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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레스트 Aug 01. 2022

더위를 먹다

2022.08.01 매일매일 부지런히 프로젝트 - 글쓰기 part 1

우리 할머니는 가끔씩 이상한 말을 한다. 고함을 지르거나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서워서 내방 구석에 있는 장롱에 숨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한쪽 구석에 앉아 흐느끼고, 아버지는 할머니를 붙잡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절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살짝 입고리에 걸리는 미소가 매력적이었다. 할머니의 품에 안기면 살짝 나는 은은한 계피향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할머니 무릎에 누워 있으면 어느 순간 스르륵 잠이 들고는 했는데, 깨고 나면 어느새 입안에 달콤한 계피맛 사탕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엄마가 보면 할머니에게 아이가 잘 때 사탕을 먹이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하고는 했다. 할머니는 그럼에도 절대 물러나는 일 없이, 계피가 악운을 없애준다며 절대 뜻을 굽힐 생각을 안 하셨다. 내 악운을 그렇게 신경 쓰면서 정작 할머니는 악귀에 씌이고 말았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장롱 속에 있었다. 입 안에는 ㄱ피맛 사탕이 들어있었다. 언제 먹었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장롱문이 열리며 할머니가 나를 보며 살짝 윙크를 했다.


“하.. 할머니?”


너무 놀라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목소리가 갑자기 탁하고 잠겼다. 얼른 엄마나 아빠를 불러야 할지 아니면 도망을 가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할머니가 예전의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개구쟁이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예전에 무릎베개를 해주며 옛날이야기를 해주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서 눈물이 났다.


“할머니, 이제 괜찮아?”

“고럼, 할미가 우리 예쁜이 두고 어디 가겠니?”


나는 장롱에서 일어서면서 할머니에게 뛰어들듯이 안겼다. 


“아이고, 아이고 할미 주겠다.”


할머니는 나를 안고는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소리를 했다. 


“근데, 할머니 왜 갑자기 아팠던 거야? 그리고 다 나은 거 맞지?’”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하면서도 은은하게 말했다.


“할머니가 그동안 아파서 많이 무서웠지. 할미가 우리 손주를 무섭게 만들었구나. 미안하네. 그런데 할미가 또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은 못 하겠다. 앞으로도 저 무서워할 수도 있어. 우리 손주를 못 알아볼 수도 있어. 그래도 할미가 우리 손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건 변함이 없단다.”


“할머니, 나를 기억을 못 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 거야?”


“음…. 예전에 할미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고 말하는 호랑이 이야기해 준 적이 있지?”


“응! 호랑이한테 도망가서 하늘나라로 올라갔던 그 이야기 말이지?”


“오구 오구, 우리 손주 기억력도 좋아요. 맞다. 그때 말한 호랑이가, 이번에는 할미를 찾아왔어.”


“정말? 어디 어디? 근데 할머니는 떡도 없잖아.”


“할미도 깜짝 놀랐단다. 할미가 알고 있던 호랑이보다 이 녀석이 훨씬 크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고 녀석이 뜨고 있는 눈동자밖에 안 보이더라고. 어두운 밤에 하늘을 보면 세상이 까맣잖아. 그게 고녀석의 눈동자였지 뭐니. 그래서 우리 손주보고 밤에 일찍 자라는 게, 한 밤에 고녀석이 눈동자를 땡그렇게 뜨고 먹이를 찾는데, 들키지 말라고 그랬던 거지.”


“ 아! 그래서 저녁에 그렇게 빨리 자라고 말했구나. 그러면 할머니는 그 호랑이한테 걸린 거야?”


“그래, 맞단다. 이번에도 호랑이가 할미 보고 떡을 안 주면 안 잡아먹겠다는 거야. 근데 할미가 떡이 없잖아.”


“떡을 가게에서 사서 주면 안 돼?”


“똘똘한 녀석. 할미도 처음에는 그렇게 말해봤지만, 그렇게 만든 떡은 많이 먹었다는 거야. 그래서 다른 떡을 달라는 거야. 그래서 할미가 그 떡은 어떻게 만드냐니까, 더위를 이용해 쪄야 한다는 거야? “


“더위? “


“그래, 요즘 엄청 덥잖아. 그걸 이용해서 쪄야 한다는 거야. 할머니가 그래서 직접 더위로 쪄 주겠다고 말했지. 그러니까 호랑이가 어흥하고 알겠다고 하는 거야. 그런데 할미가 생각 못한 게 있었어. 우리 손주 무척 더울 때, 정신이 없고 축 쳐지고 했던 적 있지?”


“응,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물만 먹게 되더라고.”


“할미가 딱 그런 상황이란다. 더위를 먹은 거지. 그러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렇단다. 그러니 우리 손주가 이해를 해줘야 해. 할미가 우리 예쁜 손주를 못 알아봐도, 할미가 더위로 떡을 찌다가 더위를 먹어 버렸구나 하고 생각해야 해. 아무리 더위를 먹더라도 손주가 할미 좋아하는 건 똑같은 것처럼. 할미도 우리 손주를 사랑하는 건 똑같으니까. “


“응, 알겠어! 내가 그럼 할머니 더위 안 먹도록 빨리 시원해지라고 하늘에 빌어볼게!”


“그래, 그래 고맙네. 우리 손주.”



나는 일어나자마자 두 손을 모아 빨리 시원해지라고, 그래서 할머니가 더위를 먹지 말라고 정말 간절히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 소원이 이뤄지는 걸 보지 못하고 나뭇잎이 떨어지기 전에 먼저 호랑이에게 잡아 먹혀 버렸다. 할머니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버린 그날, 나는 아마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울었던 날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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