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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허실 Sep 30. 2022

경제적 자유보다 삶의 자유

나답게 사는 것

경제적 자유를 통해 40대 은퇴를 꿈꾸며 파이어족이 되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파이어족은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첫 글자를 딴 말로 경제적 자립, 조기 퇴직을 뜻하는데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한 이 흐름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국내에도 몇 년 전부터 본업 외에 투자, 사이드잡 등을 통해 다양한 수익화 파이프 라인을 만들고 이른 퇴직을 한 사람들의 후기가 SNS에 종종 눈의 띄곤 했다. 지금은 이런 내용들을 강의 콘텐츠로 만들어서 판매하는 개인 또는 기업들이 정말 많아졌다. 강의 내용들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이런 강의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영상 몇 개 찍어서 수익을 많이 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 초부터 불어닥친 경제 한파로 투자 심리가 얼어붙기는 했지만 노동보다 투자를 통해 돈을 모아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 주식투자는 많은 사람들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노동을 통해 열심히 돈을 모으는 게 익숙하던 20-30대는 주식 시장의 큰 손으로 등극했고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의 SNS을 통해 수익화 채널을 만드는 것은 세대 불문하고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주부들도 집에서도 돈을 벌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을 열고 유튜브를 오픈한다. 이들이 모두 공통으로 말하는 단어가 바로 '경제적 자유'다.




퇴사 이후 새로운 일을 찾으면서 나도 경제적 자유에 동참해 보려고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취미로 하던 티스토리 블로그에 애드센스 광고를 붙이고 네이버에 수익형 블로그를 오픈해서 애드포스토도 연결했다. 체험단, 제휴 마케팅 등을 통해서 수익을 조금씩 늘리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온라인 마케팅 일도 시작했다. 그동안 관심도 없었던 주식 공부도 하면서 모아놓은  일부로 주식을 구입했고 소소하게 들어오는  수입들을 모아서 암호화폐에도 투자했다.


주식 투자를 시작할 때는 아무런 감이 없어서 1년 동안은 동전주 중심으로 몇 만 원씩 주식을 구입하면서 투자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처음 주식을 접할 때는 하루 종일 주식만 생각이 나서 일에 손에 잡히지 않았다. 커피 한잔, 밥 한 끼 먹는 돈을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그 정도의 돈으로 주식을 구입 후 가격이 떨어지면 액수가 소소해도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 이후부터는 저축한 돈 일부를 주식에 투자한 후 돈을 땅에 묻었다 생각하고 주식 가격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제야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이전 직장에 있을 때는 돈의 양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월급이 많지 않아서 그 돈으로 어떻게 생활하느냐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듣긴 했지만 내 기준으로는 나름 풍족하게 잘 살았다. 돈을 모으는 방법은 절약과 저축밖에 없었고 큰돈을 모은 것은 아니지만 그 돈으로 어머니 해외여행도 보내드리고 가끔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기분 좋게 한 턱 낼 수도 있었기에 돈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직업을 바꾸고 환경이 바뀌니 온통 돈 이야기밖에 들리지 않았고 나도 모르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과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다 보니 내가 정말 잘 살았던 것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퇴사 후 1-2년간은 이런 생각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금은 새로운 판의 룰을 어느 정도 숙지했고 낯선 일들도 익숙해지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일의 형태는 불안정하지만 수입은 예전보다 늘어났다. 삶이 조금씩 안정되고 생활의 균형을 찾아가면서 지난 몇 년간 나를 불안하게 했던 요인이 뭐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일을 구하지 못해 백수로 지낸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균형을 잃고 중심이 흔들렸을까.


생각해 보니 답은 간단했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더 이상 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비영리에서 영리의 세계로 넘어가면서 '이제부터 가치보다 돈을 추구하겠어'라고 생각을 했던 것도 나를 흔들리게 했던 요인이었다. 구체적 목적 없이 돈만 버는 행위를 오래 지속할 경우 결국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실제 어떤 느낌인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경제적 자유가 삶의 목적이 될 수 있을까. 얼핏 멋있어 보이는 이 말은 쉽게 해석하면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경제적 자유를 수박 겉핥기로 이해한 사람들은 노동의 최소화와 수익 극대화를 동시에 꿈꾼다. 간혹 비트코인이나 주식으로 대박을 터트린 사례를 들리기는 하지만 이런 사례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 혹해 영끌에서 아파트를 구입하고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하는 행위의 결과가 어떤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돈이 많은 시대에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도 아니다. 그렇다면 월수입 또는 재산 보유액이 얼마나 되어야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는 걸까. 경제적 자유를 얻으면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걸까. 얼마 전 고인이 되신 넥슨 김정주 회장의 재산은 10조 원이었지만 돌아가시기 전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돈의 양이 삶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 같지 않다.


돈은 내가 먹고 생활하는데 부족하지 않은 정도만 있으면 된다. 그 이상의 돈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내 삶의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다. 바로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실천적 행위를 통해 증명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삶이 지금 당장은 모호하고 애매하고 혼란스러울지 모르지만 이런 질문들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것 같다. 결국 경제적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자유가 아닐까. 내 삶의 규칙은 내가 스스로 만들면서 자유롭게, 행복하게, 신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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