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영신 Mar 12. 2024

일상에세이#13. 알콩달콩 연기하다 보면 유

나의 아이들이 심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볍게 살기는 제 인생 가장 큰 프로젝트입니다.

늘 비워내고 미니멀한 삶을 꿈꾸는 것도 가볍게 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입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콩달콩한 부부의 삶을 그려내는 인스타그래머를 만났습니다. 참 예쁩니다. 남편을 위해 예쁜 옷을 입고 화장하고 세상 가장 다정하게 말해주는 그녀가 존경스럽습니다. 내가 남편이라고 해도 그런 부인이 예쁘고 고마울 것 같아요. 그녀의 내면은 나보다 심오하다 아니다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무슨 잔다르크라고 세상근심 앉고 산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했거늘 늘 진중한 내가 싫을 때가 많습니다. 그녀는 알콩달콩 사시는 부모님을 보고 자라 그런가 늘 이렇게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 분명한 건 이건 유전이라는 겁니다. DNA에 박히는 그런 질병이나 알레르기 같은 거 말고 문화적 유전입니다. 확실합니다. 아니라고 해도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성공을 위한 발판들은 악착같음은 노력한다고 된다지만 사분사분함과 알콩달콩 이런 낯간지러운 것들을 안 보고 자란 사람은 절대로 할 수 없어요.

나의 수행 같은 미니멀은 이런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가볍게 살고 싶은데 삶이 너무 덕지덕지 지저분하게 나를 끌어당깁니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이 덕지덕지함을 털어내는 데 사용해야 하다 보니 나머지 잉여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먹고 지지고 볶으며 오늘의 나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라고 해도 나를 이만큼 세우고 오늘의 목숨을 부쳐내는데 에너지가 이이이이이만큼 듭니다.

물론 내가 이렇게 된 것에 딱 한 번의 나의 이유가 보태져 있습니다. 버텨야 했던 한 순간에 분명히 이건 버텨야 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음에도 날아오는 돌을 피하고 싶어 그 자리에 주저앉고 그대로 내 인생은 그 주저앉은 자리에 내 다리 하나 잘라주었습니다.

하지만 내 두 팔과 나머지 한쪽 다리는 이미 내 의지가 아닌 어릴 때 하나씩 하나씩 내어주었고 이제는 몸통으로만 버티고 사는 기분입니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나랑 달랐으면 합니다. 날아오는 돌은 가뿐히 막아내고 웃으며 걸어가는 날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연기라도 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두움에 웃을 수 있는 강한 마음, 나를 할퀴는 사람들은 미소 지으며 방패로 막아내는 연습. 나에게도 그런 울타리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린 나에게는 그런 세상의 어두움을 쏟아내고 너는 저들을 물리쳐야 하는 장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너의 처지는 이미 여기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무리 갯벌에서 태어났어도 아이는 45도로 발차기하여 낮은 포복으로 혼자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어른들이 위에서 무겁게 내리 박을 땐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갯벌에서 웃으며 엄마의 바닥은 폭신하다고 말해주고 너희는 푹푹 빠지지 않는 다른 곳에 움트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물론 나는 때때로 행복합니다.

나의 핵가족 구성원들이 참 고맙습니다. 납득되지 않는 나의 감정들에 대해 깊이 물어봐 주지 않고 그대로 내가 행복하기만을 기원해 주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 기억들을 끌어모아 나는 늘 웃는 사람으로 살아가 봐야겠습니다.

나부터 바뀌어서 전환점을 돌아 내 어두움이 절단될지도 모르는 기로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일상에세이#12. 남편이 입원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