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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Sep 27. 2024

1401호 공공의 적

친구 쫓아낸 아줌마와 아저씨

'5동 입주민입니다. 어느 집인지 알 수 없지만 창문 쿵쿵 닫지 마세요. 

조심히 닫으면 소리 심하게 안 나게 닫을 수 있습니다. 

집 안에서 집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너무 불편합니다.' 

엘리베이터에 붙어있었다.


우리 아파트 창문은 유난히 열고 닫을 때 소리가 나는 창문이다. 

쓱쓱 옆으로 밀리는 할머니네 아파트 창문과는 다르게 손잡이를 돌려서 밀고 당기는 문이라 힘이 많이 들고 엄마가 위험하다고 나랑 언니에게는 창문에 잘 손대지 못하게 한다. 

우리 엄마도 꽉 닫아야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꽤 세게 잡아당기는 걸로 아는데 저 집에 소리가 들렀을까? 혹시 3층 마녀할머니인가?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종이를 보고 15층 아줌마는 화가 났다.

"정말 왜 저래? 자기 혼자사나? 이럴 거면 혼자 단독주택으로 들어가든지 진짜 이해 안 가는 집이야!" 

'진. 짜. 이. 해. 가. 안. 가. 는. 집?' 아줌마는 어느 집인지 알고 있다는 건가? 생각하고 1층에서 내렸다.

 엄마는 15층 아줌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불편하시겠어요. 어쩜 좋아요? 아이들 키우는 집에서 서로 이해는 못해줄 망정 정말 별일이 다 있네요! 창문을 쾅 닫지 말라니... 이게 무슨 무례일까요?"

엄마까지 알고 있다고? 내가 몇 호라고 적힌 걸 못 본 건가? 

"그러니까요! 저희 심지어 매트 3센티짜리를 집 전체에 시공하고 아이들 놀이공간을 2층으로 만드려고 2층침대인데 위에 넓은 거 있잖아요? 거기에 아지트 만들어 주고 거기서 놀라고 했다니까요? 정말 한 돈 천 깨졌어요... 그런데도 안 돼서 다음 달에 결국 옆단지로 이사 가잖아요. 휴... 이럴 거면 그냥 처음부터 이사 갈걸 그랬나 봐요. "

"어머? 이사 가세요? 어머나... 이사 갈 집은 효진이네가 아닌데. 세상에!"

"정말 매일매일 연락이 오니 살 수가 있어야 말이죠! 그때 아파트 커뮤니티에 올린 글 보셨죠?"

"네... 맞아요. 몇 호인지 안 쓰여 있지만 다 누군지 알더라고요!"

"휴~, 자기들도 애 키우는 입장에서 정말 어쩜 저럴 수가 있지?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도저히 안돼요."

"요 옆동에 사는 동민이언니 알죠? 그 언니도 커뮤니티 글 보더니 '그 집 14층 맞지?'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우리 집 일도 아니지만 당신 때문에 온 아파트 사람 다 불편해요!라고 댓글 달고 싶다고 했어요. 하하하"

"그렇죠? 저만 그런 거 아니죠?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몇 번이고 다시 생각했다니까요!"

"그러게요! 얼마나 힘드셨어요!"

" 그전 글은 더 가관이야!"

"아...... 산후조리원?"

"맞아요! 맞아요! 봤죠? '저희가 곧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갑니다. 늘 시끄러운 집으로 들어가려니 곤욕이네요. 슬리퍼도 신고 미리미리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상전 났지 상전 났어! 나는 처음에 신혼부부인 줄 알았잖아요. 그런데 큰 아이는 우리랑 같은 학교 다니고 있더라고요! 아이 하나만 키웠어서 우리 집보다는 덜 하다고 해도 저럴 수는 없을 것 같아 정말!"

"그러게요...... 모두 다 아이를 낳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닌가 봐요."


그렇구나 저 글을 쓴 집은 14층이고 15층에 사는 효진이네 삼 남매는 이사를 떠나는구나.


15층에는 아이가 셋이다. 우리 동에는 방이 세 개라 아이들이 보통 둘 정도인데 15층에는 아이가 셋이다. 대신 15층은 다락방이 있다. 좀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하지만 나는 그 다락방이 참 부러웠다. 그래서 셋 중 둘째인 효진이와 그럭저럭 잘 지냈다. 엄마들끼리는 아주 친하지 않아서 반말을 하거나 언니동생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효진이와 잘 지냈다. 그 다락방에서 보드게임도 하고 코코아도 마시며 재미있게 놀았다. 그런데 14층 아줌마가 이사오고부터는 나는 효진이네서 놀 수 없었다. 우리가 코코아를 두 손으로 들고 계단이라도 오르면 바로 전화가 왔고 효진이 엄마는 미안하다며 코코아를 든 채로 나와 효진이를 우리 집으로 보내시곤 했다. 엘리베이터를 조심스레 내려와 집에 들어서면 아파트 인터폰으로 효진이 엄마가 우리 엄마에게 "미안해요! 아랫집에서 또 전화가 왔어가지고!"로 시작되는 연락을 하시곤 했다.  우리 엄마는 괜찮다며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맞장구를 쳐 주고는 우리 집에는 다락방이 없다며 거실에서 놀라고 하셨다. 그럼 나는 조금 거실에서 놀다가 효진이랑 내 방구석 창고 안에 들어가 놀기도 하곤 했다.

다락방이 있는 효진이네서 놀 수 없게 되자 효진이와 노는 일이 줄었다. 우리 집에서 노는 것은 나는 나 혼자 노는 것이 편했고 윤슬이가 자주 놀러 오기도 했기 때문에 효진이랑 놀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효진이는 우리 단지를 떠나는구나. 멀리 가지는 않지만 효진이네가 또 다락방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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