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아내의 입덧
참 신기하지 햇살아,
네 엄마는 뭐든지 잘 먹는 사람이었어.
연애 시절 데이트 할 때부터,
음식점 위치랑 먹었던 메뉴 외우는 건 동급최강이었거든.
무심한 아빤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엄만 아빠와 함께 갔던 음식점을 기준으로
그날의 분위기와 그때의 대화들을 기억하고 있었어.
그런데 너를 품고 나서는
어느 순간 후각이 민감해진 거야.
임신하고 한 달 반 정도 됐었나,
냉장고 문을 열다가 별안간 미간을 찌푸리며
그대로 자리를 피해버린 거지.
그 뒤로 입맛을 잃었고,
특히 해산물이라면 질색을 했어.
야무지게 잘 먹던 회며, 생선 요리들이었는데 말야.
놀라운 건 어묵도 냄새조차 맡지 못했다는 거지.
그러니 네 덕분에 어묵 차지는 몽땅 내가 됐네? * 고마운 녀석 같으니 :)
엄마의 입덧이 시작된 거야.
어느 날인가, 거짓말처럼 입맛을 잃은 네 엄마가
별안간 레드향이 먹고 싶다는 거야.
당연히 아빠는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구해올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마침 어떤 분이 바로 그날 제주도에서 레드향을 보내주셨어.
참 신기하지.
이런 우연이 삶에 재미인가 봐.
엄마랑 아빠는 서로를 보고 웃으며 감사했단다.
신이 엄마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그렇게 네가 엄마 배 속에서 키위만 한 크기로 있었을 땐
한동안 엄만 과일로 입맛을 달랬단다.
지금도 최애 과일인 레드향을 하루 한 개씩 아껴먹고 있어.
고마워, 우리 햇살이 덕분에
아빠도 어느 때보다 레드향을 많이 먹게 되었네.
그보다 더욱 고마운 건
햇살이 네가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아서
생각보다 잔잔하게 입덧이 지나갔다는 거야.
우리 햇살이 최고네,
입덧으로 엄마 별로 고생 안 시켰으니
칭찬하는 의미로
이다음에 아빠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치킨에 콜라를 먹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햇살이 먹고 싶은 건 엄마 허락받고 꼭 사줄게.
이제 엄마는 입덧 시기를 지나
다시 입맛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야.
이번 주에는 네 엄마를 위해 무슨 요리를 할까?
무엇을 먹어야 엄마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엄마가 행복하다면 너도 행복할 테고
엄마와 네가 행복하다면
아빠는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구나.
이것 또한 너를 맞이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아빠는 오늘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일상을 남겨 본다.
그러니 건강히 보자, 햇살아!
#육아일기 #남편일기 #아빠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