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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허실 Sep 03. 2020

귀여운 아이는 없다

'청년'이라는 언어에 대하여

아이는 귀엽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아이가 귀엽다는 개념을 모를 때까지만 귀엽다. 아이가 무럭무럭 성장해서 스스로 '귀엽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알게 되는 순간 우리가 알던 귀여운 아이는 사라진다. 사실 귀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몸처럼 존재하던 세계와 내가 분리되고 우주 속의 먼지처럼 초라해 보이는 자기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더 이상 귀여움으로 자기를 증명할 수 없다.


본인의 귀여움을 잃은 사람들은 또 다른 귀여운 존재를 찾는다. 귀엽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은 화자가 생각하기에 여리고 약하다고 여기는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귀여운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잃어버린 본인의 귀여움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다. 또는 귀여운 존재를 외부에 설정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기 자신을 느끼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보기에 '귀엽다'라는 용어는 정말 어린 아기들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면 한쪽이 다른 한쪽을 낮게 보거나 낮게 보고 싶을 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말의 기원이 어찌 됐든 현시대에서 '귀엽다'라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충분히 계급적이다. 그래서 난 귀엽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귀여운 아이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이를 귀엽다고 여기는 순간 아이와 난 일대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핫한 용어로 뜨는 말 중에 '청년'이라는 말이 있다. 시민 사회 영역에서부터 정부와 지자체까지 청년들을 위한 정책과 문화 공간을 만들려고 아우성이다. 지역 사회에 '청년'이 등장하면 청년이 있어 든든하다고 하고 정당들은 청년 의원을 만들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청년을 위한 정책과 공간은 점점 많아지고 있는 만큼 사회에서 청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청년을 위한 임대 주택이 들어온다고 하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동네가 난리가 나고 청년들은 스스로를 '충'에 빗대어 자학한다. 청년을 지원한다는 단체에 가보거나 청년 지원 정책을 살펴보면 정작 청년은 주인이 아니다.


지금 이 세대의 청년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많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가장 많은 사회적 멸시와 무시를 받는 존재인 것 같다. XYZ세대라는 세련된 용어로 불리던 청년들이 삼포족, N포족이라는 '종족'으로 불리기 시작했던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88만 원 세대'라는 용어가 시작인 것 같다. 청년을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한 순간에 사회적으로 불쌍한 존재로 각인시킨 이 용어를 시작으로 청년 세대는 단 한 번도 희망이 담긴 언어로 묘사된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의 '청년'이라는 용어는 힙한데 짠하고 핫한데 빈곤하다.


제일 큰 문제는 '청년'이라는 용어를 남용하면서 자기 이익을 취하는 기성 어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과 어느새 그런 어른들의 잘못된 문화에 젖어들어서 젊 특유의 야생성이 사라지는 청년들 비슷하게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청년'이라는 언어를 들을 때마다 '귀엽다'는 언어가 함께 떠오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청년'이라는 말은 청년을 자기 입맛대로 길들이기 위한 기성세대의 못된 전략적 언어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청년'이라고 우쭈쭈 귀여워해 주고 뒤에서는 청년을 마리오네트처럼 부려먹으려는 사람들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가. 청년들은 미라처럼 본인의 기운을 쪽쪽 빨리면서도 정작 그런 상태를 느끼지 못한다.  


청년이라는 언어가 사회적 트렌드가 되고 각종 청년 정책이 생겨 나면서 나 스스로에게 되새김질하는 말이 있다. '나는 청년이 아니다' 일정한 형태의 청년의 모습의 형태를 만들어놓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20-30대 청년들을 그 틀에 욱여넣는 식의 지금의 문화는 어딘가 잘못됐다.


청년을 젊음 특유의 열정과 에너지를 가진 사회의 성인으로 인정하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청년'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것이 아닐까.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이 순간에도 청년 정책과 관련된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서 기획서를 쓰고 있다. 역시 우리의 삶은 부조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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