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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Sep 14. 2023

나에게 불친절한 미니멀라이프#1. 미니멀요요

미니멀도 요요가 있나요?

미니멀하게 살고 싶다.

격하게 미니멀하게 살고 싶다.


내가 미니멀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이미 5-6년 된 일이다.


사실 어릴 때부터 지독한 수집광이었고, 기록광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수업시간에 나누었던 쪽지조차 버리지 못하고 지퍼백에 차곡차곡 모아두는 사람이었다. 첫 직장으로 의류업계에 종사하면서 아이템들을 모으고 잡지를 모으는 일이 마치 나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아무리 열심히 쫓아가도 그 끝은 없었고 그 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리더가 되는 것은 소비의 정점이 있는 일이었다. 어느 순간  바쁜 시간을 쪼개 스타벅스 아이스 라테를 마시며 빵을 우걱우걱 먹으며 치장을 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현기증이 느껴졌다.


직장을 그만두고 첫날 한강에 나가 자전거를 탔다. 서울 외곽에 사는 내가 트레이닝복을 입고 지하철을 타는 것도 노 메이크 업에 모자 하나만 눌러쓰고 집을 나서는 것도 이전에는 해 본 적 없는 경험이었는데 직장을 그만두며 나는 이제 '그 세상'과 단절하고 싶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나만의 의식이 이었다. 얼굴에 아무것도 덮지 않은 감각과 그 가을의 청명한 하늘의 냄새가 어우러져 아직까지도 그 귀를 스치는 간질 한 바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노 메이크업으로도 잘 외출할 수 있게 되었고 운동화를 늘 신었다. 천천히 나를 점검하고 따지며 한 계단씩 밟았다. 하지만 '육아'를 시작하며 리셋되었다. 다시 숨이 헐떡이게 달렸다. 이상하게 나에 관해서는 조금 더 쉽게 내려두었던 것들이 아이는 부족한 나로 인하여 채워지지 못할까 봐 숨 가빴다. 더 좋은 육아아이템과 서적들을 쌓아주어야 할 것만 같았고 더 예쁜 것들을 보여주며 나보다 한 층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쫓아가며 남은 것은 텅장과 가득 찬 물건이었는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집은 숱하게 이사를 다니며 이 많은 물건에 대해서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정확히는 우리 집 소비의 중심인 나에 대해 점검해 볼 기회가 있었다. 독립 수면을 해야 한다며 아이를 위해 구입했던 침대이지만 침대프레임에 아이가 부딪히며 무용지물이 된 자작나무 유아침대, 아이가 콧물이 줄줄 나서 방문했던 병원 앞에서 아이를 위해서 책 값은 아끼면 안 된다는 방문판매 아주머니에게 구입했던 숱한 책들, 각종 육아 커뮤니티에서 아이를 위해 꼭 있어야 한다는 템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2017년 새 입주 아파트로 이사는 나에게 내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해 준 큰 전환점이다. 이사를 준비하며 그 도화지 같은 집에 이 나의 너저분한 감정들이 물건과 함께 이사 가는 것 같아 나는 큰 마음을 먹고 팔을 걷어붙였다.  사실 나에게 필요한 건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테이블과 잘 수 있는 이부자리면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창고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비워냈고 김장봉투를 구해와 입지 않는 옷들을 모두 거두어냈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브랜드는 따지지 않고 입지 않는 것들은 모두 솎았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더 가벼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돈의 쓰임과 방향 내 마음을 굳건하게 하지 않은 미니멀은 쉽사리 요요가 찾아왔다. 빈 공간과 약간의 부족함을 즐기지 못했고 타인에 집에 방문하여 아이가 물건이 잘 갖추어진 곳에서 잘 놀거나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다시 이것저것 사들였고 이는 이전의 모습보다 더 좋지 않은 모습으로 발현되기도 하였다. 열심히 팔고 버리고 기부했던 자리에 당장 채워주고 싶은 마음에 저렴한 가구나 저렴한 물건들로 대체해 두기도 했던 것이다.

코로나의 발현으로 나의 미니멀 우리 집의 미니멀을 점검할 기회는 한 번 더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이때의 기회를 잃고 교훈만 얻게 되었다. 유현준 교수님이 당시 실내 생활공간의 활용성이 1.5배 높아지면서 우리는 1.5배 더 좁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며 이때 좋은 해결책은 가구를 줄이는 것이라 하셨다. 이 말에 크게 동의했고 유난히도 문 밖에 나가기를 겁냈던 나는 가구를 팔고 비워내며 희열을 느꼈다. 얼마가지 못해 이내 가족들의 반발을 듣기도 했고 나 조차도 급작스럽게 비워낸 물건의 자리를 쉽사리 적응해 내지 못하고 다시 취향에도 맞지 않은 가구들이 들어오기도 하고 이에 이전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아직까지 개운하지 못하게 지내고 있다.)


정말로 일련의 과정들이 급작스런 다이어트와 비슷했다. 큰 맘을 먹고 쫄쫄 굶어 다이어트를 몇 주 만에 성공해 내고는 참지 못하고 정크푸드를 먹는다든지 스스로 그 허기를 채우지 못해 아무것으로 먹어 오히려 체지방만 늘리는 것 같은 결과였던 것이다.

여러시도를 통해 나는 도구가 없이도 편할 수 있다는 기분과 여러 불편함들이 물건이 많은 불편함보다는 가볍다는 것들에 대한 교훈을 얻었지만 여전히 만족할 만한 미니멀의 성과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물론 2017년 새 아파트를 가지 않았다면, 코로나가 생기지 않아 답답함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면 나는 더 가벼운 삶에 대해 고민조차 안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회를 얻었다는 것과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에 대해 스스로 인정해 줄 지점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그 결과를 아직 만족할 만큼 얻지 못한 것은  아마도 지금의 나를 완전히 부정하고 우리 가족생활방식 전반에 대해 하루아침에 뜯어고치고자 했음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물론 어떤 것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출혈이 있고 또 완전히 하지 않겠다는 큰 결심이 아니라면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방향이다. 하지만 조금 더 유연하더라도 방향에 맞게 가는 것에 대해서 인정해 주었다면 지금보다 느렸더라도 미니멀요요를 겪으며 더 큰 출혈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궁극으로는 2017년부터 시작되었던 시도가 지금 즈음에는 완성형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미니멀하게 살고 싶다. 정확히는 물건이 없는 공간에서 내가 가진 물건을 잘 파악하고 관리하며 단정하게 살고 싶다. 홀가분하고 싶다.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 가족 함께의 공간이기에 내 만족 100프로를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불친절한 방식의 고리를 끊고 조금 더 나에게 친절한 방식을 택한다고 하면 나는 끝내는 미니멀하게 살 수 있을까? 오늘도 나에게도 너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좋은 방식의 미니멀을 고민하고 실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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