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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리워하는 순간들은 우리 인생에 기적...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by 시크seek

[M_Book #2]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by 이꽃님

2019년 크리스천 독서모임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1. 글의 힘이란 실로 놀랍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손수건을 준비해야 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무던했던 가슴이 뻐근해지고, 콧등이 시큰해진다. (나이 먹고 감수성이 예민해진 건지) 울먹거리는 나를 당황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이 얘기가 제발 끝나지 않기를 바라던 책은 군 복무 시절 읽었던 <닥터 노먼 베쑨> 평전 이후 참 오랜만이다. 잘 쓴 글은 많지만 오랫동안 감정을 추스르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여운을 주는 글은 많지 않다. 작가의 역량이 탁월하다. 독자는 ‘과거 은유’든 ‘미래 은유’든 아니면 ‘아빠’든 ‘아빠의 새엄마가 될 옛 친구’든 작중 인물 중 하나에 자신을 투영하는 순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될 것이다. 먼저 일독을 권한다.


2. 소설은 판타지 형식을 빌려 총 41개의 편지로 진행된다. 1982년 과거의 은유와 2016년 미래의 은유가 서로의 시공간을 넘어 40개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같은 이름인 두 은유는 오해로 티격태격하는 사이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관계로 발전해 나간다. 한 은유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또 다른 은유는 마음의 키가 훌쩍 자란 채로 말이다. 결정적인 순간 등장하는 아빠의 편지는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지금까지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어낸다. 무엇보다 41통의 편지를 읽는 동안 편지 하나하나에서 일상에서 부딪히는 삶과 관계의 주제를 던지는 점이 좋다.


3. ‘과거의 은유’와 ‘미래의 은유’가 ‘은유법’으로 가득한 서신을 나누며 공감과 매력을 이끌어 낸다면, 소설의 핵심이 되는 아빠의 편지는 핵심을 관통하는 주제를 담담하게 풀어내며 독자의 마음을 사정없이 어지럽힌다. 그 누구도 서로의 선택에 대해 그리고 각자의 아픔에 대해 경솔하게 판단할 근거는 없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배려하기 때문에 다만 사랑의 언어가 달라 일어난 아픔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다.


4. 판타지 장르를 그리 좋아하지 않음에도 글의 몰입도가 있었던 까닭은 편지라는 장치가 가져다주는 ‘순수의 시대’ 리마인드(remind) 때문이다. 과거의 은유와 미래의 은유의 편지에는 서로의 시대상이 익살스레 드러난다. 특히 과거의 은유 편지를 읽노라면 마치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1999년 회상 장면이나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것 같아 자꾸 입 꼬리가 올라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편지를 읽다 보면 어느새 그 시절로 돌아가 과거의 은유가 속삭이는 얘기를 귀담아듣고 있게 된다.


5. 우리는 관계 속에서 참 많은 오해와 이해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사실 가족이라는 공동체, (대개는 피로 맺어진) 그 특별한 관계와 물리적‧심리적 공간 안에서 우리는 존재적 환대를 기대하고, 관용적 이해를 바란다. 그러나 아빠는 아빠의 상황 속에서 지켜내야 할 가치가 있고, 엄마는 엄마의 입장에서 헤아려야 할 의미가 있다. 자녀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어긋나며 갈등하게 되고, 서운함을 증폭시키게 된다. 재혼을 하겠다며 어쩐지 요즘 달라진 아빠의 태도가 영 못마땅한 2016년의 은유도,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그런 딸을 사랑하는 방법이 어렵기만 한 아빠도 모두 이해되는 것이 그러한 까닭이다.


6. 이승환의 노래 중 ‘가족’이라는 곡이 있다. “때로는 짐이 되기도 했었죠 많은 기대와 실망 때문에 늘 곁에 있으니 늘 벗어나고도 싶고”, “가족이어도 알 수 없는 얘기 따로 돌아누운 외로움이 슬프기만 해요 아무 이유도 없는데”, “힘이 들어 쉬어가고 싶을 때면 나의 위로가 될 그때의 짐 이제의 힘이 된 고마운 사람들”, 소중한 사람(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그린 이 책과 닿아 있다. ‘특별해서 소중한 것이 아닌 소중하게 대하는 모든 것들이 다 특별하다. 그것이 기적이 아닌가 싶다.’라고 이 책은 말한다.


7. 이 소설, 무엇보다 그리움을 잘 표현해 냈다. 우리는 매 순간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나에게 소중한 것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욕망이다. 두 은유의 그리고 아빠의 그리움은 ‘너’다. 나의 모든 사랑이 너였으면 하는 참으로 소중한 대상이다. 너와 내가 만나 사랑하는 순간들이 모두 기적이다. 평범한 일상은 그렇게 모든 순간이 기적이 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순간들은 우리 인생에 기적과도 같이 사랑했던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때를 기억하며, 그 사람을 추억하는 것이 '그리움'이고, 지금 내 옆에 기댄 이 그리고 그 사람을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함'은 아닐런지.


2020년 독서모임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밑줄 그은 문장들


“크리스마스에 눈이 와야 첫사랑이 이루어진댔는데.”(p.42)
“세상에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특별한 일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일 거야.”(p.46)
“너희 아빠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야. 그저 아빠일 뿐이지.”(p.56)
“아빠는 아빠가 처음이겠지만 나도 딸은 처음이에요.(p. 97)”
“마음만 먹으면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아빠 모습을 알 수 있다는 걸 왜 난 몰랐을까.”(p.113)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더 많이, 더 자주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p.137)
“너하고 이러고 있으니까 좋다.”(p.198)
“은유야, 아빠다. 많이 놀랐니?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p.208-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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