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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허실 Oct 27. 2022

바빠야 사는 사람들

나의 시간은 당신의 것이 아니에요

그 전에도 조금씩 느끼고 있었지만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 확실하게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한국인은 바쁘게 살아야 인정받는다. 바쁨에 대한 속사정은 각자 다르겠지만 스스로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열심히 바쁜 ‘척’을 한다.


내가 요즘 어딜 가도 주로 듣는 인사는 이런 것이다.


요즘 바쁘시죠?


서로의 안부를 '바쁨'으로 확인한다. 마치 바쁘지 않으면 잘 살고 있지 않는 것처럼.


처음에는 이런 식의 인사가 어색해서 ‘안 바쁜데요?’라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하지만 얼마 후 나도 열심히 바쁜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화의 분위기나 맥락상 바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바쁘다고 이야기해야 상대방도 자기가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바쁜 척을 해야 상대방이 나의 시간을 함부로 생각하지 않는다. 바쁜 사람의 시간과 여유 있는 사람의 시간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바쁜 척을 하면 할수록 내 시간의 가치는 올라가고 내 시간을 스스로 조절해가며 쓸 수 있다.




지난 10년 비영리기관에서 일했던 삶에 비하면 사실 난 요즘 여유롭다. 하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보기에는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소속도 다르고 정체성도 다른 일들을 경계를 넘나들며 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도 많다.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밤을 새야 하는 일들도 생긴다. 하지만 이전에 하던 일과 비교하면 일의 양은 절반 이상 줄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는 돈은 늘어났다.


이전에는 일을 일로서 쉰다는 말을 즐겨할 정도로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굳이 바쁜 척을 하지 않아도 항상 바빴고 날밤 새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조직은 늘 위기였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영혼을 갈아 넣으며 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그냥 일이 좋았다.


지금도 여전히 일을 좋아하지만 과거처럼 시간을 쪼개고 나도 쪼개면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조직의 시간, 일의 시간보다 나의 시간에 집중하는 요즘이 훨씬 마음에 든다. 인생 길게 봐도 영혼을 갈아 넣으며 일하는 것보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의 일을 하며 나에게 온전하게 집중하며 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요즘 바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바빠야 사는 사람들을 보며 반대로 어떻게 하면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가진 것도 별로 없으면서 한가한 소리 한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이런 한가한 소리를 실제로 실천하는 것이 내 삶을 더 풍족하게 만든다.


바쁘지 않아도    있고 바쁘지 않아야 기쁘게   있다. 바쁘지 않게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시간에 대한 권리를 타인에게 함부로 양도하지 않는 것이다. 내 시간은 나의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나의 시간을 소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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