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 이반 투르게네프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애뜻한걸까? 처음이라는 것은 다른 경험이 없기에 사실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 아직 아무것도 겪어보지 않았기에 '원래 이런건가?' 하는 오해말이다. 심지어 그런 첫 경험이 사랑이라면 어떨까? 여기 치명적인 첫사랑 때문에 40대가 되도록 혼자인 남자가 있다.
소년 블라디미르는 화목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풍족한 집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가문의 이해관계로 인해 맺어졌고, 둘 모두 아직 별탈 없이 헤어지지 않고 지내온다. 그러나 모든 일의 시작은 모스크바의 몰락한 귀족 지나이다 가족이 이사오면서 시작된다.
사랑에 대한 표현은 어떤 말을 붙여놓든 어울린다. 독, 돌, 화살, 심지어는 똥까지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만큼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르며 심지어는 동일한 사랑일지라도 시시때때로 변화하기 때문에 뭐라 한 가지 단어로 붙잡아 둘수가 없다.
블라디미르에게 지나이다는 바로 독이었다. 그것도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독. 세상 모든 독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간혹 어떤 독은 화려하다. 산에 올라가 보이는 독버섯만해도 일반 버섯에 비해 모양이나 크기가 화려하고,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곳에 있다. 오히려 그런 독은 보지 않으려하면 할수록 더 눈에 잘 들어오게 되어 있다.
지나이다에게 반해버린 블라디미르는 점차 공부를 멀리하고 그녀에 집을 드나들면서 점점 나태해진다. 지나이다의 집에서는 블라디미르 말고도 3~4명의 남자들이 더 있었다. 한명은 시인이었고,또 다른 한 명은 전직 장교인 자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모두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었다. 사실 지나이다도 자신보다 5살 정도 많은 여성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집에 놀러갈 때마다 블라디미르는 아이 취급을 받았다.
한번은 그녀가 블라디미르에게 4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리라고 한다. 그는 겁이 났지만 결국 그 곳에서 뛰어내린다. 그 충격으로 쓰려진 블라디미르를 보면서 지나이다는 "오! 불쌍한 우리 아이"라고 하며 그의 이마에 키스를 한다. 이 장면만봐도 지나이다에게 블라디미르는 한 명의 성인 남성이 아닌 단지 이웃집의 소년일 뿐이었다.
외사랑이 힘든 건 정말 거대한 바위에 혼자 도끼질을 하는 듯한 허무함과 절망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블라디미르에게 독이라 한 것은 더 큰 이유가 있다.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서 지나이다는 자신의 집을 드나드는 인물들아 아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또한 그녀는 자기의 추종자가 있는 자리에서 그 사실을 은연 중에 흘리게 된다. 결국 그녀의 남자에 대한 질투가 블라디미르를 감싸게 되고 어느 날 밤 그는 칼을 들고 지나이다와 그녀의 남자가 밀회를 하는 분수대에 숨어들기까지 한다.
시간이 지나 어떤 남자가 그곳에 나타났다. 블라디미르는 칼알 쥐고 있던 손을 더욱 다 잡았다. 그런데 얼핏 구름에 가려진 달빛에 그의 실루엣이 드러나자 그는 움작일 수가 없었다. 그 남자는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았는 인물이었다. 아니 심지어는 그를 존경까지 했다. 그는 바로 자기 아버지였다.
블라디미르는 결국 그 자리를 도망치듯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가지고 간 칼을 그 자리에 두고 온 것을 보면 당시 그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사건 직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크게 싸우고 블라디미르의 집은 다른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익명으로 편지를 보낸 거다. 그 속에는 아버지와 지나이다에 대한 염문이 가득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곧바로 부부싸움을 하셨고, 가족은 결국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이사를 가기로 한 바로 그 날, 아버지를 따라 가던 블라디미르는 어느 순간 아버지를 따라 잡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놓친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 찾아 간 곳은 산 속 어느 산장이었다. 산장 안에는 어느 여인이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지나이다였다. 바로 그때 자기 옆으로 누군가가 스윽 지나갔다. 블라디미르는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깊게 눌러 쓴 모자에 정체를 숨기기는 했지만 블라디미르는 단번에 누군지 알게 되었다. 바로 자기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지나이다에게 헤어지자고 이야기 하는 듯했다. 그런 아버지에 태도에 지나이다는 한번 더 아버지를 붙잡았고, 그는 손에 들고 있는 채찍을 이용해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 바람에 지나이다의 손에는 피가 났다. 하지만 지나이다는 자신의 손에 난 피를 빨아당기며 다시 한번 아버지에게 말을 거두기를 요청했다. 그 장면에 몸서리 쳤는지 아버지는 들고 있던 채찍을 그 자리에 던져두고 산장을 나왔다.
그 장면을 본 블라디미르는 금새 왔던 길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아버지와 재회했다. 블라디미르는 아버지의 사라진 채찍에 대해서 물어봤고, 아버지는 정말 아무런 의미 없이 '단지 쓸모가 없어서 버리고 왔다.'라며 이야기를 끊었다. 그 말에 블라디미리는 더이상 토를 달지 못하고 아버지를 따라 이동했다.
이 장면을 보더라도 이미 블라디미르는 '아버지'라는 존재에게 두 번 이상 화를 낼 타이밍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 아버지에게 질투와 칼날을 들이밀지 않았다. 다만 앞서 행동했던것처럼 지켜보고 혼자 고민할 따름이었다. 물론 소설 상 이 글이 쓰여진 시점이 몇 십 년이 지난 후여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블라디미르는 아버지를 존경 그 이상의 존재로 봤던 듯 하다.
아버지에 대한 블라디미르의 묘사는 많이 나오진 않는다. 다만 처음 나왔던 한 구절이 너무나 치명적이라 다른 수사를 뒤에 갖다놓아도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된 듯하다.
아버지가 나를 자꾸만 밀어내지 않았다면 나는 아버지에게 더 빠져들었을 것이다.
처음 지나이다를 본 직후, 나아가 그녀와 함께 그녀의 집 안에서 다른 어른들과 어울리면서 블라디미르는 혼란스러웠을거다. 이성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기존의 룰은 사라지고 없고 반미치광이 같은 놀이에 사람들이 빠져 있는거다. 더군다나 그와 같이 노는 어른들은 사회적으로 품위있다고 알려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지나이다의 손짓 하나, 눈길 하나에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블라디미르에게는 마치 이상한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을 거다.
그렇지만 자신도 곧 그들과 다르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면서 사랑이라는 마약에 중독된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어리다는 이유로 자신과 다른 남자들을 구별짓는 지나이다의 태도에 괜히 객기를 부리기도 흔다.
블라디미르에게 사랑이란 자신을 자신답지 않게 만드는 병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높은 지위의 남자들을 어린아이처럼 만들고,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편온했던 집 안을 뒤흔들어 놓았으며, 자기가 존경하던 아버지를 죽일 뻔하게 만든 건 모두 사랑 때문이었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은 사랑에 빠진 어린 남자의 셀렘도 표현했지만 그로 인해 겪게되는 치명적인 아픔도 같이 표현된 책이다. 그리고 그가 존경했던 아버지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나의 아들아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해라
그 행복의 독약을 두려워해라
이 책을 읽고나서 가장 먼저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욕이었다. 지나이다라는 캐릭터에 대한 어이없음과 얄미움. 결국 그녀는 자신에 대한 블라디미르의 사랑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교묘하게 즐기고 이용한 듯하다. 그리고 그것이 블라디미르로 하여금 큰 충격을 주었고(아버지와의 사랑이 더 큰 영향을 준 듯 하지만) 이야기의 처음 시작에서처럼 결국 누구도 사랑하지 밋하는 트라우마를 준 것 같아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