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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Sep 18. 2023

나에게 불친절한 미니멀라이프#2. 비누와 비누망

비누망도 친환경이 아니면 왜 비누 쓰냐고?

우리 집은 비누사용량이 많다. 의미적 '비누'라는 거품이 나는 물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고체 비누 사용이 많다. 결혼하면서부터 쭉 사용하는 비누는 바디워시대신 사용한 비누이다. 하얀 도브를 사용했다. 무슨 대단한 신념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그게 샤워타월에 비벼 사용하기 더 편했고 익숙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지금은 도브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비누를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비누를 사용하고 있다.


한 가지 종류만을 바형태의 비누를 사용하던 것이 이렇게 저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비누로 사용하는 품목은 바디용 비누, 샴푸바, 클렌징바, 손세정비누, 설거지비누, 손 빨랫비누이다. 예전 어른들처럼 오이비누 하나로 다 사용하는 극강의 비누 미니멀리즘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집은 팬트리에 액체비누를 그득그득 채워둘 필요도 없고 그 비누들이 소진될 때마다 등장하는 플라스틱 케이스도 없다.


이렇게 내가 사용하는 제품에 만족하고 나 스스로도 습관을 만들기까지의 여정이 길었다.


2020년 코로나와 함께 기후위기에 대한 위기의식이 나에게 훅 찾아오면서 내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쓰레기를 줄이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코로나로 위생이 더욱 강조되는 환경에서 손을 수시로 씻었고 위생을 위해 항균기능의 제품의 물비누를 쭉쭉 짜가며 나와 우리 가족의 손을 깨끗하게 했다. 하지만 내 손을 깨끗하게 하면 할수록 더 많은 플라스틱쓰레기가 나왔고 조금 조심하고자 리필을 구입하더라도 계속해서 비닐쓰레기나 택배쓰레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네 명의 가족 구성원이 사용하는 양만 해도 정말 무시 못하도록 많은 양이었다. 우리 집은 미니멀하게 단순하게 관리하면서 한 편으로 쓰레기를 계속 토해내는 것은 마치 머리를 집안에 들이밀고 집밖으로는 계속해서 똥을 내지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핸드워시라는 형태의 물비누가 우리의 생활에 정착된 것은 채 10년 남짓한 일이었다. 나의 학창 시절만 해도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화장실에 손 씻는 용 비누가 따로 액체로 구비된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아직도 기억되는 한 장면은 대학생시절 아이를 키우는 선배네 집에 놀러 갔을 때 보았던 청포도향의 ‘아이 깨끗해’이다. 이런 것 까지도 아이를 키우면 사 두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굳이 이런것 까지 아이를 위해 사두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다. 자라는 동안 주변 대부분의 집에서 비누곽에 조금 크고 딱딱한 비누가 하나 구비되어 그것으로 손도 닦고 발도 씻고 가족구성원의 취향에 따라 몸도 닦아주는 그저 다용도의 비누가 하나 있었을 뿐이었다.(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나는 심지어 할머니가 클렌징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굳이 왜 그런 것까지 돈을 따로 쓰느냐며 조금만 물에 묻혀 얼굴도 닦으셨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나는 핸드워시 대신 비누곽과 '데톨'이라는 항균기능을 갖춘 비누바를 두게 되었다. 사용감은 나쁘지 않았고 사실 그보다 더 좋았던 건 이렇다 할 창고나 팬트리가 없는 집에서 재고를 두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덜어졌다는 것이다. 꼭 있어야 한다고 암묵적 합의였던 액체 핸드워시에서 벗어나고 나니 나는 모든 것이 비틀어져 보였다. 왜 꼭 샴푸는 있어야 하고 왜 꼭 설거지는 액체로 해야 하며 언제부터 우리는 가루비누가 아닌 액체비누로 세탁을 했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일시에 비누를 주문했다. 액체비누를 모두 아웃시키고 싶었다. 정확히는 액체비누의 무게와 플라스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나의 비누여정은 시작되었다. 비누곽에 둔 비누들이 무르고 형태가 뭉개지는 경험을 하고 플라스틱 병뚜껑을 비누아래 꼭 꽂아보고 자석형 비누거치대를 이용하여 욕실벽에 붙여두기도 해 보았다. 상자에서 바로 꺼낸 비누였을 때에는 어떠한 형태의 툴이라도 문제없이 사용했지만 비누들이 작아지면 플라스틱 병뚜껑 사이에 빠지기도 하고 손에 잡히지 않아 거품을 내기가 어려워지기도 하고 욕실 바닥 여기저기에 구르는 일이 생기니 이게 위생적으로 괜찮나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비누망을 사용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나는 일종의 완벽주의에 사로잡혔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활용품 샵에서 구할 수 있는 비누망들을 모두 플라스틱을 기반으로 만든 제품이고 비빌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이 생기기도 혹은 해져서 비누망을 버려야 하는 일들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 오백 원짜리 그 비누망을 쉽사리 구입하지 못했다. 나는 더 완벽한 비누망을 찾아 헤맸고 면으로 된 제품이나 삼베로 된 제품을 찾아내 개당 몇천 원씩 하는 제품을 비누수 대로 구입해 몇 만 원을 투자했다. 플라스틱 비누망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 싶을 만큼 대체품을 서치 하며 어마어마한 데이터 사용을 했고 탄소발자국을 남겼다. 하지만 이내 천연제품으로 된 비누망들은 쉽사리 마르지 않을 뿐 만 아니라 비누에 달라붙어 섬유에 물이 들어버리거나 비누와 함께 화석처럼 박제되어 버려 사용이 너무 불편해졌다. 나도 나이지만 가족들이 사용감이 불편해 너무나 힘들어했다. 한 걸음 물러나 우선 플라스틱 비누망을 사용해 보았어도 좋았을 것을 갑자기 시작된 비누사용자, 제로웨이스트를 추구자라는 이미지에 갇혀 나는 대안을 찾지 못하고 급기야는 액체비누를 다시 사용하기에 이르기도 했었다.


돌아 돌아 비누를 사용했던 그 기분이 참 좋았던지라 나는 어렵게 어렵게 나와 타협하고 천 원 생활용품 샵에서 저렴한 플라스틱 비누망을 구입해 다시 비누로 돌아왔다.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았던지 최근에는 옥수수 성분으로 생분해되는 비누망을 찾아내어 그 제품으로 구입하여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큰 그림을 그리고 방향을 찾아가는 중 약간의 비틀어짐을 용납하지 못하는 나의 태도는 종종 내가 가는 방향 자체에 대한 부정을 하게 만들거나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게 하여 내려놓음의 정신과 나 스스로에게 조금은 편안함을 인정해 주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보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비누망에 플라스틱이 섞였다고 내가 좀 더 깨끗한 세상을 향한 고민을 하는 것, 조금 더 지구에도 우리에게도 좋은 방식을 고민했던 것이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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