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방식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버리고 싶어졌다.
가진 만큼 지친다는 것을 알았다.
1980년대에서 2000년대로 옮겨오며
대부분의 가정은 10평대에서 30평대로 50평대로
가전이 커지고 차가 생기고 차가 커지고 채우기 급급했다.
정리하거나 비우는 일은 부자의 일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정보와 물건의 과잉이 심각해지며 '사도사도 공허하고,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다.'는 집단 피로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내 것을 선별하는'능력도 중요해졌다.
미니멀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단지 유행이 아니다.
너무 많은 것들에 둘러싸여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자구책이다.
나의 미니멀라이프는 생존의 문제였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이후,
우리는 여전히 같은 공간 안에서 넷이서 살아야 했다.
집을 넓힐 수 없으니, 비우는 수밖에 없었다.
첫째를 낳았을 땐 뭐든 해주고 싶었다.
예쁜 옷, 온갖 육아용품, 주변 사람들까지
첫 손주라는 이유로, 첫 조카라는 이유로 친구의 첫 아이라는 이유로 물건을 퍼부었다.
결국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베란다와 창고를 가득 채웠고,
그 많은 물건들 틈에서 숨이 막혔다.
무엇보다 나는 청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생명체들에게 먼지를 먹일 순 없으니까.
매일 물건을 털고 쓸고 닦았다.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웠다.
2017년, 신규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나는 박차를 가했다.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들을 쓸어냈고,
아이들 가구도 정리했다.
무덤을 파헤치듯,
정신없이, 앞뒤 보지 않고.
예쁜 집에 살고 싶다는 욕심에 ‘비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입주하고 몇 달은 정말 행복했다.
드디어 나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곧 4인가족의 각자의 니즈가 바닥에 흘러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가구는 다시 필요해졌고,
조금의 죄책감이라도 덜고자
원래와는 다른 가구를 새로 들였다.
그 가구 때문에 다시 답답해졌고,
나는 또 숨이 막혔다.
그래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왜 비웠을까.
비우고 나서 정말 가벼워졌을까.
미니멀라이프는 단순히 덜어내는 일이 아니라,
살기 위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나는 지금을 살고 싶다.
나의 미니멀은 ‘지금’에 집중하고 싶어서 한다.
추억의 물건을 둘 공간을 위해 집을 할애하고 싶지 않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공간을 내어주고 싶지도 않다
여느 휴양지에 와 있는 것처럼,
지금 입을 옷만 걸고
지금 읽을 책만 곁에 두고
간단한 세안도구만 둔 공간을 원한다.
그게 지금을 살아가는 데 충분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오래도록 미니멀을 해 온 나에게도
가장 어려운 공간은 주방이다.
그건 우리가 먹는 것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기는 것을 넘어
건강한 식재료와 따뜻한 한 끼에 우리는 집착적이다.
건강한 음료, 건강한 디저트, 건강한 식사.
그 어떤 영양제보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주방은 완전한 미니멀로 비울 수 없는 공간이다.
다음으로는 책이다.
최근에 많이 비워냈지만,
나도, 남편도, 우리 아이들도 책은 빌리는 것보다 소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종교가 없는 우리 집에서 책은 기댈 곳이고
다른 세상을 향한 창구다.
그래서 책만큼은 조금 너그러워지고 싶다.
많은 세상을 열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맥시멀리스트가 부럽다.
저렇게 다양한 물건을 갖추고도
자신의 삶을 힘차게 꾸려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는 다른 단단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나는 물건이 많아지면
어김없이 점령당하는 기분이 든다.
물건이 나를 누르고, 흐름을 막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나와 연동된 물건만 남기고,
과하게 비우다 실수해도
다시 정리하고 다시 판단한다.
팔을 걷고, 다시 덜어낸다.
물건을 다양하게 갖추는 사람들은
그것을 단지 물건일 뿐이라 여긴다.
거기에 눌리지 않는다.
그 시선이 참 부럽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이라는 걸 안다.
보이는 물건에 급급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가진 물건이
자신의 삶과 잘 연동되어 있고,
머릿속에도 아무런 혼란을 주지 않는다면
그건 그대로 괜찮은 삶이다.
-미니멀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을 위한 선택이다.
-건강한 주방과 소장하고 싶은 책, 우리 집만의 기준이 있다.
-보이는 물건의 가짓수보다 중요한 건 머릿속 삶과 연결된 '사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