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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고 Oct 30. 2022

마음의 고도를 높이면

UK_LONDON. 런던아이로 내려다본 마음.

공원에서 본 런던아이


낯선 말이 사방에서 들린다. 분명 십수 년을 배운 영어인데, 이렇게 생경할 수 있나. 분명 대충이나마 알아듣기도 하고 말도 하는데, 어쩐지 전혀 모를 외계에 떨어진 기분이다. 여기는 런던, 어제 나는 런던에 도착했다. 긴 비행과 경유의 고단함을 뚫고, 난생처음 새로운 국가에 발을 내디뎠다. 막상 도착하고 보니 출발 전 걱정했던 두려움은 사라졌다. 다만 온전한 이방인이 된 것이 조금 낯설 뿐. 아침 일찍 일어나 버킹엄 궁전으로 향한다. 늦지 않아야 근위대의 행진을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더 기대되는 것은 템즈강에서 런던 아이를 타는 것. 조금 높은 곳에 올라 템즈강과 런던의 전경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튜브를 타고 향한 버킹엄의 인파 속에서 무사히 근위대의 행진을 본 후, 런던아이를 타기 위해 하이드파크를 걸었다. 영국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말한다더니 정말 그럴만하다. 청량한 풀냄새와 비릿한 호수의 물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관광객인지 모를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뛰어다니는 온갖 동물의 사진을 찍는다. 신기하게도 다람쥐, 오리, 백조까지 정말 다양한 동물들이 사람과 어우러져 있다. 처음 보는 모습에 마음을 뺏겨, 런던아이로 걸어가는 공원 길이 조금 더 이어졌으면 하고 바랐다. 



그렇게 영화에서나 보았던 공원과 클래식한 고딕 풍의 건물들을 지나 저 멀리 보이는 런던아이. 생각보다 더 카페라테 색깔이었던 템즈강을 건너 런던아이에 탑승한다. 나 말고도 수많은 국가에서 런던아이를 탑승하려 온 관광객이 각국의 언어로 신나게 이야기한다. 혼자 이걸 타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모양. 조금 외롭기는 하지만 내가 정말 이곳에 있다니, 이제야 런던임을 실감한다. 천천히 둥근 궤도를 그리며 하늘로 오르는 런던아이. 나는 사방이 투명한 관람차 속에서 위치를 바꿔가며 런던의 전경과 템즈강을 구경한다. 운이 좋게 빅벤도 몇 년간의 긴 수리를 마치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런던아이의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자, 마음에서도 예상 못한 감정이 함께 울컥 고도를 높인다. 대체 여행 이게 뭐라고 여태껏 내겐 없을 일이라 체념하며 살았을까. 분명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까지 단념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어쩌면 떠나지 못했던 막연한 두려움 하나를 덜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숙제 같은 여행의 결실을 얻은 기분이다. 마냥 나쁘지는 않은 묘한 슬픔이 관람차의 유리벽을 뚫고 들어온다. 


자, 이 순간을 오래오래 남겨야지. 화창하게 눈 아래 펼쳐진 런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전화기를 열어 SNS에도 당장 뭐라 써야 할지 모르는 마음은 감추고, 즐거움을 기록한다. 앞으로 3주간 어떤 여행을 할까?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런던아이가 높아질수록 더 넓게 보이는 런던 시내의 모습에, 억지로 막아두었던 내 마음의 틈도 더 넓게 열리고 있었다. 




런던아이에서 본 템즈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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