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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허실 Feb 24. 2022

슈퍼맨은 위기에 나타난다

슈퍼맨 콤플렉스의 진짜 문제

나는 초능력을 좋아한다. 언젠가 초능력 시리즈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게 꿈이다. 사실 이미 써 둔 이야기도 있다. 머리카락을 만지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미용사 이야기, 손만 닿으면 모든 병을 치료하지만 일정 기간 기억을 잃어버리는 의사 이야기, 사랑의 큐피드 화살을 쏠 수 있는 모쏠남 직장인 이야기 등 소재로 뽑아 놓은 것만 해도 열 댓가지고 그중 하나는 드라마 각본으로 초고 완성도 했다.


내가 초능력을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을  방에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순간 이동하고 날아다니고 누군가의 생각을 읽고 시간을 되돌리는  초능력의 종류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나를 포함해 사람들이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초능력무한한 가능성이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히어로 이야기들 속에서 가장 통쾌하게 느끼는 부분은 나쁜 놈들이 벌을 받는 장면이다. 현실에서는 나쁜 놈들이 일을  만큼 벌을 받는 것을 보는  쉽지 않다. 삶에 있어서 선과 악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살다 보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경우도  많다. 현실에서는 애매하고 모호하고 불분명한 것들이 히어로물 안에서는 단순하고 명료해진다.



많은 히어로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는 슈퍼맨이다. 지난 10년간 마블의 히어로들이 전 세계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지구를 여러 번 구했지만 나의 히어로 최애캐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슈퍼맨이다. '슈퍼맨 리턴즈'에서 총알이 슈퍼맨의 눈을 맞고 찌그러져 나오는 장면을 보고 더욱 사랑에 빠졌다. 먼치킨도 이런 먼치킨이 없다.


솔직히 스타일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파란색 쫄쫄이 복장과 빨간 삼각팬티의 조합의 촌스러움은 현대에 와서 기본 바탕을 어두운 파랑으로 바꾸고 옷 재질을 바꿔도 사라지지 않는다. 슈퍼맨으로 변신했을 때 헤어젤 한통을 다 쓴 것 같은 고리타분한 헤어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유일하게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은 로고다. 슈퍼맨이 변신을 위해 와이셔츠를 뜯을 때 등장하는 슈퍼맨 로고는 설렘을 넘어서 섹시하기까지 하다.


슈퍼맨을 좋아해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나중에 크면 누군가의 슈퍼맨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슈퍼맨 정도의 슈퍼 파워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작은 능력으로 누군가에게 생긴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었고 실제로 주변 사람들이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 잘 도와주는 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슈퍼맨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사회적으로 리더군에 속한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심리적 경향으로 이들은 누군가의 문제를 본인이 직접 해결해주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본인이 해결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한 경우 해결하지 못한 자신에게 또는 해결 과정에 속해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를 드러내기도 한다.


사실 누군가에게 슈퍼맨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사회적으로도 좋은 일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타인의 문제를 나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발 벗고 나서서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회는 멋진 세계가 아닐까. 하지만 주변에 슈퍼맨처럼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에 생각보다 멋진 사람이 별로 없고 오히려 이들이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슈퍼맨 콤플렉스의 진짜 문제는 위기 설정 능력에 있다. 영화를 보면 슈퍼맨은 위기에 등장한다. 위기가 없는 평온한 날에는 수줍은 클라크 켄트로서 살아갈 뿐 어느 누구에게도 본인이 슈퍼 파워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에서 슈퍼맨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은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라고 하고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만들어 버리는 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본인이 기어코 해결'해야만'하는 일들로 바꿔 버린다. 대부분은 이 과정에서 진짜 문제가 발생한다.



슈퍼맨이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히어로인 이유는 초능력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짜 필요로 할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본인의 능력으로 문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히어로가 아닌 빌런으로 부른다. 슈퍼맨 콤플렉스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움의 타이밍을 제대로 알지 못해 히어로가 아닌 빌런이 된다.


슈퍼맨이 되는 진짜 좋은 방법은 영화 속 클라크 켄트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고 말을 아끼며 사람들의 말에 잘 귀 기울이다가 진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동안 숨겨 놓은 본인의 슈퍼 파워로 사람들을 도와주면 된다. 빌런이 아닌 히어로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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