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을 넘어선 천명 : 나대용의 눈물
<한산: 용의 출현> 나대용과 이순신.
김한민 감독의 <한산 : 용의 출현>이 개봉했다. 전작 명량에 이은 두 번째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로 1편과는 또 다르면서 훌륭한 영화가 탄생했다. 전작의 비판 요소였던 소위 '국뽕'과 '신파' 없이 담백하게 전쟁과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장수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글을 쓰는 220730 기준 박스오피스 1위. 누적 관객 수는 63만 명을 기록 중이다. 전작의 흥행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전작과는 다른 결로 많은 이들이 찾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한다.
오늘 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감상평과 비평 사이 어중간한 글을 쓰려고 브런치에 1년 만에 온 건 아니다. 그저 단 한 장면. 내게 가장 깊이 각인된 한 장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 가슴에 새겨져 코끝을 시큰하게 한 장면. 바로 이순신과 거북선 제작 책임자 나대용의 대화 장면이다.
실제 한산도 대첩에서 전술적으론 학익진, 전략 병기로서 거북선이 전투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 일본군은 이 전술과 병기를 파훼해야 했고 조선군은 이 전술과 병기를 십분 활용하여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야 했다. <한산: 용의 출현>에서도 마찬가지로 학익진과 거북선이 서사 진행의 중요한 키로 작용한다. 서로 세작을 보내 진영을 감시하고 정보를 빼내는 과정에서 조선군의 학익진과 거북선 설계도가 유출되고 거북선의 일부가 불타기도 하는 위기 상황이 발생한다.
이 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비밀 조선소에서 거북선의 개량 작업 및 추가 건조를 진행하는 거북선 개발 책임자 나대용을 찾아간다. 나대용은 과거 전투에서 있었던 거북선의 결함을 보완했고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한산도 전투에 투입이 가능하단 말을 상관 이순신에게 전한다. 하지만 이순신은 촉박한 기한과 개량 거북선의 성능 테스트도 없이 바로 전투에 투입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고 판단, "이번 전투에선 거북선을 출정시키지 않을 걸세."라는 단호한 대답을 끝으로 자리를 뜬다.
그렇게 시작된 전투. 와키자카의 일본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순신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고 조선 수군이 학익진을 구사하기 전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진격하여 조선 수군을 압박한다.
"학이 날개도 못 펴고, 잡아먹히는구나"_ 와키자카.
그때 구세주로 등장하는 거북선. 그러나 사전에 빼낸 거북선 설계도로 약점을 파악한 와키자카와 그 수하들. 거북선의 느린 기동과 충파에서의 약점, 측면부 취약성을 파악해 측면부 포격으로 타격을 입힌다. 그렇게 자신들의 파훼법으로 거북선을 잡았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나대용이 개량 거북선을 타고 일본군 진영 한가운데를 휘저으며 결국 학익진을 구사할 수 있는 시간과 틈을 확보한다.
그리고 보이는 장면. 거북선을 출정시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상관 이순신에게 달려가는 나대용. 그는 외친다. "장군! 진정 구선 없이 출정하여 살아 돌아올 수 있으십니까!" 그리고 그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구선이 꼭 필요하지 않느냐고. 그리고 그것을 꼭 만들어 내 보이겠다고. 그런 나대용은 이순신은 말없이 바라본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인간의 업. 그 업을 대하는 진정성을 생각했다.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키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그 부담감을 짊어지고 업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그걸 배제하겠다는 상관의 결정. 상관도 보통 상관이 아닌 이순신이다. 그러나 그는 그 상사의 결정 앞에 수용 혹은 반항이 아닌 꼭 필요한 것 아니냐고 되묻고 꼭 만들어 내겠다고 간청과 선언 사이의 대답을 건넨다. 간청과 선언 사이. 그러나 그 사이에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과 자신의 업에 대한 소명의식이다.
이 말을 하며 흘리는 눈물은 도대체 어떤 심정에서 흘러왔을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겠다는 공명심도 아니고 꼭 하고 말겠다는 자존심도 아니다. 마치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듯. 사명을 넘어선 천명을 다해 보이겠다며 다짐하는 어떤 종교인의 모습과도 같았다. 신실한 종교인의 눈물. 어떤 의미에서 이 장면은 신성했다. 그렇게 나대용은 자신의 업을 넘어선 천명을 성실히 이행하여 전투 승리에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
난 나의 업을 이러한 마음가짐과 태도로 수행할 수 있을까. 상관의 결정에 울어 보이면서까지 자신의 업에 확신과 책임을 가지고 그걸 증명할 능력까지 가지면서 말이다. 이 영화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남겼다. 자기 일을 성실을 넘어 천명을 다하듯 수행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 자체로 어떤 미사여구 없이 전해지는 감동 아닐까. 이 영화에 신파는 없다. 그러나 난 이 영화로부터 재미를 넘어선 감동을 받았다.
나대용 역의 박지환 배우님. <범죄도시 1,2>의 장이수, <우리들의 블루스> 인권과는 또 다른 연기를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