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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eek May 05. 2021

엄마, 아빠 기쁘게 해드린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낭만 그리스도인 #16]

  [낭만 그리스도인 #16] 엄마, 아빠 기쁘게 해드린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크리스천 청년들과 대화하는 시간은 항상 즐겁고 의미있다. 조금 더 확장된 형태의 모임을 구상 중이다.

  

  예상하지 못했다. 애틋한 추억이나 기억에 남는 선물 얘기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부모라는 말이 나오자 순간 숙연해진다. 방금까지 화기애애하던 분위기였는데, 이젠 누구 하나 먼저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워한다. 성경 공부하다 부모에 관한 구절이 나오길래, 그저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 드린 이야기를 하자’고 했더니 이런다.


  한 청년은 질문을 받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끝내 아무 말도 못 하고 죄인처럼 고개만 푹 숙인다. 또 한 청년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난감한 표정을 짓다 그만 목소리의 떨림을 주체하지 못한다. 군대에서 야간 경계 근무를 설 때 엄마를 떠올리곤 했다는 말에 남자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호흡을 깊이 가다듬는다. 그래, 우리가 언제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 드렸던 걸까.


  “엄마 돌아가시고, 아빠가 적적하셨나 봐요. 아빠랑 한 번 통화하면 세 시간씩 하거든요.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TV에 나오는 건강 정보 꼼꼼하게 다 메모해 두었다가 전화할 때마다 자랑스러운 듯이 읊어요. 그리곤 했던 얘기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하고. 사실 출장 다녀올 때마다 챙겨드리는 선물보다 그냥 얘기 들어주는 걸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엄마랑 둘이 데이트해요. 장 보러 갈 때나 산책할 때, 항상 옆에 있어 드리려고 해요. 집에 딸이 없으니 제가 딸 노릇을 하는 거죠. 직장 생활할 때나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 바쁘다는 핑계로 많이 함께하지 못했어요. 감사하게도 시험에 붙었고, 지금은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제가 얼마나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부끄럽네요. 두 분이 이제는 함께할 수가 없거든요. 그렇지만 두 분 모두에게 똑같이 잘해 드리고 있습니다. 섭섭하지 않게 자주 찾아가고요. 용돈도 동일하게 드리고요. 두 분 모두 제게는 소중한 존재고, 내가 더 잘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눈물) 두 분 다 보고 싶네요.”


  “(아들인데)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요. 자주 말합니다. 하하하(쑥스러운 웃음).”


  기념일에 값비싼 선물 사드렸을 때를,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여행의 순간들을, 내가 잘 돼서 부모님의 자랑이 되었던 그날을 떠올릴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하나같이 다들 최근 일상에서 기뻐했던 엄마, 아빠의 모습들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다른 것보다 함께한 시간들을 소중하게 여겼다. 홀로인 엄마는 또 아빠는 적잖이 외로워할 것이란 걸 잘 아는 나이가 되다 보니 다들 아들, 딸 노릇 열심히 한다. 부모님의 자리를 뒤돌아보니 희생과 헌신으로 지켜온 자리라는 걸, 깊어가는 주름과 불편해지는 몸이 나를 사랑하며 키운 세월의 흔적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청년들과 성경 공부모임을 마치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어떻게 지냈는지, 야간 산책은 다녀오셨는지, 나는 저녁에 무얼 먹었는지, 20년 전에 보험은 어떤 걸 들었는지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눴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되는 양파 보관하는 방법을 굳이 엄마에게 물었더니 엄마가 반색하며 상세하게 방법을 알려준다.


  틈날 때마다 운동하고, 콜라는 입에도 대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정겹다. 휴가 한 번 내고 고향에 내려가겠다고 하니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하겠다며, 아내 편만 든다. “엄마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그저 너희 둘이 예쁜 추억 많이 만들고 행복한 것이 곧 내게 효도하는 거야.”라는 말이 참 뭉클하다. “우리 이쁜 (아내 이름) 사랑한다”며 하트 뿅뿅 날리신다. 뭐지, 엄마가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지금 이 순간은.


  십계명의 다섯 번째 이자 인간 사회에서 첫 번째로 지켜야 할 약속이 있는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다. 당시에는 부모에게서 율법과 계명을 포함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 중요한 가치이자 덕목이었다. 이 땅에서 잘 사는 법일뿐더러 장수의 비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꼭 그 목적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하신 분들이다. 그거면 됐다. 잔소리든 만연체 독백이든 다 들어드릴 테니까 오래오래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드니 엄마의 기쁨이 전해질수록 내 기쁨도 더해간다. 결혼하고 나니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나를 향한 엄마와 하늘에 계신 아빠의 마음을.


  * 본문에 나오는 내용은 정보 보호 차원에서 살짝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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