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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고 Oct 13. 2022

빛나는 바람의 절벽

UK_Seven sisters


“내일은 버스 시간표가 달라지는데, 지금 결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래야 티켓도 발권할 수 있어요.”

브라이튼 역 여행자 센터의 상담원 아저씨가 친절히 말을 이어간다. 어설픈 영어를 하는 내게 행여 악센트가 강한 자신의 말이 낯설까 더 나긋하게 설명하는 마음이 고맙다. 브라이튼에 도착한 지 이제 겨우 십분. 숙소가 역과는 꽤 떨어져 있으니 오늘은 짐을 풀고 근처를 돌아본 후, 추천받은 세븐시스터즈는 다음날 구경할까 했지만 목적지에 가까이 도달하는 버스는 주말인 오늘만 운영한다고. 이미 온라인 리뷰와 가이드를 통해 찾아본 내용이었으나, 현지 전문가의 말을 직접 들으니 마음이 굳는다. 그 상냥한 설명에 더 머뭇대지 않고 오늘자 버스 정액권을 끊는다.


역에서 버스로 십분 남짓 거리에 위치한 숙소에 짐을 푼 뒤, 세븐시스터즈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 길을 나선다. 버스에 탑승하면 운전 방향을 보았을 때 오른쪽 섹션에 앉아야, 창 밖으로 브라이튼의 바다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미 많은 중국인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한 후. 뭐 왼쪽 좌석에서 보이는 도시의 모습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해안 도시의 거리를 달린다.




영화 같은 풍경을 지나 도달한 이곳. 세븐시스터즈엔 더 경이로운 대자연이 펼쳐진다. 마치 녹차 티라미수를 한 스쿱 떠낸 듯 부드러운 크림색의 절벽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위로 연두색의 풀과 노을 같은 보랏빛의 꽃이 가득이다. 아찔하게 높은 하얀 절벽 아래로는, 균일한 모양의 붓으로 칠한 듯 정연한 바다의 물결이 일었다. 브라이튼처럼 이곳의 바다도 모래 대신 자갈이 깔려 있었는데, 물을 머금어 반짝대는 흑백 자갈의 빛은 마치 바람을 타고 공기로 흩날리는 것 같았다. 절경을 눈에 담으니 아침 일찍 런던에서 브라이튼으로, 브라이튼에서 또 이곳으로, 무거운 여행 가방을 들고 이동하느라 쌓인 피로가 말끔히 녹아 사라진다. 초입에 위치한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하나 사들고 절벽 위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걷는다. 이 느긋한 자연 위에서 사람들은 여유로우면서도 또 분주히 걷는다. 일곱 개의 능선을 모두 보려는 마음인지, 단단히 무장한 옷차림도 꽤 여럿이다. 저 멀리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하는 마음에 나도 욕심이 나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마지막 버스가 얼마 남지 않았음에 아쉬움만 커진다.


능선 위의 바람은 거세다. 아우터 없이 셔츠 하나만 입어 순간순간 추위에 몸이 떨리지만, 손에 쥔 커피가 작은 위안이 된다. 서울은 이미 잠이 들어 내일이 되었을 텐데, 어떤 하루였을까 궁금증과 안부를 바람에 실어 보낸다. 여행 초보 티를 내듯 이 향긋한 바람과 반짝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마음에 담아둘 수밖에. 아마 난 이 바람과 햇빛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지. 반가움, 놀라움, 아쉬움과 같은 일차원적 단어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내 어휘력이 서글프도록, 묘한 감정들이 단숨에 몰려와 마음 한 구석에서 착종된다. 이제 다시 돌아갈 시간. 저 멀리 외로이 선 등대를 카메라에 담고 되돌아선다. 등 뒤로 불던 세찬 바람이 이제 얼굴로 불어온다. 짙은 아쉬움 같은 바람에, 앞으로 나서는 몸이 흔들린다. 나는 그 거센 바람에 파묻히듯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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