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알레산드로 보파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있다. 사람으로 살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 아닐까 한다.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를 읽어보면 동물로써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달픈지 보여준다. 강자생존. 이 규칙이 확실한 동물들에게 실패는 곧 죽음과 직결된다. 아니 때로는 실패하지 않더라도 죽을 때가 있다.
사마귀의 경우에는 수컷 사마귀가 암컷 사마귀한테 잡아 먹히면서까지 수정을 한다. 따지고 보면 동물들의 세계는 인간의 삶보다 더 처절하다. 하지만 그 처절함 속에 인간사의 비틀린 면을 잘 심어 놓은 것은 어쩌면 저자인 알레산드로 보파의 작가적 역량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는 이 책에 20여 동물들의 이야기를 넣어 두었다. 어떤 글은 몇 장 되지 않을 정도로 짧고, 또 어떤 글은 열몇 장 이상을 넘겨야 할 정도로 길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150페이지 정도로 얇다.)
작가 서문을 보다 보면 이 책의 시작은 사소한 이메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주식 대박으로 쉬고 있었던 보파는 간혹 지인에게 자기가 전공했던 생물학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적어 보내주었다. 그 소설의 반응이 좋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책을 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을 받았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바로 이 책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다.
지인들에게 보내는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시작했던 만큼 이야기 하나하나는 재치가 넘치며 흥미롭다. 특히 비스코비츠, 리우바라는 인물의 관계 구조는 이야기가 바뀌어도 똑같이 유지되기 때문에 처음 읽는 이야기라도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를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겨울 잠쥐의 이야기를 보면, 비스코비츠는 부인이 있다. 하지만 그 부인은 어디를 보나 자기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같이 살고 있다. 겨울잠쥐의 특성은 잠을 잔다는 거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그래서 그는 겨우내 잠을 자면서 자기에게 꼭 맞는 완벽한 여자 친구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리우바. 비스코비츠는 리우바에게 모든 것들을 맞춰주었다. 맛있는 도토리, 깨끗한 밤나무 등. 하지만 그녀는 겨울잠쥐의 유일한 쾌락인 같이 잠을 자는 것만큼은 거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리우바는 비스코비츠의 꿈이 아닌 실제의 삶에서 비스코비츠를 찾아온다. 그는 당황한다. 하지만 곧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껏 비스코비츠는 자신이 리우바를 꿈꾸고 상상했다고 여겨왔다. 실상은 반대였다. 리우바가 비스코비츠를 꿈속에서 만나왔던 거다. 그렇게 이야기는 장자의 호접지몽 같은 느낌을 주며 끝이 난다.
다른 에피소드를 보자. 비스코비츠는 강한 수컷 엘크다. 그는 여러 수컷들과 겨루고 난 뒤 무리의 유일한 남자가 되었다. 무리의 암컷 중 우두머리는 리우바였다. 비스코비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리우바는 그런 비스코비츠를 보며 그가 무리의 유일한 보호자이며 늑대와 다른 수컷들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교미를 하려면 이 곳 숲에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무리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암컷들이 보는 앞에서 교미하는 것이 꺼려졌던 비스코비츠는 밤에 찾아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밤이 되자 비스코비츠는 늑대로부터 망을 봐야 했고, 몰래 암컷들에게 다가오는 수컷과 싸워야 했으며, 인간들로부터 무리를 지켜야 했다. 모든 것이 해결될 때쯤 비스코비츠는 리우바에게 다가갔지만 리우바는 당당하게 말한다.
“미안해요, 비스코비츠. 발정기가 끝났답니다. 이제 내년을 기약해야 우리.”
위의 두 이야기만 보면 비스코비츠는 언제나 리우바를 꿈꾸고 원하지만 리우바는 그의 기대에 응해주지 않는다. 모든 이야기가 이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이렇게 리우바에게 다가가기 위한 수컷 비스코비츠의 노력이 주가 된다. 거기서 리우바는 훨씬 위에 있는 시점으로 비스코비츠의 욕망을 좌절시킨다.
교미라고 표현되었지만, 결국 번식의 욕구는 가장 생물다운 열망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를 살펴보면 우리는 단지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한낮 껍질에 불과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연결을 위해 우리는 일을 하고 돈을 모으며 보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비스코비츠는 그런 세상의 여러 수컷 중에 대표적인 한 수컷일 뿐이다. 그것도 자기의 유전자를 후대에 넘기기 위해 절대적으로 노력하는 가엾은 수컷.
책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은 대개 두 부류로 나눠진다. 비스코비츠와 리우바와 같이 뭔가 특출 난 인물들과 주코틱, 페트로빅 등과 같은 특징이 없고 바보 같은 인물들. 특히 주코틱이 가장 바보스러운 캐릭터로 많이 등장하는데, '이름이 나쁘구나, 비스코비츠'에서 비스코비츠는 개미로 나온다. 그리고 주코틱 역시 개미다. 하지만 이 두 개미는 서로 닮았다. 유충일 때부터 분비물이 나오지 않아 결국 개미로 변태 하지 못하고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주코틱과 비스코비츠의 행동은 서로 달라졌다. 주코틱은 유충인 채로 살면서 현재에 만족하는 삶을 택했고, 비스코비츠는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왕이 되기 위해 안감힘을 썼다. 결국 시간이 흘러 비스코비츠는 결국 황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자기의 동상을 세우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상의 팔다리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비스코비츠는 자신과 동상을 똑같이 만들기 위해 자신의 팔다리도 떼어버린다. 결국 모든 팔다리가 떨어지고 비스코비츠는 주코틱과 같은 유충일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 이야기처럼 주코틱은 화자인 비스코비츠의 눈에는 한 없이 바보며 멍청해 보이지만 그건 엄연히 비스코비츠 본인만의 생각일 경우가 많았다. 페트로빅 역시 '길을 찾았구나, 비스코비츠'에서 슈퍼 쥐로 나온다. 그는 연구실을 빠져나가는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길을 찾지 못해 똑똑한 비스코비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비스코비츠는 자기의 똑똑함을 자랑하며 결국 페트로빅을 하수구로 안내한다. 하지만 그곳은 비스코비츠와는 맞지 않는 곳이다. 오히려 힘이 세고 덩치가 큰 페트로빅에게 딱 맞는 장소였다. 결국 비스코비츠는 다시 연구실로 돌아오게 된다.
주코틱과 페트로빅. 이 둘은 비스코비츠에 비해서 똑똑하거나 열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멍청하고 더 동물적인 성향이 크다. 비스코비츠만이 동물이 아니라 인간적인 사고를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사고가 비스코비츠를 더욱 힘들게 하고 고통받게 만든다. 이는 인간이기에 가질 수 없는 고통을 비스코비츠와 주코틱 혹은 페트로빅을 대비해 보여주면서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닐까.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는 우화적 성격이 큰 책이다. 하지만 마냥 우화라기보다는 블랙 코미디의 느낌이 더 강하다. 우리 살마도 결국에는 하나의 동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을 한다는 특성을 토대로 다른 동물들보다 우수하다고 여긴다. 이 책에 나오는 비스코비츠도 그렇다. 자신이 더 똑똑하고 다른 동물들보다 우수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결국 그 똑똑함으로 인해 더 고통을 받고 좌절을 맛보게 되는 비스코비츠를 여러 이야기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는 오히려 우리들에게 작가가 던지는 한 마디가 아닐까?
'네가 다른 동물들과 다른 것 같지? 하지만 아무리 우겨도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