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동 협곡 가는 길, 호주에 사는 민정씨의 인생을 배우다
니스에서의 셋째날이다. 오늘은 잠시 니스를 떠나있을 것이다. 차를 렌트한 한 여행 무리에 껴서 니스 근교에 있는 아름다운 장소를 방문하기로 했다. 바로 ‘베르동 협곡’이다. 니스는 근교 여행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니스 근교의 도시로 여행을 간다. 생폴드방스, 애즈, 망통, 모나코 등이 있다. 하지만 나는 도시보다는 프랑스만의 자연을 한번 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베르동 협곡의 사진을 보게 되었고 마침 차를 렌트해서 여행을 다니는 동행들과 하루정도 함께 베르동 협곡을 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하고 아직 어두운 아침에 트램을 타고 그들이 머물고 있는 니스 공항 근처 쪽으로 이동했다. 다행인건 그 무리 중에 파리에서 첫날 함께 와인을 마셨던 준형씨가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동행들을 만나러 갔다. 렌트카가 주차된 곳에서 준형씨를 만났다. 준형씨는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한편으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냐 묻자 조용히 렌트카가 주차된 공간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프랑스의 주차실력에 경악을 하고 말았다. 우리 차 뒤에 댄 차가 정말 종이 한장 들어갈 정도의 공간을 두고 바짝 주차를 해둔 것이다. 차가 옆으로 들어간 것이 아닌 이상 이렇게 주차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은 정도 였다. 다른 일행들이 오기전에 차를 먼저 빼놓기로 했다. 그때부터 준형씨와 나의 신들린 컨트롤이 시작되었다. 준형씨가 차를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면 내가 앞뒤로 왔다갔다하며 정지를 외쳐줬고 10분정도의 미세한 사투 끝에 차를 밖을 빼놓을 수 있었다. 준형씨와 나는 거대한 프로젝트라도 성공시킨 듯 안도로 가득한 손뼉을 마주쳤다.
차를 빼놓으니 이내 일행들이 속속 도착했다. 은결, 민정, 슬기님 총 세분의 여자분이 오셨고 총 5명의 일행이 차를 타고 베르동 협곡으로 출발했다. 차를 타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멘탈이 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날씨 때문이다. 안그래도 전날부터 비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불안하긴 하였으나 실제로 쏟아지는 비를 마주하니 모두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하니 쏟아지는 비 때문에 운전하는 시야확보도 잘 되지 않았다. 모두 불안감에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근데 모두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을까 1시간 정도 달리고 나니 저기 멀리서 파란 하늘이 조금 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속도로를 벗어나서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하니 햇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다들 얼굴에 웃음기를 찾아 안도의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안도의 한숨도 잠시 이내 만난 가드레일도 없는 꼬불꼬불한 산길에 다시 한번 긴장하기 시작했다. 베르동 협곡을 가기 위한 험한 산길의 운전이 쉽지 않았다. 운전을 하는 준형씨는 왜 베르동 협곡 투어에 30만원씩 받는 지 알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준형씨의 능숙한 운전 실력 덕분에 산길을 안전하게 통과 할 수 있었고 우리는 이내 베르동 협곡에 도착했다.
베르동 협곡은 프랑스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리우는 곳이다. 따라서 웅장한 협곡과 그 협곡에서 흘러 나오는 에메랄드 빛 물길이 광활한 호수로 이어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에메랄드 빛의 호수를 그저 바라보는 것 뿐만 아니라 직접 보트나 카누를 탈 수 있다. 심지어 수영을 즐길 수도 있다. 먼저 차를 대놓고 협곡을 볼 수 있는 다리위에 올랐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베르동 협곡을 오기전에 사진으로 수십번도 봤을 광경이지만 역시 이런 자연 경관은 실제 내 눈으로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다. 협곡 양쪽 절벽이 주는 웅장함과 그 사이에 흘러 나오는 파란 강줄기의 신비함이 있다. 마치 반지의 제왕 주인공 프로도가 마지막으로 떠난 영원의 세계의 입구가 우리 세계에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하는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멋진 자연경관을 보러 가더라도 이정도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베르동 협곡은 프랑스이기에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경관을 보고나니 한시라도 바삐 저 물 위에 떠있고 싶어졌다.
우리 모두 수영을 하기 위해서 수영복을 챙겨왔다. 하지만 비는 오지 않지만 날씨가 조금은 쌀쌀했고 수영까지는 못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여자분 세분은 모터가 있는 보터를 타기로 했고 나와 준형씨는 카누를 타기로 했다. 근데 갑자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리위에서 배를 탈 수 있는 곳까지 이동을 하던 와중 은결님과 준형님간의 다툼이 생겼다. 어제 저녁 이른 출발을 위해 은결님과 준형님이 숙소를 쉐어했다고 한다. 근데 그 숙소 주인이 갑자기 거실에 있는 전등이 고장났다며 어떻게 된거냐고 은결님께 연락을 했다. 그리고 은결님은 거실에 있던 하트 전등을 준형님이 건드리지 않았냐며 물었고 준형씨는 조금 기분이 나쁜듯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은결님은 한사코 쏘아 붙이는 집주인 때문에 예민해져 있었고, 준형님은 탓을 자기로 돌리는 듯한 말에 기분이 상한듯했다. 그렇게 갑자기 둘의 사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그 사이 우리 셋은 가만히 눈만 동그랗게 뜨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여행은 언제나 변수로 가득하다. 자기 한테 맞지 않는 동행을 만나 한끗차이로 틀어지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일단 여자분 두분이 은결님을 데리고 보트를 타러가고 나는 준형님을 데리고 카누를 타러 갔다. 나중에 카누를 타며 들으니 단지 이 일 때문이 아니라 오늘 이전 2일간 같이 동행을 하며 쌓인게 꽤 많았던 모양이다. 어찌 됐건 둘의 갈등은 나중에 오늘 일정이 끝나고 따로 풀겠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괜찮다고 일단 이 풍경을 즐기자고 말했다.
역시 물에 떠서 직접 보는 베르동 협곡의 모습은 더욱 멋졌다. 물에 손을 넣어보면 손이 물 속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맑은 물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노를 저어 협곡 안쪽으로 갔다. 협곡 안쪽으로 가는 물길은 물 흐름의 반대 방향이기 때문에 팔이 아프도록 노를 저어야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물에 보트를 맡기고는 풍경을 보고 물의 부력과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떠내려왔다. 협곡 반대방향으로 배를 돌리니 광활한 호수가 나의 눈을 가득 메웠다. 넓은 호수와 텅빈 하늘이 보여주는 풍경이 나의 마음을 가득채웠다.
시간이 어떻게 간줄 모르게 배위에서 두시간을 보냈다. 배에 내려 돌아보니 여자분들은 어느새 내려서 사진을 찍고 계셨다. 다행히 집주인의 독촉도 잠시 멈춘듯하고 두 사람의 냉전도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듯 보였다. 우리는 아름다운 베르동 협곡을 뒤로하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다음 행선지는 무스티에 생트마리이라는 산골 마을이다. 베르동 협곡에서는 차로 10분 거리로 보통 베르동 협곡을 방문할 때 같이 방문한다고 한다. 여행 계획을 세워주신 동행분들 덕분에 정보를 많이 알아보지 않고 왔는데도 알찬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무계획 여행자의 여백에 이런 행운이 따름에 감사하다. 이 마을의 꼭대기에는 두 봉우리가 있는데 그 봉우리 사이에 줄하나가 이어져 있고 그 중간에 별 모양의 장식품이 달려있다. 그리고 이것이 유명한 이유는 그 아무도 그 별을 누가 단지 모른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좋은 마케팅이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감성을 깨뜨릴까 입밖으로 생각을 꺼내진 않았다.
우리는 먼저 식당으로 향해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줄곧 차에서만 있어서 대화를 못했는데 이제서야 서로 대화를 하게되었다. 서울에서 간호일을 하고 있는 은결누나, 그리고 영국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고 있는 슬기 그리고 현재는 호주에 살고 있는 민정씨, 그리고 항공사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준형씨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민정씨가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일반적인 사람과는 굉장히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사람 자체의 에너지가 밝았고 뭐든 긍정적이라는 느낌을 줬다. 하지만 역시 이런 사람일수록 사연이 많고 실패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민정씨는 서울에서 두번의 사업실패를 겪었다고 한다. 어떤 사업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았지만 모은돈으로 열정적으로 시작한 사업에 실패했고 다시 한번 해보기 위해 도전한 사업도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접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는 정말 안좋게 생을 끝내야 하나라고 생각하며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선량한 목소리로 웃으며 이야기를 하니 그 시절 진짜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인걸 믿을 수 가 없었다. 그 이후 모든 것을 접고 호주로 떠났다고 한다. 호주로 떠나 뭔가를 이루어야 겠다는 생각없이 주어진 대로 되는대로 편하게 살자라고 생각하며 다시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근데 그렇게 강박에서 벗어나니 신기하게도 모든 일이 잘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연히 좋은 친구를 알게 되어 직업을 얻게 되었고 친구를 통해 또 요가라는 운동을 시작하게 되어 지금은 몇년째 요가를 함께 배우며 요가 강사의 길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뭔가를 해내야겠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니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게 된다. 이 이야기를 듣자니 내가 정말 오만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라는 것을 나의 경험속, 나의 관념속에서 정의 내리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진짜 가질 수 있었던 다양한 기회들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한 나의 길에 저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말 중요한 발상의 전환이다.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나의 결정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인정하는 순간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이 곧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민정씨는 사업의 실패를 통해 삶을 극단적으로 변화 시켰고 그 변화를 통해 삶이 나아지는 경험을 한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배움이 있다.
혼자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을 하고 있는 사이 우리가 주문한 버거가 나왔다. 프랑스의 음식은 언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햄버거와 바삭한 감자튀김을 흡입하듯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본격적인 마을 구경에 나섰다. 산골 마을인 무스티에 생트마리는 비교적 한적했다. 차가 없으면 쉽게 올 수 없는 곳이라 모나코나 생폴드방스에 비해서 여행자들이 쉽게 올 수 있는 곳은 아닌듯 했다. 그래도 유럽내에서 단체 관광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듯해서 관광버스를 타고온 노년의 유럽 관광객들은 많이 볼 수 있었다. 산골 마을이라 우리는 언덕을 꽤나 올라가서야 마을의 중심부를 마주 할 수 있었다.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니 저 멀리 달려 있는 별이 조금은 더 가깝게 보였다. 별이 달린 협곡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장 남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을을 한바퀴 돌아봤다. 중간에는 니나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내게 달려와 잠시 놀기도 했다. 가볍게 동네를 돌아보고는 너무 늦지 않게 니스로 돌아가야 했기에 우리는 다시 니스로 돌아가는 차에 올랐다.
다시 니스까지 3시간 다들 피곤했는지 뒷자리는 모두 잠에 빠졌다. 나는 그래도 열심히 졸음을 참아가며 조수석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니스에 돌아오니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근교 여행을 끝내고 니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니스 중앙역에 내렸고 은결님이 렌트카를 가지고 본인의 숙소로 돌아갔다.
니스 근교를 다녀온 동행들은 나와 준형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피곤했는지 저녁도 먹지 않고 다들 들어가 쉬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어제 함께 시간을 보낸 다현이에게 연락을 했고 마침 새로운 동행인 하연씨와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준형씨와 같이 그들이 가기로한 지중해식 식당으로 향하기로 했다.
목요일쯤 되니 니스가 좀 더 관광객들로 붐비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유로움 보다는 북적임에 가까워 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기로한 식당도 이미 자리가 대부분 차있었고 다행히도 4인석 한자리가 남아 바로 앉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기전에 메뉴판을 탐독하며 메뉴를 먼저 고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니스의 오리지널리티를 느낄 수 있는 지중해식 요리 몇가지를 주문했다. 새로 만난 하연이도 다현이와 동갑내기 23살이라고 한다. 곧 다가오는 10월부터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교환학생 학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교환학생이라는 말만들어도 나의 샌프란시스코 시절이 떠올라 행복해지면서 부러워진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사를 나누다 보니 음식이 나왔다. 첫번째 나온 음식은 고기를 올린 야채 음식이었다. 구운 가지, 양파, 파프리카 위에 토마토소스에 조리한 다진 소고기를 올린 음식이다. 오늘 저녁의 베스트를 꼽자면 이 음식이었다. 위에 얹어진 고기의 맛은 예상 가능한 맛이었으나 다채로운 구운야채와 결합된 맛은 꽤나 새로웠다. 한가지 야채를 사용하지 않고 가지, 양파, 파프리카 다양한 야채를 사용해서 서로 다른 야채를 먹을때 다채로운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구운 야채에서 나온 채즙과 고기의 육미가 만나면서 채즙이 곧 육즙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고르곤졸라 뇨끼와 비프 라비올리를 먹었다.
확실히 20대 초반들과의 대화를 해서 그런지 오늘의 대화 주제도 사랑이었다. 마치 교생 선생님에게 첫사랑 이야기 듣기를 바라는 발랄한 여고생들 처럼 사랑이야기에 활기있게 반응했다. 그러다보니 나도 정말 오랜만에 나의 엇갈린 사랑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어제 들었던 다현이의 러브스토리를 이야기 하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다현이의 가슴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하연이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오빠는 이때까지 제일 좋아했던 사람을 꼽자면 누구였어요?”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졌다. 생각보다 오랜시간동안 생각해본적이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만약 한 사람을 꼽자면 나는 20대 중반 3년이라는 기간을 만났던 사람을 꼽을 수 있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30대의 순수했던 사랑에 관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럼 그 사람에게 다시 연락해본적은 없는지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생각에 나랑 그 사람의 이야기는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는 아닌거 같아, 우리는 평점 높고 작품성 있는 멜로 영화였어.”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며 똑바로 말하라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작품성이 있는 영화들은 보통 해피엔딩이 아니더라고, 늘 엇갈리지.”
그들은 또 여고생 같은 리액션으로 대체 어떻게 엇갈렸는지 묻기 시작했다. 나도 잠시 생각에 잠겨 그 시절을 추억했다 무려 6년이 넘은 일이니 말이다. 우리는 3년을 만났고 서로를 많이 좋아했지만 나는 타이밍이 아쉬웠다고 생각한다. 둘도 없는 퍼즐처럼 잘 맞았지만 나는 아직 하고 싶은것이 많았다. 이를테면 외국 생활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걸 다 할 수록 그 친구는 힘들어했다. 하지만 참았다. 결국은 이런 문제가 끝이 보이지 않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 하지 않을거라면 여기서 그만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을 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미국 교환학생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단지 헤어졌다는 이유를 칼 같이 끊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6개월 간의 교환학생 기간이 끝이나고 나는 그 친구에게 한번 만날 수 있을지 연락했다. 우리는 잠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 했지만 이미 남자친구가 생겨버린 상대는 금새 돌아가봐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더 지나고 나는 한번더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중국으로 떠난지 한달째 아주 늦은 밤 그녀에게 장문의 카톡이 왔다. 보고싶다라는 네 글자를 장황히 늘여 놓은 글이었다. 한달 뒤에는 내가 먼저 그녀에게 보냈다. 보고싶다라는 네 글자를 다시 한번 주절주절 늘여서 말이다.
이렇게 몇번의 메세지를 주고 받고 나니 내가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이제는 꼭 그녀를 봐야겠다는 생각이들어 한번 보자는 연락을 했고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약속 당일까지 그녀는 연락이 없었고 결국 연락이 되지 않았다. 무슨 마음이었을지 알것도 같지만 알고싶지 않았다. 그렇게 또 몇달이 지나고 이제는 내가 여자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나니 정말 약속이라도 한듯 그녀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미안하다고, 다시 약속을 잡을 수 있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만나는 사람이 있었고 모두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절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헤어지고 연락했을 땐 이미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겼고 거기까지 나는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연락을 끊었다.
내가 이야기를 정말 맛있게 풀었는지 하연이와 다현이는 둘다 슬픈 결말의 영화라도 본듯, 내가 그 영화의 각본을 바꿀 수 있는 작가라도 되는양 소리쳤다.
“오빠 지금이라도 연락해요! 이렇게 끝내면 안되는 거잖아!”
내가 6년전 과거의 일을 너무 생생하게 풀어놓은 탓이다. 이미 지난 옛날의 일이라며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냉정과 열정사이 처럼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내겐 이미 지난 과거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처음 보는 여행 친구들에게 나의 옛 슬픈 사랑이야기를 풀어놓고 나니 그때 절절했던 나와 우리가 떠올라 조금은 애틋해지긴 했다. 오늘 저녁이 유독 애틋했는지 어느새 와인을 두병이나 비웠다. 하연이와 준형이가 있으니 평소보다 술을 더 마시게 된다. 3시간 동안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어느새 니스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