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도서관에서 집까지 10분이면 충분하다. 운이 좋으면 노래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 1절이 끝나갈 무렵 도착하기도 한다. 이 행운을 누리기 위해선 횡단보도 2개를 끊김 없이 한 번에 건너야 하는데 첫 번째 횡단보도를 건너 150M 정도 걸어가면 다음 횡단보도가 나온다. 보통 걸음으로 2분 정도가 소요되나 신호등은 2분보다 약간 일찍 바뀌기에 이 구간에선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이틀 전 귀갓길도 순탄했다. 도서관 건물을 나와서 바로 첫 번째 신호등을 받았고 여유로운 걸음이었음에도 두 번째 신호등은 아직 빨간불이었다. 횡단보도 진입 다섯 걸음 전. 건너야 할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는 걸 확인하고 걸음을 옮기는 데 갑자기 오른발이 무거워진다. 뭐지? 오른발로 시선을 옮긴다. 반쯤 풀려버린 신발 끈이 낭창거리며 풀려간다.
'이걸 건너야 되나 아니면 묶고 다음 거 건너야 되나.' 신호등은 이미 바뀌고 사람들은 바쁘게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저걸 건너려면 지금이라도 가야 되는데....' 루비콘 강을 건널까 말까 고민하던 카이사르의 심정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끈이 묶인 신발로 엉거주춤 뛰어서 건너가기가 여간 내키지가 않는다. 결국 횡단보도 앞 건물 귀퉁이에서 무릎을 굽히고 풀린 신발 끈을 묶는다. 그래. 난 카이사르가 아니니까. 잠시 후 내 정수리 위로 횡단보도를 건너온 사람들, 건너가려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드리우다 스쳐간다.
이미 횡단보도는 물 건너 갔고 끈을 묶으면서 생각한다. '이해할 수가 없네. 분명히 꽉 묶었는데. 아니 풀릴 수도 있지. 그럴 수 있어. 근데 왜 하필 횡단보도 건너기 전 이 타이밍일까?' 논리적인 설명과 추론이 불가능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예고 없이 찾아온 신발 끈의 풀림. 건너편을 향해서 치고 나가야 할 순간에 풀려버린 신발 끈이 야속하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어찌하리. 신호등 불은 빨갛다. 끈을 확실하게 묶고 난 뒤 일어나 멈춘 발걸음 대신 생각을 한 걸음 내디뎌본다. '풀림'에서 '묶음'으로.
신발 끈이 알아서 풀렸다고 알아서 묶이진 않으니까. 신발 끈의 풀림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지만 신발 끈을 묶는 순간은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고. 묶지 않은 신발 끈을 외면하고 발걸음을 옮기면 얼마 가지 못해 멈추고 만다고. 그렇게 걷다가 자유의지로 멈추면 다행이지만 불행히 넘어져서 멈춤을 당하기도 한다고. 자의로든 타의로든 멈추고 난 다음 신발 끈으로 시선을 옮겨보라. 풀림의 대가를 온몸으로 받아 낸 너덜 해진 신발 끈이 보일 것이다. 그 모습은 풀려버린 대가를 치른 게 아니라 묶지 않은 대가를 치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신발 끈이 풀리는 순간. 묶음의 순간을 가지지 않는다면 더 큰 값을 치러야 한다. 어디 신발 끈만 이럴까. 신발 끈이 풀리는 순간처럼 예기치 못하게 우릴 멈추게 하는 순간들. 왜 하필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때. 제대로 묶어내지 않고 '일단 저기까지만 가자'하다가 나중에 더 고생하거나 더 크게 다친다. 그러니 신발 끈이 풀리는 순간 각자의 방식으로 신발 끈을 단단히 묶어버리자. 풀린 신발 끈은 언젠간 묶어야 하니까. 풀리는 건 지 맘대로지만 묶는 건 내 맘대로니까. 메모장에 생각을 몇 줄 적었더니 어느새 신호등이 바뀐다. 발목을 단단히 감싸는 꽉 묶인 신발 끈 덕분에 그렇게 무사히 귀가했다.
P.S 그날 내 걸음을 멈추게 한 신발은 뉴발란스574다. 그레이 컬러가 아주 이쁜 녀석이다. 끈은 당분간 풀리지 않을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