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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밤 Oct 16. 2023

밀라노1, 부서지는 파도를 견디면

니스의 바다 수영에서 인생을 배우고 밀라노로 떠나다

오늘은 니스를 떠나는 날이다. 이제껏 날씨가 한껏 좋지 않다가 내가 떠나는 오늘부터 날이 좋아진단다. 불평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오늘 밀라노로 떠나는 오후 2시까지는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오전 나절 아침 바다 수영을 하고 가보려고한다. 오늘 니스를 떠나는 다현이도 아침 수영을 같이하겠다고 해서 이른 아침 8시 약속 장소를 정하고 바다로 향했다. 별로 챙긴것은 없다. 수영복을 입고 티를 걸치고 수건 한장만 들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 아직 기온은 조금 서늘했지만 햇빛은 강하게 내리 쬐기 시작했다. 니스를 떠나는 날에서야 만나게 된 맑은 날씨가 야속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날 웃는 얼굴을 보여준 니스가 고마웠다. 바닷가로 향하는 길 슈퍼에 들러 오렌지 주스와 피자빵을 샀다. 이른 아침이지만 몇몇 사람들이 이미 수영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바닷가가 보이자마자 빠르게 해변으로 돌진했다.


하지만 막상 해변앞에 도착하니 대체 사람들이 어떻게 수영을 하고 있는거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파도 때문이었다. 바다는 입장을 거부한다는 듯 굉장히 거센파도를 내보내고 있었다. 수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거센 파도가 부서지는 곳 너머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문득 앞쪽의 부서지는 파도만 몇번 견뎌내고 그 뒤쪽으로 들어간다면 수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피자빵을 씹어 넘기며 어떻게 바닷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피자빵을 다 먹고 그 어떤 생각과 계산도 무의미함을 느꼈다. 일단 저 파도를 몇번 이겨내야만 그 안쪽 고요한 바다로 갈 수 있다. 셔츠를 벗고 일단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생각보다 쉽게 파도를 이겨낼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눈앞에서 높은 파도가 부서지니 지레 겁을 먹고는 등을 돌렸고 중심이 무너진 몸은 이내 자갈밭 해변으로 떠밀려나갔다. 파도가 온다 한들 몸을 웅크리고 중심만 잘 잡는다면 버틸 수 있을것 같은데 막상 겁이나니 쉽지 않다. 두어차례 자갈밭에 밀려나고 잠시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잠시 해변으로 돌아가 앉아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고 있는 와중 다현이가 도착했다. 다현이도 마지막 수영을 하고 싶었지만 몰려오는 파도를 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딱 마지막 한번더 도전해보고 안되면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분명 저 파도만 견뎌내면 괜찮을텐데 말이다. 이번엔 뒤에 친구가 있다는 든든함 때문일까 뭔가 힘이 났다. 파도가 오면 등을 돌리지 않고 다리 힘으로 버티고, 버티고 나면 다음 파도가 오기전까지 빠르게 앞으로 헤엄쳤다. 두번정도의 파도를 견디고 나니 파도가 부서지기전에 파도의 뒤쪽으로 헤엄쳐 나갈 수 있었다. 성공했다. 뒤쪽은 평온했다. 앞쪽에 어떻게 파도가 부서지는지 얼마나 들어오기가 힘들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되려 큰파도가 일렁이니 몸을 맡겨 헤엄치기가 수월했다. 물에 몸을 맡기고 바라본 니스의 풍경은 더욱 아름다웠다. 저 멀리서 나의 성공을 축하해주는 다현이의 엄지척이 보였다. 나도 멀리서 엄지를 들어보였다.


파도와 바다에서도 인생을 배운다. 파도는 부서지기전까지는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올려줄 뿐 우리를 해하지 않는다. 얕은 곳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뒤돌지 않고 견뎌낸 사람에게 바다는 더이상 가혹하지 않다. 내가 어떤 일을 시작할때 마주해왔던 부서지는 파도가 생각난다. 부서지는 파도와 같은 첫시작의 시련이 무서워 등돌린 많은 경험들이 떠오른다. 그때 왜 나는 좀더 똑바로 마주하고 견뎌보지 않았을까, 두어번 아프더라도 등 돌리지 않고 마주했다면 결국 그 파도를 타고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10여분 정도 바다와 함께 일렁이다가 다시금 파도를 타고 수영해서 해변으로 왔다. 그냥 니스에서 아침 수영을 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생각보다 큰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잠시 앉아 아침의 니스 해변을 보다가 떠나기전 마지막 점심을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다현이가 알아본 광장의 카페 겸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느지막히 일어난 준형이도 마지막 인사겸 오겠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바로 기차역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에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정말 완연한 휴양지의 날씨가 느껴졌다. 캐리어를 끌고 있었지만 이 날씨에 비친 니스 바다를 마지막으로 보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햇볕이 쨍쨍한 니스의 바다는 역시나 달랐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니스의 해변을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식당에서 만나기로 한 준형이가 저기 해변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날씨를 보고 해변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건 나뿐만이 아닌가보다. 준형이와 가벼운 아침인사를 하고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도착한 식당에서는 나만 점심을 위해 파스타와 와인을 시켰고 준형이와 다현이는 커피를 시켰다. 오늘 난 밀라노로 가고, 준형이는 내일 앙시, 다현이는 더블린으로 돌아간다. 이야기를 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생각한 여행의 장점은 ‘내일이 기대 된다는 것’이었다. 일상은 행복과는 별개로 내일이 기대되는 삶은 아니다. 어느정도 예상 가능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은 다르다. 내일은 또 어떤 것을 보게되고, 어떤 것을 먹게되고, 누구를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내일이라는 날 자체에 설렘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여행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목요일의 메뉴로 지정된 황새치가 올라간 레몬 버터 파스타를 시켰다. 링귀니면에 잘 붙은 레몬버터소스가 과하지 않을 정도로 풍미 있고 과하지 않을 정도로 상큼했다. 레몬 처럼 상큼한 니스의 마지막 식사로 제격이었다. 기차 시간이 한시간 남짓 남은 시간 우리는 식당에서 일어났다. 니스에서의 동행은 그새 정이 들었는지 꽤나 헤어지기 아쉬웠다. 우리는 다현이의 어학연수가 끝나는대로 서울에서 꼭보기로 약속했다. 이 약속이 지켜질지는 모르지만 다시 보자는 약속말고는 이 아쉬움을 달랠 적당한 인사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트램을 타고 니스 히끼에 역으로 향했다. 이탈리아로 향하는 기차를 타야했기에 나는 중앙역이 아닌 히끼에 역으로 가야했다. 거기서 전철같은 기차를 타고 한시간정도 벤티미글리아라는 이탈리아 끝자락의 도시로 이동해서 거기서 트랜이탈리아 기차를 타야한다. 벤티미글리아로 향하는 기차는 애즈, 모나코, 망통과 같은 남부 프랑스의 명소들을 모두 거쳐갔다. 그때마다 창밖으로 바라 본 풍경을 너무 아름다웠다. 언젠가 남부 프랑스는 다시 한번 꼭 와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를 타고 가다보니 국가가 바뀌었다는 문자가 왔다. 드디어 이탈리아다. 이내 벤티미글리아역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생애 첫방문이 처음 들어보는 작은 소도시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나만의 이탈리아 첫방문을 자축하기 위해서 기차역 카페로 향했다. 이탈리아에서 첫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무뚝뚝한 표정에 진한 눈화장을 한 종업원은 기계적으로 에스프레소 한잔을 내려주었다. 쓰다. 역시 에스프레소는 쓰다. 설탕을 한스푼 정도 넣어 황급히 입속에 털어 넣었다. 쓰고 달달한 이탈리아의 첫인상이다. 다 먹은 에스프레소잔을 돌려주고 물 한병을 사서 갈아탈 기차 플랫폼으로 향했다. 이미 기차는 도착해 있었고 나는 미리 타서 짐도 올려두고 자리를 잡았다. 지금부터 4시간을 달리면 밀라노다. 내 양옆과 앞으로 거구의 이탈리아인들이 탔다. 분명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지만 뭔가 0.5인의 좌석을 뺏긴 느낌이었다. 4시간의 불편한 기차자리에서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글을 쓰고 핸드폰을 좀 하다보니 어느새 밀라노에 도착했다. 기차도 타다보니 면역이 되는 듯하다. 시간이 빨리간다. 그렇게 밀라노 첸트랄레역에 도착했다.



밀라노 첸트랄레역은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밀라노에대한 기대를 전혀 하고 오지 않았던터라 내리자마자 마주하게 된 멋진 역의 모습에 압도되었다. 옛날의 거대한 두오모 성당을 역으로 개조한 것일까 싶을 정도로 내부의 인테리어가 히스토리컬하게 꾸며져 있었다. 감탄도 잠시, 오랜 기차여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역 밖으로 빠져나왔다. 밀라노는 잠시 들르는 느낌으로 온 도시이기에 역 근처에 있는 호텔을 예약해두었다. 호스텔에서의 피로감을 달래기 위해 하루 정도는 혼자쓸 수 있는 호텔을 예약했다. 역에서 10분정도 걸어가니 깔끔한 B&B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딱 여행자를 위한 기본 호텔이어서 번잡함 없이 깔끔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나니 점심에 먹었던 파스타는 이미 다 소화되어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배가 고팠으나 지친 몸을 이끌고 파스타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연속된 양식 식사로 인해서 어느정도 파스타나 피자에 물려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쯤 아시아 음식을 한번 먹어서 다시 파스타를 먹고 싶은 상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생각보다 복잡한 사고회로를 통해서 나는 근처 아시안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 평이 좋고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시안 비스트로로 향했다. 나는 한번쯤 서양 외국에 나가면 아시아 음식을 하는 식당을 간다. 그곳에서 아시아 음식이 얼마나 현지화 되었는지, 서양 사람들은 그 음식을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 보는 것이 재미있다. 오늘 선택한 아시안 비스트로는 기본적으로 중국식 요리를 베이스로 한 음식점이다. 10분 정도를 걸어 식당에 도착한 나는 한사람이 앉을 자리를 요청했다. 자리에 앉자 플레이트와 젓가락이 세팅되어 있었다. 젓가락이 이리 반가울줄이야.



식당 손님들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양인들이었다. 뭔가 바삐 밥을 먹고 나가는 식당 느낌 보다는 다들 음식을 시켜놓고 와인이나 맥주를 곁들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같은 아시안 음식이지만 즐기는 문화는 서양화 되어보였다. 나는 배도 고팠고 아시아 음식의 소울이 그리웠기에 따뜻한 우육탕면과 새우볶음밥을 주문했다. 거기에 칭따오 한병도 잊지 않았다. 가격은 정말 저렴했다. 우육탕면 8유로에 새우 볶음밥이 5유로였다. 한 접시에 15유로씩 받는 파스타를 먹다가 여길오니 가격 부터 따뜻함이 차올랐다.



아마 나는 이곳에서의 맛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우육탕면은 정말 8유로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소고기 국물은 맛이 정말 깊었다. 면은 공장면이 아닌 수타면이 들어가서 쫄깃했다. 한두젓가락에 이미 여행의 여독이 풀어지는 맛이었다. 새우볶음밥은 조금 짭짤한 간으로 잘 볶아졌고 맥주와 곁들어 먹기에 좋았다. 한 젓가락 들기 시작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거의 음식 먹는 것에 몰두해버렸다. 굉장히 많은 양이었지만 나는 주인장이 뿌듯해할정도로 깔끔하게 접시를 비웠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양껏 먹는 것 그리고 맥주 한잔을 곁들이는 것 이건 정말 단순한 행복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생각보다 이 단순한 행복을 그리 자주 누리지 못했다. 야근을 하며 먹는 밥은 늘 한쪽에 컴퓨터를 켜놓고 온전히 음식에 집중할 수 없었고, 어쩌다 약속을 나가는 날이면 내가 먹고 싶은 음식보다는 남이 먹고 싶은 음식에 맞추게 되고, 어쩔땐 돈이 아쉬워 조금 저렴한 음식을 찾게 되고, 맥주 한잔 먹는 것에 살이 찌면 어쩌나 고민하고, 생각보다 많은 강박이 나를 이런 단순한 행복으로 끌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걸 이렇게 한번씩 벗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맥주값까지 18유로를 결제하고 배를 연신 두드리며 가게를 빠져나왔다. 영혼이 채워진 느낌이다.


부른 배를 잡고, 살짝 오른 취기와 함께 밀라노의 밤거리를 따라 걸었다. 오늘은 배부르게 먹고 푹쉬고 다시 내일부터 본격적인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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