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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eek Feb 21. 2023

[육아일기] 아내의 입덧

[육아일기] 아내의 입덧     


참 신기하지 햇살아, 

네 엄마는 뭐든지 잘 먹는 사람이었어. 

연애 시절 데이트 할 때부터,

음식점 위치랑 먹었던 메뉴 외우는 건 동급최강이었거든.

무심한 아빤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엄만 아빠와 함께 갔던 음식점을 기준으로

그날의 분위기와 그때의 대화들을 기억하고 있었어.   


그런데 너를 품고 나서는 

어느 순간 후각이 민감해진 거야. 

임신하고 한 달 반 정도 됐었나, 

냉장고 문을 열다가 별안간 미간을 찌푸리며 

그대로 자리를 피해버린 거지. 

그 뒤로 입맛을 잃었고,

특히 해산물이라면 질색을 했어. 

야무지게 잘 먹던 회며, 생선 요리들이었는데 말야. 

놀라운 건 어묵도 냄새조차 맡지 못했다는 거지.

그러니 네 덕분에 어묵 차지는 몽땅 내가 됐네?   * 고마운 녀석 같으니 :)       


엄마의 입덧이 시작된 거야. 

어느 날인가, 거짓말처럼 입맛을 잃은 네 엄마가 

별안간 레드향이 먹고 싶다는 거야. 

당연히 아빠는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구해올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마침 어떤 분이 바로 그날 제주도에서 레드향을 보내주셨어. 

참 신기하지. 

이런 우연이 삶에 재미인가 봐.

엄마랑 아빠는 서로를 보고 웃으며 감사했단다. 

신이 엄마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그렇게 네가 엄마 배 속에서 키위만 한 크기로 있었을 땐 

한동안 엄만 과일로 입맛을 달랬단다. 

지금도 최애 과일인 레드향을 하루 한 개씩 아껴먹고 있어. 

고마워, 우리 햇살이 덕분에

아빠도 어느 때보다 레드향을 많이 먹게 되었네. 

그보다 더욱 고마운 건 

햇살이 네가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아서 

생각보다 잔잔하게 입덧이 지나갔다는 거야.           


우리 햇살이 최고네, 

입덧으로 엄마 별로 고생 안 시켰으니

칭찬하는 의미로 

이다음에 아빠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치킨에 콜라를 먹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햇살이 먹고 싶은 건 엄마 허락받고 꼭 사줄게.      


이제 엄마는 입덧 시기를 지나 

다시 입맛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야. 

이번 주에는 네 엄마를 위해 무슨 요리를 할까? 

무엇을 먹어야 엄마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엄마가 행복하다면 너도 행복할 테고 

엄마와 네가 행복하다면

아빠는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구나.  

이것 또한 너를 맞이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아빠는 오늘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일상을 남겨 본다.      


그러니 건강히 보자, 햇살아!                    


출처 : 제주어멍똘농장


#육아일기 #남편일기 #아빠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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