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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레스트 Aug 02. 2022

태풍의 눈

2022.08.02 매일매일 부지런히 프로젝트 - 글쓰기 part 1

“아빠, 오늘도 저녁 없어??”


아기 생쥐가 배가 고픈지 양손을 배에 올리고 아빠 생쥐를 쳐다본다. 아빠 생쥐는 아기 생쥐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빠 생쥐는 구멍 너머에 있는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생쥐 일가가 살고 있는 구멍은 부엌의 한 모퉁이 작은 공간에 마련되어 있다. 아빠 생쥐가 이곳에 자리를 처음 잡았을 때, 조상님의 묫자리에 머리를 아홉 번이나 찧을 만큼 기쁨에 겨워 절을 하기도 했다. 이곳은 현재 집주인인 인간이 어떤 음식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으며, 최단기간 음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최단거리 노선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부엌 싱크대 밑 공간에 마련되어 있는 이 구멍은 바로 앞에 식탁의 다리가 자리를 잡고 있어, 인간의 눈높이로 바라봤을 때는 절대 발각될 일이 없는 천혜의 요새와 같았다. 


아빠 생쥐는 이곳에 자리를 잡고 아이들이 8마리가 될 때까지 별문제 없이 지내왔다. 만족도가 정말 높은 위치 선정이었다. 다른 또래의 생쥐들이 이사를 2번, 3번 갈 동안에 아빠 생쥐는 한 번도 이사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만족도가 높은 곳이 바로 이 집이었다.


누군가가 아빠 생쥐에게 태어나서 가장 잘한 선택이 뭐라고 물어보면 아빠 생쥐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이 집을 구한 거라고 말할 것이다. 그랬다. 분명 3일 전까지만 해도 아빠 생쥐의 최고의 선택은 조금도 굽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날카로우면서도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온 몸이 찌릿찌릿한 그 눈동자를 마주 대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 그 눈동자를 발견한 것은 첫째 아이였다. 그날도 부엌의 시끌벅적함이 끝나갈 무렵, 이제 나가면 아무도 눈치를 못 챌 것 같은 시간에 외출 준비를 마친 아빠 생쥐였다. 아내와 가볍게 포옹을 하고 오늘도 맛있는 음식을 많이 챙겨 올 것을 약속을 하며 구멍 밖을 나가려는데 갑자기 첫째 아이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찌익!!!”


마치 경기를 일으키는 듯한 고함 소리에 아빠 생쥐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첫째야, 무슨 일이니. 왜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 그래?”


“아, 아빠 저… 저기를 좀 보세요.” 


첫째의 손 끗을 따라간 그곳에는 노란 홍채에 길쭉한 동공을 지닌 고양이의 눈동자가 우리를 바로 딱 보고 있었다. 


“에구머니나!”


그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아빠 생쥐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세상과 작별을 할 것 같은 음습한 소름이 등 뒤에 돋아났다. 뒤로 넘어진 아빠 생쥐는 얼른 몸을 추스른 뒤 아이들을 고양이의 시선이 닫지 않는 구석 한 귀퉁이로 밀어 넣었다.


“여보, 가.. 갑자기 웬 고양이일까요?


“그러게, 말일세. 나도 원”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에 아빠 생쥐 역시 뭐라고 확답을 내릴 수 있는 방안이 없었다. 


“우선, 고양이가 사라지면 나가서 먹을 것을 구해오리다.”


“부디, 몸조심하세요.”


그때부터 아빠 생쥐와 고양이와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아빠 생쥐가 고양이라는 존재를 직접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주 어렸을 때, 가족들을 따라 집을 매번 옮길 때였다. 조용한 쓰레기장 근처를 지나가고 있을 때였는데, 갑자기 “찍!” 하는 서늘한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뒤이어 ‘니야옹’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뒤따라 왔다. 그 소리가 나자마자 아빠 생쥐의 아버지는 서둘러 가족들을 구석으로 피신시키며 발을 놀렸다. 하지만 ‘냐옹’ 소리가 날 때마다 아빠 생쥐를 뒤따르던 가족들은 한 마리씩 고함을 지르며 사라졌고,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양이의 냐옹하는 소리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빠 생쥐가 가장으로써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 어렸을 때 아빠 생쥐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당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다고 고양이의 울음소리만 생각이 나지 제대로 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예전 어르신들이 설명해준 고양이의 눈과 동일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눈을 바라봤을 때 발가락 하나 꿈쩍하기 힘든 압박감은.. 틀림없는 고양이였다. 


하지만, 고양이가 이렇게 참을성이 많은지 아빠 생쥐는 처음 알았다. 처음 고양이의 눈동자를 마주한 지 3일이 되는 지금까지도 고양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이곳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조금의 울음소리도 살짝의 움직임도 없었다. 단지 지긋이 이곳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구멍 속 남은 음식들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 오늘이 고양이와의 대치 마지막일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고양이에게 잡혀 먹히는 게 아니라 굶어서 다들 죽을 판이었다. 아빠 생쥐는 아내에게 오늘 고양이의 눈동자로 바로 들어가 저 끔찍한 짐승을 따돌리겠다고 말했다. 


아빠 생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내의 눈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구멍밖에 어둠이 깔리고 드디어 결사의 시간이 왔다. 아빠 생쥐는 아이들을 한 번씩 안아보고는 구멍 속으로 뛰쳐나갔다. 발은 어느 때보다 무거웠고, 주위를 살펴야 할 목은 빳빳하게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금 아빠 생쥐의 머릿속에는 고양이의 시선을 돌려 아내가 음식을 가져올 시간을 버는 것. 이것 하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빠 생쥐는 고양이의 눈 바로 가운데로 뛰어 들어갔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려갔는지 모르겠으나, 아빠 생쥐는 의도치 않게 고양이의 눈을 공격하고 말았다. 그런데 들려야 하는 ‘냐옹’하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무척이나 부드러운 고양이 눈동자만 느껴졌다. 멀리서 아빠 생쥐를 바라보던 가족들이 상황이 이상함을 눈치채고는 아빠 생쥐를 따라 뒤따라 나왔다. 멀리서 고양이 눈 한가운데 뒤집혀 있는 아빠 생쥐를 보면서 아내가 말했다. 


“여보… 이거 고양이 눈이 아니라, 고양이 쿠션 같은데요”


아빠 생쥐는 기력이 빠져 제대로 자기가 들이 박은 상대를 바라볼 정신이 들지 않았다. 지금 아빠 생쥐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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