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0 매일매일 부지런히 프로젝트 - 글쓰기 part 1
문이 닫히고 희재가 들어온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무도 없는 게 너무 당연했다. 그래도 희재는 버릇처럼 인사를 한다.
‘다녀왔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인사인지 알 수 없듯이, 습관적으로 읊조린 소리는 채 1미터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의 입으로 되돌아와 갇혀버린다.
가방을 침대 위로 던져 놓고, 희재는 곧바로 부엌으로 향한다. 찬장을 열어보니 먹을 게 없다. 분명 어제 라면이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새벽에 아버지가 먹고 나갔는 듯하다. 냉장고 속에는 김치와 식어버린 치킨 몇 조각 정도만 남아있다. 희재는 치킨을 가지고 와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치킨이라고 하지만 남아 있는 살코기는 거의 없다. 양념만 핥아 먹는 수준이라 뭔가를 먹었다고 하기에도 어색했다. 어쩔 수 없이 밥을 안치고 냉장고 속 김치를 볶아낸다. 이미 쉬어버릴 만큼 시큼해진 김치는 그냥 먹기에는 좋은 조합이 아니다.
“김 씨 아저씨 있는가? 희재 왔나?”
수시로 집을 들락날락하는 건너편 집에 사는 아저씨가 들어왔다가 희재를 보고는 살짝 놀란 듯하다. 희재는 말없이 고개만 숙여 인사를 했다.
“그래 그래, 아버지 없나?”
희재는 나지막이 ‘네’라고 말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도 않을 소리였지만 아저씨는 용케 그 소리를 듣고는 ‘너희 아버지 오면 건넛집 아저씨가 찾더라고 전해 도고’라고 말하며 희재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요 몇 달 사이 아버지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이들이었으나 요 며칠에는 동네 아저씨에서부터 시작해 친척분들까지 오는 것을 보면, 아버지가 아마 여기저기에 돈을 많이 빌리고 다녔던 듯하다.
그래도 아침 무렵에 어쩌다 얼굴을 마주치면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는 얼굴로 내 어깨를 툭툭 치시며 주머니에서 만원 짜리 한 장을 주시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희재는 방에 들어가 쓱 둘러본다. 게임기이며, 컴퓨터이며 예전에 자리를 잡고 있던 것들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급하다며, 나중에 더 좋은 걸로 사주겠다고 말하고 가지고 가버린 거다. 아마 중고가게나, 전당포에 팔아버린 게 아닐까 한다. 희재의 방에 남아 있는 거라곤 이불과 줘도 가지지 않을 책상. 그리고 교과서랑 희재 본인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자정이 지나고 나서야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들어오자마자 희재의 방으로 들어와 조용히 희재를 깨웠다.
“아! 아빠. 낮에 건너편 아저….”
희재의 말은 아버지의 수신호 하나에 가로막혔다. 검지를 새우고 입술에 바짝 대는 동작. 특별한 설명 없이도. 이 수신호가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조용히 하고 급한 짐만 싸고 따라오너라. “
희재의 아버지는 그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 다만, 눈빛만으로도 그 절박함과 며칠 전 보여주었던 단단함이 많이 희석된 느낌이었다. 희재는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메고 갔던 가방에 옷가지 몇 가지만 넣고는 안방으로 갔다.
희재의 아버지는 조용히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는 안방 창문을 통해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는 희재 역시 내려오라고 손 짓을 했다. 살짝 높았지만 어렵지 않게 뛰어넘었다.
희재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희재의 손을 잡고 가로등도 비치지 않는 시골 논두렁 길을 걸어갔다. 중간에 돌덩이가 있어 자빠질 뻔했지만, 다행히 희재의 아버지가 잡아주었다. 그렇게 둘은 아무 말도 없이. 흔적도 없이 그 동네에서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희재의 집 현관은 잠겨 있었고, 동네에서 그 부자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지 않았다. 대신에 ‘희재네 야반도주했다네.’하며 입 소문만 무성하게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