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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그래도, 사랑'

by 시크seek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

[M_Book #3] “그래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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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독서모임: '그래도, 사랑' by정현주


1. 내 평생 최고의 시(詩) 한 편을 꼽아보라면 단연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들겠다. 문장의 유려함이나 시적 표현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행간 곳곳에서 마주한 장면, 꼭 내 이야기인 것만 같아서다. 이보다 더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가 없었다. 그 결을 에세이로 풀어내면 이만한 감정이 들까 생각하기도 했던 책이 바로 정현주 작가의 <그래도, 사랑>이다.


2. 책을 파스텔톤을 닮아 있다. 상큼하고, 화사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서툴고, 아련하다. 처음 읽었을 때는 사랑에 열병을 앓으면서도 속마음 꺼내기는 차마 쑥스러웠던 사춘기의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었고, 두 번째로 읽었을 때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자 영원한 화두인 ‘사랑’이라는 주제로 독서모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이별에 관한 추억들은 언제 얘기해도, 언제 들어도 늘 새롭기 마련이니까.


3. 화려한 수사가 아닌 담백하고 서정적인 글이다. 고급스러운 익숙함이랄까, 보통의 단어들을 가지고서도 감정선을 세차게 흔들어놓는 적절한 배치를 참 멋지게 해냈다는 점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들 같지만 진부하지 않다. 책의 장면 하나하나에 사랑했던 기억들이 투영되어 해석된다. 나만의 이야기지만 또 모두가 공감할만한 글, 사랑에 관한 진솔한 고백을 기저로 한 작가의 역량이 탁월하다.


4. 다만 챕터마다 영화 속 러브스토리를 풀어 의미를 더한 작가의 글이 나에겐 그리 와 닿지 않았다(물론 그 영화를 본 독자들에게는 이 부분이 더 여운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이는 작가의 잘못이 아니다. 그 영화들에 대한 내 관심이 현저한 까닭이다. 만약 주성치 영화로 사랑에 관한 담론을 이어나갔다면 나는 훨씬 몰입하며 빠져 들었을 것이다.


5. 만연체가 아니어서 좋았다.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힐링류의 책처럼 너무 짧은 메시지도 아니어서 좋았다. 적당했다. 사랑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뭉근하게 메시지를 전해줄 만큼. 그리고 글이 끝나는 지점에는 주제를 한 번 더 곱씹게 하는 아포리즘 같은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그 언젠가 설핏 지나쳤던 감정들을 기가 막히게 복원해 놓은 것이다. 그제야 ‘이 글 속에 내 경험이 들어있구나’ 독자는 감탄하게 되고, 마지막 문장에서는 항상 사랑에 관한 작가의 정의(定義)에 설득되게 된다.


6.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다시 만나는’ 다섯 가지 장면에 따라 글이 이어진다. 형태는 다르겠지만 거개 모든 사랑의 과정이 그렇다. 작가의 호흡을 따라가면 마치 한 사람의 연애사를 엿보는 것 같다. 누군가를 다시 만나게 되는 이유는 그 전의 만남에서 단 한순간이라도 감정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게 될 줄 알았던 한 사람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날 때, 그때도 ‘사랑했으므로’라고 위안 삼는 기억들이 다시 사랑하게 할 용기를 준다.


7. 좋은 감정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도 퍽 낭만적인 일이지만 누군가가 나를 같은 이유로 기억해 준다는 것은 또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일인가. 그러고 보니 이 책을 낭독한다면 2000년대 초반에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로 청취자들을 잠 못 이루게 한 정지영 아나운서면 참 좋겠다.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은 나를 있게 해 준 당신, ‘그래도, 사랑’이라며 가슴 시린 추억을 공유하기에 그녀의 목소리가 딱인 것만 같아서다.


8. 시인 테렌티우스(Terentius)가 말했다. “사랑을 말하는 것이 죄일지라도 나는 고백하리라.” 독서모임 참여자들의 사랑 얘기들이 코로나 19로 침체된 이 밤에 빛이 되었다. 황량하고 건조한 일상에 꽃이 되었다. 비록 닿지 않은 인연이었다 해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으므로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있었다. 지나간 사랑 이야기만으로도 밤을 지새울 청춘들인데, 다가올 사랑에는 또 얼마나 찬란한 폭죽을 터트릴까. 그래, 사랑할 때가 가장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법이다. 사랑할 때 가장 나답게 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은근한 설렘과 잔잔한 위로가 될 것이다.




밑줄 그은 문장들

“이 곳이 불편했던 게 아니었어. 솔직하지 못한 것이 불편한 것이었어. 오늘 여기, 참 좋다.”
“미친 척하고 20초만 용기를 내봐.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질 거야.”
“그곳이 전쟁터라고 해도 같이 있고 싶은 것이, 사랑”
“‘temo’ 두려움에 a 하나를 보태니 ‘te amo’, 사랑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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