사용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 물건이 '제일 좋은 물건이 아님'에 집중하면서부터 불만이 쌓였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었다. 이건 저걸로 바꾸고 싶고 저건 이걸로 바꾸고 싶었다. 갑작스레 눈물이 났다. 아이의 모습이 감동적이고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


오늘부터 나는 내 아이와 더 행복하게 하루하루 쌓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작가의 이전글 간단 살림#4. 비누살림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