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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허실 Aug 12. 2020

안돼라고 말하지 마

무기력은 학습된다

이승철의 앨범 1집에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라는 노래가 있다. 1988년도에 발매가 되었으니 어느새 30년도 넘은 노래지만 가끔씩 열린음악회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오래된 명곡으로 소환되곤 한다.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나는 너를 보고 있잖아
우린 아직 이별이 뭔지 몰라


사람마다 해석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이 노래가 헤어지기 직전, 이별을 처음 마주한 어린 연인들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담은 곡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듯이 누구에게나 첫 이별이 있다. 첫 이별은 아프지만 애틋하고 슬픈 만큼 긴 여운을 남긴다.

  

그래도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경험한 사람과 아예 사랑이라는 것을 경혐해보지도 못한 사람은 삶을 해석하는 폭이 다르다. 매우 충만한 감정과 함께 자기의 밑바닥도 함께 바라보게 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눈에 콩깍지가 생기지만 콩깍지가 사라지고 나면 리얼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평생 사랑할 것만 같았던 아름다운 연인이 미워보이고 누구에게나 멋지고 섹시할 것만 같은 나는 찌질해 보인다. 다른 연인은 행복해 보이는데 유독 우리들만 싸우는 것 같고 제일 불행한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런 위기를 지나치고 다시 보게 되는 상대방은 왠지 반갑다. 사실 상대방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삶을 보는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안돼라고 말하지 마


사랑과 이별을 생각하며 뜬금없이 요즘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가 떠올랐다. (어쩌면 언어유희를 즐기고 싶은 나의 소박한 욕망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랑은 매우 힘든 상호작용이지만 잘 극복하면 더 큰 성장을 이루듯 아이들도 눈에 뻔한 위험이 보이지만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 자체로 큰 성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하고 싶은 것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아이들의 눈에 재미있어 보이는 것이 있어서 하려고 하면 어른들은 '안돼'라고 말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어른들은 반대로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무기력하 자기 때와 같지 않다 한탄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난 누가 지정해 준 사람과 모든 조건을 딱 맞춰서 만나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상대방의 모든 조건을 따지고 잘 될지 안 될지 미리 예측하고 만나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누가 보기에는 불안정해 보이고 말도 안 되어 보여도 내가 선택한 사람과 티격태격 싸우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이 내가 아는 사랑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은 세계와 사랑을 할 시간과 기회가 없다. 어른들이 안돼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것이다. 반대로 아이들이 흥미 있어하는 것들은 대부분 어른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어른들의 이런 인식은 모두 착각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이미 모험을 시작한다. 그리고 위험에 근접한 위기를 경험하고 어려움을 극복할수록 내면이 단단해지고 성장한다. 안전에 둘러싸인 삶이란 없으며 실제로 그런 삶이 있다면 실험실 안에 있는 동물처럼 비참한 삶일 것이다.


아이들이 세계와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새로운 세계와 만나며 스펙터클한 모험을 떠나야 한다. 어른들은 그럴 때마다 가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다녀올 수 있는지, 위험한 순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자신의 노하우를 강요하지 말고 공유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도 안된다고 하고 무기력도 안된다고 하는 게 요즘 사회 분위기다. 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다. 자기들이 아는 것만큼 아이들이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 분위기가 정착한다면 우리 삶에 행복한 미래는 없다.


어른이나 아이나 '안돼'라는 말만 듣고 자란 사람들이 '돼'라는 말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것에 안돼라고 말하면서 무기력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구하는 것은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가.


사랑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크게 옆길로 샌 것 같지만 어쨌든, 사랑이든 일이든 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자. 뭔가 크게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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